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출규제 단상..삼년고개와 적합성·적정성 원칙

2021. 11. 1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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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인이 삼년고개에서 넘어지자 이제 삼년 밖에 못 살거라며 근심하다가 시름시름 앓게 됐는데, 삼년고개의 저주를 역적용하는 꾀를 얻어 삼년고개에서 계속 굴러 넘어짐으로써 삼천갑자 동방삭처럼 오래 살게됐다.

그런데 삼년고개 설화는 원래의 저주를 역적용해 축복이 됐으니 환영할 일이나, 금융소비자의 방패가 돼야 할 것을 은행의 창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적합성·적정성 원칙의 역적용은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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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어느 노인이 삼년고개에서 넘어지자 이제 삼년 밖에 못 살거라며 근심하다가 시름시름 앓게 되었는데, 삼년고개의 저주를 역적용하는 꾀를 얻어 삼년고개에서 계속 굴러 넘어짐으로써 삼천갑자 동방삭처럼 오래 살게되었다. 어릴 때 무릎을 치며 들었던 이 유명한 설화가 최근 대출규제에 소환되어 역적용되는 적합성·적정성 원칙에 오버랩되어 떠올랐다. 그런데 삼년고개설화는 원래의 저주를 역적용하여 축복이 되었으니 환영할 일이나, 금융소비자의 방패가 되어야 할 것을 은행의 창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적합성·적정성 원칙의 역적용은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10월26일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 강화방안」에서 내년 1월부터 가계대출 취급시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상 적합성·적정성 원칙의 준수 여부를 점검하고 위반시 과태료 부과 등 조치를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한 은행연합회 중심으로 가계대출 취급시 관련서류 및 심사절차 전반에 대한 점검 후 개선필요사항을 정비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은행권은 대출 적합성·적정성 모범규준 개정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꾸려 증빙서류 확대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한다.

금소법상 적합성원칙이라 함은 위험감수능력이 부족한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상환능력에 걸맞는 안전 상품에 대해서만 판매 권유를 하라는 것이다. 고객이 굳이 판매 권유를 원하지 않으면 적용되지 않는다. 적정성원칙은 파생상품과 같이 위험한 상품에 대해서는 판매 권유를 하지 않는 경우에도 고객의 상품 구매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면 안되고 사전에 고객파악과 위험고지를 하라는 것이다. 고객보호를 위한 이중의 안전장치다. 자본시장법 제정시 처음 도입되었는데 이후 보험업법을 거쳐 현행 금소법에 이르러서는 모든 금융회사에 적용되는 일반원칙이 되었다.

국내총생산(GDP)을 넘는 1800조원 대의 가계부채 규모와 가파른 증가속도 등을 고려할 때 당국의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수긍하면서도 대출규제에 적합성·적정성 원칙까지 동원하는 것은 몇 가지 점에서 동의하기 어렵다.

첫째, 대출성 상품에 적합성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점이다. 일반 금융상품은 소비자 대중에게 동일한 조건으로 판매되므로 불특정 다수가 동일한 위험에 놓이게 되어 법적 보호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대출성 상품은 구체적 대출계약을 통해 조건이 확정되므로 그 조건은 계약자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또한 소비자들은 대출계약 조건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그 상품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게 되므로 무분별한 상품 매입으로 이어지기도 어렵다. 대출과 예금이 주 업무인 은행을 규율하는 은행법령에 적합성원칙과 같은 영업행위규제가 없었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둘째, 적정성원칙 적용은 적합성원칙보다 훨씬 더 부적절하다는 점이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적정성원칙은 고도의 위험상품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금소법상 적정성원칙이 적용되는 상품을 보면 주택·증권·지적재산권을 담보로 하는 대출로서 대출성 상품 중에서 가장 안전한 상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투자성 상품의 경우 파생상품과 고난도금전신탁계약 등에만 적용되는 것과 극명히 대비된다.

셋째, 고객파악의 수단으로써 기존의 대출서류에 더하여 추가로 증빙서류 제출을 요구하는 것이 가져올 문제가 크다는 점이다. 적합성·적정성 원칙 적용시 제일 중요한 고객조사는 법령에 따라 지금까지 면담·질문 등 고객이 제공하는 구두 정보로 이루어졌다. 이제 여러가지 증빙서류를 요구하게 되면 소비자에게 큰 불편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과도한 사생활 침해 및 기본적인 경제활동을 제약하게 된다. 은행으로부터 고객을 보호하고자 하는 법의 취지와 반대로 은행이 대출을 안 해주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대출규제 목적으로 적합성·적정성 원칙을 동원하는 것은 자제되어야 하며 증빙서류 확대 같은 과도한 규제는 배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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