[시가 있는 휴일] 양파의 참을성

2021. 11. 1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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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보는 양파를 소재로 이런 이미지와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야말로 시의 힘일까.

시인은 "무늬를 숨기고 겹겹 속으로 들어간/ 바짝 웅크린 식물" 양파를 통해 돌아가신 어머니를 본다.

"동그랗다고 다 구르는 것은 아니지/ 한곳에 있으면 뿌리가 생기고/ 코를 톡 쏘는 제자리들이 깃들어 여물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한 곳에 뿌리를 내린 사람.

그 속에서 여물어간 "코를 톡 쏘는" 매운 것들에 대해, "파릇한 참을성"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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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는 참을성이 많은 식물
무늬를 숨기고 겹겹 속으로 들어간
바짝 웅크린 식물
동그랗다고 다 구르는 것은 아니지
한곳에 있으면 뿌리가 생기고
코를 톡 쏘는 제자리들이 깃들어 여물지

늦가을, 양력에 양파를 파종하고
음력에 엄마 장례를 치렀다

살아생전 엄마는 양파를 두고 자꾸 음력이라고 침침하게 우기고 나는 찔끔찔끔 양력을 대꾸했었다 음력은 느리고 양력은 빨랐다

그사이 매운 삭망 주기가 있다

양파는 한겨울 추위들을 차라리 그 여린 실뿌리에 거둬들여 놓고 겨울엔 겨울 편이 되고 여름엔 또 여름 편이 된다 오히려 그게 속이 편하다고 하지만 그 편하다는 속은 또 얼마나 매운가

양파는 눈물이 많은 식물
슬픈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는 눈이 빨간 구술 전문가
슬픔도 없으면서 뻔뻔한 눈물을 갖고 있는 식물
굳이 봄이 아니어도 제철이 아니어도
저의 참을성이 다하면 파란 싹을 밀어 올리는
양파의 파릇한 참을성

죽어라 조상을 모시다 결국 조상이 된 엄마에겐
겹겹의 고유명절들이 많았다

-박해람 시집 ‘여름밤위원회’ 중

흔히 보는 양파를 소재로 이런 이미지와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야말로 시의 힘일까. 시인은 “무늬를 숨기고 겹겹 속으로 들어간/ 바짝 웅크린 식물” 양파를 통해 돌아가신 어머니를 본다. “동그랗다고 다 구르는 것은 아니지/ 한곳에 있으면 뿌리가 생기고/ 코를 톡 쏘는 제자리들이 깃들어 여물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한 곳에 뿌리를 내린 사람. 그 속에서 여물어간 “코를 톡 쏘는” 매운 것들에 대해, “파릇한 참을성”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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