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살 많은 준위에 성추행 시달렸다..여하사 극단선택의 진실

하수영 2021. 11. 1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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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훈 군인권센터장이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공군, 성추행 피해 여군 사망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 센터장은 기자회견에서 공군 8전투비행단에서 발생한 성추행 피해 여군 부사관 사망 사건을 공군이 스트레스 자살로 둔갑시키며 엉망진창으로 사건을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뉴스1

지난 5월 공군의 고(故) 이예람 중사가 성추행과 2차 가해 속에 스스로 세상을 떠나 파문이 일었던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 공군에서 또다시 여군 부사관이 성추행 피해를 본 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더욱이 군에서 사건을 ‘스트레스로 인한 사망’으로 덮으려 했던 정황이 포착돼 또 다른 파장이 예상된다.

15일 군인권센터는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5월 11일 공군 제8전투비행단에서 여군 A하사가 성추행 피해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있었는데, 군에서 유가족에게 강제추행 사실을 은폐하고 ‘이 중사 사망사건’ 수사 종결 후 슬그머니 별건 기소를 했다”고 주장했다.

[중앙포토]


“B준위, A하사에 수차례 강제추행하고 사망한 뒤엔 지속적 증거인멸 시도”

센터에 따르면 A하사는 이 중사와 같은 연차의 초급 부사관이었다. 그런데 지난 5월 숙소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사망 당시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고, 주변인에게도 새로 맡은 업무가 연차와 직급에 비해 너무 과중하고 힘들다는 호소 정도만을 털어놓은 상황이어서, 사망 원인은 자연스레 ‘업무 과중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코로나19 통제로 인한 우울감’ 등으로 정리되는 듯 보였다. 공군은 A하사 사망 한 달 만인 지난 6월 10일 변사사건조사를 종결한 뒤 순직을 결정했고, 유족에게 장례를 진행하도록 했다.

그런데 센터가 A하사 생전 상담기록 및 사건 기록 등을 확인해 보니 A하사가 생전에 부서 상관인 B준위로부터 수차례 성추행 피해를 본 사실이 있었다. 군사경찰 수사 기록에 따르면 B준위는 A하사에 대해 지난 3~4월 초와 4월 21일 두 차례 강제로 볼을 잡아당기는 강제추행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B준위는 A하사보다 계급상으로도 훨씬 높고, 나이도 28살이나 많다.

A하사는 그런데도 “얼굴 만지는 거 싫습니다”라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 A하사가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은 B준위가 수사 과정에서 자백한 부분이다.

B준위는 A하사 사망 이틀 전에도 먼저 만나자고 해 20분가량 같이 있었다. B준위는 A하사 사망 전 마지막으로 만난 부대원이다. 그런데 B준위는 A하사와 통화한 기록을 골라 삭제하는가 하면, 차량 블랙박스 기록도 다른 기록으로 덮어버렸다. 강제추행 증거를 인멸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또 6월 2일 진행된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도 A하사에 대한 성적인 시도를 묻는 말에 “아니오”라고 답했지만, 모두 거짓으로 판명됐다.

그뿐만 아니라 A하사가 사망한 채 발견된 날, B준위는 출근 시간 30분 전부터 A하사에게 무려 23번이나 전화를 걸고, 연락이 닿지 않자 직접 A하사 숙소까지 찾아갔다. 주임원사를 불러 방범창을 뜯고 창문을 해체해 숙소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숙소에 들어가서 A하사 시신을 발견한 뒤에는 컴퓨터 책상에 있던 A4용지와 노트를 들고, 만지고, 집안을 수색했다. 센터는 “B준위의 행동은 매우 특이하고 비상식적”이라고 지적했다.

공군본부가 위치한 충남 계룡대 정문 [프리랜서 김성태]


“軍, 강제추행 알면서도 사망 수사 결과에 반영 안 해…유가족 구속수사 요구도 묵살”

그런데도 8비행단 군사경찰은 변사사건 수사 결과에 강제추행 관련 사실을 반영하지 않았다. 수사 결과에는 “변사자는 자재관리 담당으로 보직이 변경되면서 체계 불안정에 따른 업무과다, 코로나19로 인해 민간보다 제한되고 통제되는 군대에서의 삶, 보직변경의 불확실함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스스로 목을 매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만 있었다.

이 때문에 유가족은 A하사가 강제추행을 당한 사실을 변사사건수사가 끝나고 순직이 결정될 때까지도 몰랐다. 다만 평소 A하사의 성격, 가해자의 행태,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점, 가해자 및 주임원사가 무리해서 집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 시도했던 점 등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8비행단장, 군 검사, 수사과장에게 구속수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센터에 따르면 이후 군에서 유가족에게 거짓말을 한 것처럼 보이는 정황이 여럿 포착됐다. 유족이 B준위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으로 수사해 달라고 요청하는 민원을 8비행단에 요청하자 담당 군 검사가 “유족 요청으로 진정사건으로 진행하고 있고, 법리검토 중”이라고 답변했는데, 센터는 이에 대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유가족 요청에 따라 조사를 하다 새로 알게 된 것처럼 답변했다”고 비판했다.

이후 B준위가 8월 3일 강제추행으로 입건됐을 때도 군 검찰은 유족에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을 조사하다 보니 강제추행 소지가 있어 입건했다”며 같은 취지로 답변했다. 유족은 지난달 14일, 강제추행에 대한 기소가 이루어진 뒤 공소장을 확인하고 나서야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센터는 “5월 말 ‘이 중사 사건’ 발생 이후 국방부는 6월 2일, 전군에서 발생, 진행되고 있는 성폭력 사건을 전수조사에 가깝게 선제 조사, 점검하겠다고 했다”며 “당시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사건이 상급 부대에 보고되지 않았을 가능성은 없다. 특히나 ‘이 중사 사건’으로 공군참모총장이 사퇴한 엄중한 상황임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데 8비행단 군사경찰과 군 검찰은 가해자에게 자백까지 받고도 성폭력 사건을 묻어뒀다. 사망사건과 성폭력의 연관성을 의도적으로 은폐한 것”이라며 “계속되는 사건을 통해 군사경찰의 수사, 군 검찰의 기소, 군사법원의 재판 기능은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문제가 많다는 점이 입증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군은 사망의 인과관계를 살펴 가해자를 엄히 처벌해야 한다. 또한 사건 은폐와 축소를 모의해 온 수사 관련자 및 지휘계통에 대한 처벌 또한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공군은 이에 대해 “사망사건 발생 이후 강제추행 등 자살 원인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했고,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순직이 충분히 인정돼 관련 절차에 따라 처리했다”며 “‘강제추행’에 대해서도 사망 사건 발생시부터 지속적으로 수사를 진행했고, 10월 14일 기소해 현재 재판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재판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종결되지 않은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제한되는 점 양해바란다”고 덧붙였다.

하수영 기자 ha.su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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