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듣고싶은 설교] 광야에서 쓴 물을 마시게 될지라도 늘 치료하는 '그 분' 찾으세요

2021. 11. 16.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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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 15장 26절).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원문 ‘여호와 라파’에서 히브리어 단어인 ‘라파’에는 ‘고치다’, ‘치료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치료가 필요합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믿기 전에 가졌던 마음의 쓴 뿌리가 치료되어야 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먼저 구원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새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 수르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홍해를 건너는 것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였던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가 구원의 삶을 얻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홍해를 건너는 사건은 세례에 비유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다는 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왔다고 해서 바로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광야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광야의 삶이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땅에서 살아내야 했습니다. 그 거친 땅에서 그들이 경험한 하나님은 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이 땅에는 그들처럼 치유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하심이 필요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나님이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은,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은 주의 백성들이라고 해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3일 길을 걸어왔지만, 물이 없었습니다. 매우 목마르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 ‘마라’라는 지역에서 드디어 물을 만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우 기뻐하며 달려가 물을 마셨으나 물을 마시자마자 그대로 다 뱉어버렸습니다. 물맛이 너무 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통해서 그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라파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광야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인생 속에서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나는 여호와 라파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산다는 것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 안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담겨 있기 때문에 ‘여호와 라파’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과정 속에 임재하시게 됩니다. 우리가 가정에 있든지 일터에 있든지 우리는 모두 광야의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치유가 일어나는 삶의 현장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치유받아야 될까요? 우리의 기도제목들을 들여다보면 육체적인 질병을 비롯하여 삶 속에서 경험한 많은 아픔들을 치료해 달라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병든 몸을 치유받는 것뿐만 아니라 오래 전부터 우리 마음 가운데 자라고 있었던 쓴 물도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쓴물을 단물로 바꾸실 뿐만 아니라 환경까지도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쓴 물과도 같은 심령을 바꾸어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평상시에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의 마음 안에 쓴 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기억할 수도 있고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쓴 뿌리가 내면의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어느 사건이 터지거나 누군가를 만났을 때, 이 쓴 물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쓴 물을 마시자마자 원망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죄의 종노릇했던 그 때의 쓴 물들이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원망과 불평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나옵니다. 내면에 감추어 두었던 분노와 미움, 절망과 낙심, 억울한 마음과 수치스러운 마음 등이 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쓴 물입니다.

쓴 물이 있으면 평강이 사라집니다. 쓴 물이 나오는 사람은 얼굴빛도 밝지 않습니다. 쓴 물이 나오는 사람은 사탄의 유혹에 걸려 넘어지기가 쉽습니다. 유혹에 버틸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은밀한 곳에서 죄를 짓기도 하고, 세상 것을 추구하며, 세상적인 방법으로 경쟁하며 살아가는 인생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영적인 질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세를 원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원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과 3일 전에 홍해를 건너게 해 주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였지만 3일을 넘기지 못하고 불만과 불평을 늘어놓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건너게 하신 그 때 찬양하며 감사했던 것을 잊어버리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평과 원망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영적인 질병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질병과 마음의 질병, 그리고 육체의 질병 모두를 치료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요?

첫째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했습니다. ‘원망’은 현실만을 보고 체념하며 낙심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원망은 문제를 해결하지도, 치유하지도 못합니다. 원망은 상황을 개선시키지 못하고 악화시키기만 할 뿐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는 열쇠가 됩니다. 기도는 문제를 해결하고 상황을 역전시킵니다. 이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현실의 어려움과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바라보지 말고 그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에는 그 어떤 제약도 있을 수 없습니다. 힘들고 아프거나 슬픈 그 어떤 일이라도 하나님께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그 기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주의 자녀를 언제든지 도와주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원망의 말을 하고 어떤 사람은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는 당장에 원망을 그치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성도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언어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떤 말을 하며 살고 있습니까? 원망의 말입니까? 아니면 기도의 말입니까? 이제는 원망의 말을 버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마음에 원망이 생길 수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께 기도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모세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나무를 쓴 물 가운데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우리 삶에 가까이 계십니다. 그러나 기도하기 전에는 하나님이 우리 삶 가까이에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모세는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쓴 물이 나와 백성들이 불평할 때, 그는 “나무를 물에 던지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모세가 그 말씀에 순종하자 쓴 물이 단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치료의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위한 전제 조건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 출애굽기 15장 26절

여기서 ‘말’과 ‘계명’과 ‘규례’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치료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병든 몸과 마음을 치료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은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신 것같이 우리의 인생을 평강으로 인도하시고 생명의 해를 길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도전하십니다.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지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붙잡고 살아갈 때의 결과를 잠언 3장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순종할 때 이 말씀이 우리 몸에 양약이 되고, 골수를 윤택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붙잡고 살아갈 때 치료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셋째로 십자가의 은혜를 붙잡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그냥 십자가가 아니라 치유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에 치유의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장 5절

우리의 허물 때문에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찔리셨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징계를 받으셨으며, 그의 상함과 징계로 인하여 우리가 평강을 누리며 치유의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음을 입은 것은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를 치유하기 위한 사건입니다. 바로 그 십자가의 능력으로 모든 병든 육체가 치유받습니다. 또한 십자가를 바라보면 교만과 낙심이 떠나가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 짐을 벗겨주시고 죄 용서함을 받게 하셔서 주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모든 감정의 쓴 물을 대신하여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우리가 나음을 받게 된 것입니다. 마음이 낙심되고 슬픔이 밀려올 때 가난한 심령으로 십자가를 붙잡으십시오. 그럴 때에 마음속 깊은 상처까지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십니다.

육체적인 질병과 마음의 질병보다도 더 큰 문제는 영이 병든 것입니다. 병든 영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고 삶을 통째로 망가지게 합니다. 하나님께 붙잡힌바 되어야 영적으로 소생함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 요한삼서 1장 2절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시고 이 말씀을 믿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불가능이 없고,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영혼이 잘됨과 같이 범사가 다 강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십자가의 은혜를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고 놀라운 능력으로 인도하십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 차고 넘치며 주의 크신 능력을 덧입고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황덕영 목사 (새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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