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선거 중립 훼손을 우려한다

김명호,논설고문 2021. 11. 16. 04:2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산자부 이어 여가부 차관도 선거법 위반 고발돼…
대선에 결정적 영향 미칠 검찰 수사는 노골적으로 편파적
노태우 김대중, 정치적 의도 있겠지만
‘선거 내각’ 구성해 국민에게 중립 태도 보여줘
문 대통령, 21일 열릴 국민과 대화서
행정부와 검찰의 선거 중립 강력히 지시해야

1992년 10월, 대선을 코앞에 두고 노태우 대통령은 선거 중립 내각을 구성한다. 학자 출신으로 국무총리(현승종)를 임명하고, 선거 주무 부처인 내무·법무장관은 물론이고 선거 및 국내 정치와 관련이 있는 공보처장관, 정무1장관, 국가안전기획부장까지 바꿨다. 노태우는 승승장구하던 내무장관 출신 A씨를 안기부장에 기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북 출신으로 강한 보수 색깔을 지닌 그에 대해 당시 제1야당의 김대중 후보는 강력히 반대했다. 결국 그 카드는 폐기됐다.

계속 군인 대통령만 배출하던 시절, 어느 때보다 선거 중립에 대한 국민의 욕구가 컸다. 게다가 그해 8월 터진 충남 연기군수의 관권 선거 폭로는 이런 여론에 불을 질렀다. 14대 총선(1992년 4월)에서 여당 후보 당선을 위해 공무원 조직이 동원됐다는 내용이었다. 노태우는 민주자유당까지 탈당했다. 그 이후 임기 말 대통령의 탈당이 소속 여당과의 정치적 불화 때문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자발적’ 탈당이다. 그해 대선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당 소속 대통령이 존재하지 않은 상태, 즉 선거 중립 내각으로 치러졌다. 위기 타개용이라는 정치적 의도였다 할지라도 중립 의지를 국민에게 강력히 드러내 보였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김대중 대통령도 2001년 12월, 그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공정하고 중립적 입장에서 정부가 국정에 전념하고…”라며 선거 중립 내각 구성을 지시한다. 결국 2002년 대선 관리는 대법관 출신 총리(김석수)가 맡는다.

지난 1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여성가족부 차관과 과장 등 2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대검에 고발했다. 더불어민주당에 대선 공약에 활용될 자료를 작성해 제공하는 등 선거운동 기획에 참여하고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지난달에도 대선 공약 발굴을 지시한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에 대해 검찰에 수사 의뢰를 했다.

정부 기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건 합리적 의심일 게다. 문재인 대통령이 격노했다지만 진영 논리 앞에서는 무력한 것일까. 더구나 대선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와 법무부의 장관은 이른바 친문 정치인 출신이다. 박범계 법무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장관이기에 앞서 여당 국회의원”이라고까지 당당히 말한 적이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곳은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다. 검찰은 현실적으로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런 검찰이 편파 수사를 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대장동’ 의혹 수사는 압수수색이나 휴대전화 확보 등 기초부터 부실했다. 제대로 수사할 의지나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고발 사주’ 의혹을 수사 중인 공수처는 핵심 피의자(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를 구속하지도 못했다. 말만 무성한 채 두 달여 동안 범죄 혐의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야당 후보 가족과 주변의 것은 일단락된 것까지 다시 들춰내 수사하고 있다.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장관은 여당 정치인이고, 수사 핵심 라인은 이미 친정권 검사들로 채워졌다.

문 대통령은 늘 검찰의 독립성·중립성을 강조해왔다. 그의 검찰 개혁 의지와 열망이 강력하다는 건 전 국민이 안다. 그런 검찰 개혁이 결국 자기편 봐주고 상대편 죽이기로 끝난다면 중대한 선거 중립 훼손이다. 그렇게 명분 있었던 검찰 개혁은 결국 이렇게 너덜너덜해졌다. 검찰의 반부패 수사 역량은 쪼그라들었고, 또다시 사냥개로 돌아가는 듯하다. 이런 블랙 코미디도 없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쯤 검찰 개혁을 더 높이 치켜들고 선거 전략으로도 활용하고 있어야 마땅하다. 검찰 개혁의 진행을 목도한 여론이 싸늘하니 더 말을 못 하는 게다.

선거 중립 훼손 시도는 점차 교묘해진다. 알아서 움직이는 경우도 많다. 공직자의 선거법 위반은 중대한 범죄 행위다. 누가 되든 새 정권이 들어서면 중대 범죄는 늦더라도 드러나게 돼 있다. 노태우는 전두환을 백담사로 보냈고, 노무현은 대북송금 특검을 받아들였다. 문 대통령이 오는 21일 국민과의 대화를 갖는다. 취임사에서 공정과 정의를 강조한 대통령이다. 그 자리에서 행정부와 검찰의 선거 중립을 강력히 지시해야 한다.

김명호 논설고문 mhki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