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내가 보고 싶은 대통령

맹경환 2021. 11. 13.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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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경환 뉴콘텐츠팀장


3년의 베이징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2017년 귀국했을 때 정권교체를 가장 먼저 실감케 했던 게 있었다. 중국에서 함께했던 타사 특파원들의 귀국 후 근황이었다. 물론 정부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언론사의 선후배들 얘기다. 특히 공영방송 특파원들은 귀국 후 대부분 한직으로 발령 났다. 전 정권에서 잘 나갔던 선배도 있었고, 특파원이라는 자리가 전 정권의 ‘수혜’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며 억울해하는 동료도 있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사는 항상 홍역을 치른다. 새 정권은 사장을 필두로 점령군처럼 네 편 내 편 가르며 간부에서 기자까지 완전히 물갈이하곤 한다. 전 정권에서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내부 구성원들의 원한과 증오도 한몫한 듯 보인다.

정부 산하 공공기관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정부는 사장을 비롯해 임원에 대해 공모 등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인재를 등용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불법도 자행된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이후 ‘진영논리’라는 말이 많이 회자됐다. 다른 진영은 파트너는커녕 마치 같은 국민도 아닌 적으로까지 간주하는 듯했다. 현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느 진영이든 권력만 잡으면 편을 가르고 보복을 한다. 그렇게 보복의 악순환은 계속된다.

구약에 등장하는 예언자 요나는 유대인 이외의 이방인에 대해서는 반감을 넘어 적대감을 가진 인물이다. 요나는 고대 앗수르의 큰 도시 니느웨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해 회개할 기회를 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다. 앗수르는 이스라엘의 원수였기 때문이다. 요나는 하나님이 악한 백성을 사랑하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원망했다. 그래서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도망가다 폭풍을 만나 큰 물고기에 삼켜졌다.

요나에게서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본다. 자기에 대해서는 용서와 은혜를 바라지만 원수를 미워하고 그에게 해가 될 만한 것을 바라고 기도하는 우리 말이다. 요나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에게까지 확장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혁명적 가르침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겠느냐”며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신다(마 5:43~48). 바울은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로마서 12:19)고 부연한다.

예수님은 죄를 범한 자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는지 묻는 베드로에게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하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신다(마 18:23~35). 만 달란트를 빚진 종은 주인의 탕감을 받았으면서도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는 가혹하게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둔다. 소식을 들은 주인은 노하여 이 용서를 모르는 종이 빚을 다 갚도록 똑같이 옥졸에게 넘긴다는 이야기다. 예수님은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라고 경고한다.

예수님 말씀은 크리스천이라도 참으로 지키기 힘든 가르침이 많다. 특히 원수 사랑은 더 힘들다. 그렇다고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아쉽게도, 얼마 전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에서 기도 순서를 맡았던 이홍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가 비난 속에 결국 사과했던 일이 있었다. 사과도 없는 광주 학살의 ‘원수’를 위해 화해와 용서의 기도를 한다는 걸 용납하지 않는 ‘일부’의 강한 비난 때문이었다.

베이징 한국대사관에서 19대 대선 투표를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제 20대 대선 여야 후보들이 확정되면서 본격적인 대선 경쟁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보복의 악순환을 끊어 주는 대통령이 탄생하기를 기도해 본다. 원수까지 사랑하는 대통령을 바라긴 힘들겠고, 최소한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맹경환 뉴콘텐츠팀장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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