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일본의 '코로나 갈라파고스'
“이런 분위기가 언제까지 갈까요?”
지난주 화요일 밤, 취객으로 북적이는 도쿄 신바시(新橋) 번화가에서 택시를 타니 기사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20~30명으로 줄어든 도쿄는 요즘 밤에도 교통 체증이 심하다. 과묵한 승객이 외국인인 줄 몰랐는지 한마디를 덧붙인다. “아무래도 외국인 입국 규제를 완화한다는 게 걱정이에요.” 일본 정부가 전날 외국인 유학생과 취업준비생, 비즈니스 출장자 등의 입국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발표 내용을 자세히 봤다면 생각이 달랐을 지 모른다. 유학생이나 기능실습생 등이 들어올 수 있게 됐지만 쉽지 않다. 받아들이는 회사나 학교 등에서 정부기관에 입국자의 활동계획서, 서약서 등 각종 서류를 제출해 심사를 받아야 한다. 백신을 접종한 단기 출장자의 경우 현재 열흘인 일본 내 격리 기간을 3일까지 줄일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선 역시 6종의 서류를 관계 기관에 보내 허가를 얻어내야 한다. 격리 3일을 마친 후 4~10일째엔 지정 좌석이 없는 대중교통은 이용할 수 없고, 회사에선 가능한 한 독립 공간에서 일해야 하며, 같이 밥을 먹은 사람은 열흘간 몸 상태를 체크하라는 등 ‘숨막히는 디테일’에선 이런 뜻이 읽힌다. “이렇게까지 하는 데도 들어오려고? 웬만하면 마음을 돌리시길.”
일본은 1월부터 ‘모든 외국인 신규 입국 금지’라는, 세계적으로 드문 봉쇄 정책을 이어왔다. 이미 일본 대학에서 입학 허가를 받은 유학생이나 기업의 취업내정자 등까지 막아 인권 침해, 쇄국정책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어쩔 수 없이 살짝 문을 열었지만 번거로운 절차로 새로운 벽을 만들었다. 게다가 하루 입국 가능한 총 인원은 3500명으로 제한했다. 입국 자격 심사를 통과해 ‘재류 자격인정증명서’를 받고도 들어오지 못한 외국인이 37만명에 이른다니, 이들만 와도 100일이 넘게 걸린다.
‘갈라파고스화’라는 말은 일본 경제나 문화를 이야기할 때 쓰인다. 주변과 단절된 채 독특한 진화를 거듭해 독자 생태계를 갖게 된 갈라파고스 섬처럼 일본도 내부만 바라보다 세계적 흐름에서 뒤처졌다는 비판이다. 코로나19는 일본인들의 마음을 갈라파고스화하고 있는 듯하다. 거기에 외국인을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존재로 보는 혐오까지 더해졌다. 문을 잠그고 ‘코로나 청정국’으로 쭉 가는 게 목표가 아니라면, 이번 조치가 ‘다른 주요국에는 없는 일본 특유의 절차로, 세계 표준과는 거리가 멀다’(닛케이)는 비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영희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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