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라이프] "난, 백화점 가서 그림 산다" MZ세대 미술 쇼핑 '아트테크' 열풍

문수정 2021. 11. 14.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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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소비 주체의 투자 전략

현대 미술이 지금처럼 대중적으로 소비된 적은 없다. 박서보, 김창열, 알렉스 카츠, 무라카미 다카시, 줄리안 오피, 존 버거맨, 하태임, 유선태…. 두꺼운 미술사 책에도 등장하지 않는 작가들의 이름을, 요즘 백화점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그림을 관람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산다’.

미술의 대중화는 유통업계 마케팅으로까지 확산됐다. 백화점, 호텔, 홈쇼핑, 온라인쇼핑몰에서 그림을 전시하고 판매한다. 취미를 넘어 전략적 투자로 미술품을 구매하는 이들도 적잖다. 비트코인이나 주식처럼 미술품 구매에도 ‘분할투자’ 개념이 생겨났다.

한 여성이 서울 중구 서울신라호텔에 전시된 박서보 화백의 ‘묘법’을 관람하고 있다. 서울신라호텔은 ‘묘법’ 작품 2점 중 하나를 대상으로 5만원의 분할소유권을 제공하는 패키지 상품을 출시했다. 신라호텔 제공

취미 넘어 투자로

MZ세대(1980~2000년대생)를 중심으로 활발해진 미술의 대중화는 MZ세대의 전형적 이미지와도 겹친다. 명품시장 큰 손으로 떠오른 MZ세대는 고가 제품을 적극 구매하고, 명품 소비를 경험과 투자로 받아들인다.

예술 작품도 명품 구매와 비슷한 맥락으로 접근한다. 취미이자, 경험이며, 장기적 안목의 투자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백화점에 명품을 사러 갔다가 미술품을 사서 나오는 게 ‘가능한 일’ ‘있을 법한 일’이 됐다.

지난 6일까지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진행된 '블라섬 아트페어' 전시장의 모습. 신세계백화점 제공


MZ세대의 ‘아트테크’는 세계적 현상이다. 세계 최대 아트페어 주관사 아트바젤과 글로벌 금융기업 UBS가 공동으로 발간한 ‘아트마켓 보고서 2021’에 따르면 미국 영국 중국 등 10개국 고액 자산가 콜렉터 2596명 중 56%가 MZ세대다. 이들이 지난해 예술 작품 구입에 쓴 돈은 평균 22만8000달러(약 2억5800만원)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달 13~17일 진행된 국내 최대 미술시장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는 사상 최대 실적(판매액 약 650억원)을 거뒀다. 한국화랑협회는 “MZ세대 컬렉터들의 미술품 투자와 해외 갤러리 대표들의 방문으로 서울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지가 된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서울옥션이 올해 1분기 진행한 온라인경매의 경우 전체 낙찰자 가운데 MZ세대 비율이 11%에 이르렀다.

'테사'의 갤러리에서 한 방문객이 모바일 앱을 보며 롯데멤버스 엘포인트를 활용한 미술품 투자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롯데멤버스 제공


MZ세대의 투자 스타일에 걸맞은 ‘분할투자’도 등장했다. 롯데멤버스는 엘포인트(L.POINT)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미술품 ‘조각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롯데멤버스와 미술품 투자 플렛폼 ‘테사’는 오는 22일부터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작품에 투자할 사람을 모집한다. 멤버십 포인트로 투자할 수 있다. 두 회사는 지난 6월에 뱅크시의 작품 ‘풍선과 소녀’에 대한 분할투자를 진행했는데, 953명이 참여해 2억2260만원 상당의 분할소유권을 구매했다. 이 가운데 5700만원가량은 엘포인트로 결제됐다.

테사는 미술시장 분석자료를 기반으로 ‘블루칩 작가’의 작품을 엄선하고, 소유권을 분할해 누구나 원하는 만큼 투자하고 거래할 수 있게 해 주는 플랫폼이다. 지난해 4월 론칭 이후 장 미쉘 바스키아, 키스 해링 등의 작품에 135억원 규모의 조각투자를 성공시켰다.

서울신라호텔도 분할투자 방식을 접목시킨 패키지 ‘폴 인 아트’를 선보였다. 박서보 화백의 ‘묘법 No.071218’ 또는 ‘묘법 No.111020’에 대한 소유권(5만원)을 제공받아 작품 일부를 소유할 수 있게 하는 패키지다. 미술품 공동 거래 플랫폼인 아트앤가이드와 협업했다.

온라인에서 팔린 5500만원짜리 작품은

온라인 쇼핑으로도 못 할 게 없는 세상이다. 최근에는 5500만원짜리 그림이 온라인 쇼핑으로 팔렸다. 지난달 25일 신세계인터내셔날 온라인몰 에스아이빌리지(S.I.VILLAGE)에서 1시간 만에 빠르게 팔려나간 그림은 김창열 작가의 작품 ‘회귀 2016’였다. 온라인 판매 그림으로는 최고가였다.

합리적 소비자들은 판매 창구를 가리지 않는다. 작품이 좋고 진품이라는 신뢰가 있다면 판매 채널이 온라인쇼핑몰이든, 백화점이든, 갤러리든 중요하지 않다. 이는 지난해부터 달아오른 백화점의 ‘아트테크 마케팅’ 성과로도 확인된다.

신세계백화점이 온·오프라인에서 소개한 미술품 가운데 실제 판매된 작품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9월까지 약 1년 동안 500여점에 이른다. 렉스 카츠(‘니콜’), 줄리안 오피(‘뉴욕 커플’), 차규선(‘화원’), 하태임(‘Un Passage’), 정해나(‘My Old Friends II’) 작품 등이 신세계백화점을 통해 팔렸다.

지난 7월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서 진행된 ‘아트롯데’ 전시장의 모습. 롯데백화점 제공


롯데백화점은 프리미엄 판매전 ‘아트 롯데’를 시작으로 미술품 판매·전시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본점, 잠실점, 동탄점 등 6곳에서 갤러리를 운영 중이다. 전시 때마다 진입 장벽이 낮은 수십만원대 작품부터 7000만원에 이르는 고가 작품까지 다양하게 구성했다.

온라인 플랫폼 ‘롯데 갤러리관’을 운영하며 미술에 대한 이해를 돕고 전시와 판매도 함께 한다. 롯데 갤러리관 오픈 두 달 남짓 동안 20여점이 온라인에서 팔렸다. 150만원 안팎의 초심자용 작품이 많이 나갔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판매 문의가 상당히 많이 온다. 백화점이 친숙한 공간이다보니 편하게 접근하시는 것 같다”며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원래 미술품에 관심이 많거나 구매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관람객들이 경기도 성남시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진행된 '제4회 판교아트뮤지엄'을 즐기고 있다. 현대백화점 제공


지난해 10월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열린 전시에는 8000만원 상당의 이우환 화백 작품을 포함해 약 9억원에 이르는 작품이 판매됐다. 지난 9월 현대백화점 킨텍스점에서 진행된 전시에서는 유선태(‘말과 글, 나의 아뜰리에’), 김지희(‘부엉이’) 등 국내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팔렸다.

미술품 매매는 홈쇼핑으로도 뻗어가고 있다. 지난 9월 현대홈쇼핑이 미술 대중화 브랜드 ‘프린트 베이커리’와 협업해 라이브커머스 방송을 선보였는데 1800만원 상당의 ‘자문밖 판화집’ 175개 한정판 제품이 판매됐다. 갤러리아백화점이 지난 9월 강남구청과 함께 명품관에서 진행한 전시에선 9일 동안 4억여원의 실적을 거뒀다.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에서는 지난 11일까지 독일 베를린 ‘쾨닉갤러리’와 함께 전시회가 열렸다. 독일 유명 작가 요린데 포그트의 작품이 약 8억3000만원 규모로 펼쳐졌다. 갤러리아백화점 관계자는 “인테리어 등 소장 목적으로 30만~300만원대 고화질 포스터 등을 구입하는 MZ세대 고객도 적잖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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