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식 '농담의 미학'이 쏘아올린 미러클

박소영 2021. 11. 1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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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54) 두산 베어스 감독은 무뚝뚝한 편이다. 미사여구를 곁들어 친절하게 말하기보다는 할 말만 간단하게 이야기한다. 특히 긴장감이 감도는 포스트시즌이 되면 김 감독의 화법은 더욱 직설적이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기자회견 때마다 유독 여유가 느껴졌다. 오히려 생각지도 못한 농담으로 딱딱한 분위기를 깨뜨렸다.

지난 5일 준플레이오프에 앞서 두산 김태형 감독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스1]

정규시즌에 7위까지 떨어졌을 때는 "다 못하고 있다. 다 잘해야 올라간다"며 웃었다. 한창 가파르게 상승하던 지난 9월에는 3위 LG 트윈스와 격차가 좁혀졌다. 3위를 욕심낼 만도 한데 김 감독은 "어떻게 쫓아가나요. 4위만 지켜야지"라고 손사래를 쳤다. 우여곡절 끝에 4위로 가을야구를 시작할 때는 "선수들에게 잘하라고 말 안한다. 그냥 하던 대로 해야지. 각자 알아서 하겠지"라고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벼랑 끝에 몰려 있었던 LG와 준PO 3차전을 앞두고는 "미란다는 공도 안 던지면서 자꾸 알짱대고 있어. 집에 가라고 해"라면서 껄껄 웃었다.

지난 2015년 두산 지휘봉을 맡은 이래로 가을야구에서 이렇게 여유로운 김 감독을 보는 건 처음이다. 두산은 올해 기대치가 낮은 팀이었다. 지난해 주전 내야수 오재일, 최주환이 FA(자유계약) 자격을 얻어 각각 삼성 라이온즈, SSG 랜더스로 이적했다. FA 계약을 맺은 내야수 김재호, 투수 유희관 등은 전성기가 지났다.

뚜껑을 열었을 때는 전력난이 더 심했다. 새로 데려온 외국인 투수는 기복이 있었고, 국내 에이스였던 이영하는 부진했다. 정수빈, 허경민도 돌아가면서 슬럼프에 빠지는 등 그동안 탄탄대로였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새로 온 박계범, 양석환 등이 잘해줬지만, 전체적으로 위풍당당했던 예전 두산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5강 후보에 간신히 이름을 올렸다.

오히려 그래서 김 감독도, 프런트도, 선수단도 '반드시 우승'보다는 '힘 빼고 경기'에 집중했다. 올 시즌 막판 5위도 아슬아슬하던 때는 '가을야구만 하자'고 생각했고, 4위로 포스트시즌에 올랐을 때는 '준PO만 하자'고 여겼다. 그리고 준PO에서 '서울 라이벌' LG를 누르고 PO에 갔을 때는 '이 정도면 됐다'며 기뻐했다.

선발 투수 구멍이 큰 상황에서 그 누구도 PO에서 삼성을 반드시 꺾을 거라고 장담하지 못했다. 그런데 3전도 아닌 2전으로 한국시리즈(KS)행을 확정했다. 두산은 KBO리그 사상 최초로 7년 연속 KS에 올랐다. 김 감독은 두산을 맡고 한해도 거르지 않고 KS에 출석하면서 이 시대 최고의 감독이 됐다. 두산은 2015년 3위로 KS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려 '미러클 두산'이란 별명이 생겼다. 올해야말로 이 별명이 가장 잘 어울린다.

김 감독 농담이 잦아질수록 두산은 여유가 생겼다. 선수들은 보너스 게임이라 여기고 그날 경기만 생각했다. 올해 두산의 미러클은 이런 가벼운(?) 마음가짐이 만들어냈다. 7년 연속 가을야구를 하는 두산이기에 가능한 미러클일 것이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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