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불꼬불한 면의 홀릭..한국 라면 제2의 전성기 도래하다

이승연 2021. 11. 1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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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소울 푸드’이자 ‘서민 음식’을 대표하는 라면의 인기가 최근 심상치 않다. 한국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한국 라면이 ‘K-푸드’를 대표하는 새로운 음식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기업 간의 컬래버레이션과, 60년 만에 새 옷으로 갈아 입은 패키지 변화 소식 등도 역시 주목해볼 부분이다.

▶문화의 힘 업고 세계화된 한국 라면

농심 신라면과 짜파게티는 ‘뉴욕매거진’ 내 웹사이트 ‘더 스트래티지스트’에서 발표한 ‘셰프와 푸드라이터가 말하는 최고의 라면’에 선정됐다(사진 농심).
바쁠 때, 배가 고플 때, ‘요알못’이어도 짧으면 3분, 길어도 10분이란 시간 안에서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음식, 인스턴트 라면. 라면 브랜드 선택부터 시작해 물에 스프를 먼저 넣을지, 면을 먼저 넣을지, 면을 끓는 물에 한번 데친 뒤 물을 버리고 다시 끓일지 말지 등 레시피도 무궁무진하다. 라면이야말로 누구나 짧은 시간에 자신만의 철학을 담을 수 있는 대표적인 국민 요리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한국 라면이 최근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한국식 고추를 곁들인 매콤한 라면 맛이 세계인 모두의 입맛을 움직이게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기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이 서민 음식이 문화의 힘을 등에 업기 시작하자 태세가 전환됐다. 한국 음식과, 먹을 것에 진심인 한국인의 ‘먹는 방법’에 호기심을 가진 세계인들이 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기생충’을 패러디한 짜파구리(사진 농심)
지난해는 영화 ‘기생충’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2020년 2월 아카데미상 수상과 함께,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휩쓴 이 영화에서 배우들만큼이나 관심이 집중 포화된 것은 다름 아닌 ‘짜파구리’였다. 영화 속 IT기업 CEO 박사장의 아내 연교(조여정)는 늦은밤 캠핑에 다녀오는 길에 가정부 충숙(장혜진)에게 아들이 좋아하는 짜파구리 요리를 요청한다.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결국 이 음식은 연교의 입으로 들어간다. 그간 ‘국민 모디슈머 레시피’로 불리던 짜파구리가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화제가 됐고, 이를 궁금해한 내외국인 사이에서 ‘짜파구리’ 인증 열풍이 불기도 했다. 농심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SNS에 등록된 짜파게티 해시태그 게시물은 약 5만 개에 달했고, 전체 21만9000개 중 1/4가량이 새로 올라온 것이었다. 그 인기에 농심은 지난해 4월에 짜파구리를 실제 제품으로 출시, 국내외 시장에 선보인다고 밝혔다.
웹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화제가 되자 식품업계에서 마케팅 붐이 일고 있다. (사진 농심 SNS 갈무리)
올해 열풍을 일으킨 웹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는 또 다른 라면 레시피가 나온다. ‘오징어 게임’ 2화에서 기훈(이정재)과 일남(오영수)이 재회해 편의점에서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안주는 소위 말하는 라면땅. 생라면을 과자처럼 부숴 먹는 음식이다. 비오는 날 소주와 생라면을 먹으며 일남은 다음처럼 얘기한다. “밖에 나와보니까 그 사람들 말이 다 맞더라고. 여기가 더 지옥이야.” 해당 장면이 나온 뒤 이들이 먹은 생라면 브랜드인 삼양라면과, 해당 장면의 배경인 쌍문동의 한 편의점은 인증샷 명소가 됐다. 일부러 이곳을 찾는 외국인 손님들이 있을 정도다. 국내 팬들 역시 저마다 좋아하는 라면땅 브랜드나, 에어프라이어를 이용한 레시피 등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처럼 ‘오징어 게임’이 신드롬을 일으키며, K-콘텐츠에 힘 입은 식품 업계들은 발 빠르게 노를 젓고 있다. 해외 소비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라면땅 레시피를 소개하면서 SNS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고, 농심은 자사 인스타그램을 통해 ‘오징어 게임’을 연상시키는 듯 동그라미, 세모, 네모를 활용한 오징어 짬뽕 포스터를 올려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60년의 세월, 젊어지는 브랜드

(좌) 농심 안성탕면 한글날 기념 한글 패키지, (우) 삼양라면 60주년 기념 에디션 (사진 농심, 삼양식품)
1963년 한국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으로 등장한 삼양라면. 삼양식품이 창립 60주년을 맞이해 자사 제품인 삼양라면을 젊게 변화시키고 있다. 그 시작으로 지난 8월, 스튜디오 킨조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삼양라면 창립 60주년 기념 에디션을 한정품으로 선보였다. 해당 에디션은 패키지 ‘삼양’을 양 캐릭터 3마리가 라면을 끓이는 모습으로 위트 있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그에 이어 지난 10월에는 친환경 포장재를 적용한 삼양라면의 새로운 정식 패키지 디자인을 공개했다. 기존의 삼양라면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살려 오리지널 제품은 주황과 파랑, 매운맛 제품은 빨강과 검정을 활용했고, 무엇보다 제품명을 한자 ‘三養’이 아닌 한글 ‘삼양’으로 표기한 점이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농심 역시 10월9일 한글날을 맞이해 안성탕면 한정판 제품으로 한자 대신 한글로 쓴 제품을 출시했다. 패키지 속 폰트는 가수 장기하가 직접 쓴 손글씨를 적용했다고 알려졌다. 라면 업계들의 패키지 변화는 한자에 익숙치 않은 젊은 세대와, 해외 수출이 늘어나면서 패키지에 변화를 시켜야 한다는 소비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삼양라면 광고 ‘평범하게 위대하게’ 장면 (사진 삼양식품 공식 유튜브)
참깨라면타임(사진 오뚜기, 빙그레)
브랜드 이미지 재고를 위한 마케팅으로는 이색 광고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0월초 공개된 삼양라면 온라인 TV 광고에서는 삼앙라면 오리지널 제품의 서사를 담은 광고 ‘평범하게 위대하게’를 공개했다. 기존 자사 제품 패키지에 양(삼양라면), 닭(불닭볶음면), 소(쇠고기면) 등 동물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에 착안, 제품을 인물화하고 서사를 전달했다. 평범하다 못해 초라해질 지경의 1963년생 삼양라면(a.k.a 삼양63)이 자극적이고 트렌디한 불닭의 공격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순간, 시련을 딛고 위대하게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마치 뮤지컬처럼 고퀄리티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3분18초 분량의 광고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광고 퀄리티 무슨 일” “드디어 미쳤다” “삼양라면 진짜 진심이구나”라는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SNS나 유튜브를 통해 ‘삼양라면 노래 1시간 듣기’ ‘삼양라면 캐릭터 해석’ 등 밈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서민 음식? 프리미엄급 라인 출시

‘THE 미식 장인라면’ TV 광고 스틸컷(사진 하림), 하림 ‘더(THE) 미식장인라면’ 론칭(사진 매경DB, 매일경제 이충우 기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국내 라면시장 규모는 지난해 2조1500억 원 수준(소매점 기준)에 달한다. 또 세계라면협회(WINA)의 통계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국가별 라면 소비량 순위를 살펴보면 중국, 홍콩이 1위, 인도네시아 2위, 베트남 3위, 대한민국의 경우 8위를 기록(2021년 5월 조사결과)했다. 또 한국인의 경우 1인당 라면 소비량은 79.7개에 달한다고 전해진다. 이는 코로나19를 겪으며 간편한 홈쿡 요리, 한 끼 식사로 라면이 주목을 받았고, 글로벌 시장 공략으로 인한 매출 상승에 따른 효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라면 업계 시장은 기존 브랜드가 시장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닐슨코리아가 2020년 3분기까지 전국 라면 매출을 집계한 결과, 신라면을 비롯해 짜파게티, 안성탕면, 진라면 매운맛, 팔도비빔면 등 5개 제품이 전국 매출 TOP5를 형성했다. 이들 제품은 각 사를 대표하는 1등 브랜드다. 라면 브랜드의 경우 다른 식품군과는 다르게 순위 변동이 크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일례로 에디터는 본인이 ‘맵찔이’(매운 것에 약한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다 보니, 가족들이 즐겨 먹는 라면 역시 ‘진라면 순한맛’이다. 일명 ‘진순파’로 설명할 수 있는 취향인데, 그만큼 라면 브랜드는 개인의 기호와 취향에 따라 브랜드 선호도가 극심하고, 기존 소비자들의 충성심 역시 높은 편이다. 때문에 다른 라면 브랜드로의 선호도 이동이 잦지 않다.

특히 한국에서 인스턴트 라면이 ‘서민 음식’ ‘소울푸드’란 별칭을 얻은 건, 1960년대 국내 식량난을 극복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라면(삼양라면)이 개발된 역사에서 기반한다. 당시 10원이란 저렴한 가격으로 제2의 주식으로써 자리매김하면서, 1970년대에는 국내에서 식품 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전해진다. 한국인의 라면 사랑은 그 뒤로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최근 라면 업계가 점차 ‘서민 음식’ ‘저렴한 인스턴트 요리’라는 탈을 벗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7월 라면 업체들이 일제히 라면 가격을 올렸다. 농심과 삼양라면은 5년여 만에 가격을 인상했다. 오뚜기는 13년간 라면 가격을 동결해 왔으나, 최근 밀가루, 팜유와 같은 식품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등의 상승으로 8월초 불가피하게 가격 인상을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가격이 올라도 라면은 라면’이라는 인식이 지배할 것 같지만, 최근 재료와 제조과정에서 차별점을 둔 프리미엄 라인이 등장하면서, 시장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0월14일, 닭고기로 유명한 식품업체 하림이 가정간편식(HMR) 사업으로 라면 사업에 뛰어 든 것. 하림이 새롭게 선보인 ‘더(THE) 미식 장인라면’은 얼큰한 맛, 담백한 맛 두 가지 종류로, 1봉지 가격은 2200원(온라인 숍·편의점 기준)에 달한다. ‘신라면 블랙’ 등 기존 프리미엄 라면(1500~1700원 대)보다 30% 정도 높은 가격이다. 라면치고 비싸다는 인식이 있지만, 더 미식 장인라면은 ‘차별화’로 시장을 공략한다는 입장이다. 면은 유탕면(기름에 튀긴 면)이 아닌 건면(바람에 건조한 면)을 사용했고, 나트륨 함유량도 낮추는 등 최근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며 라면 업계에 본격적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이 밖에도 오뚜기 ‘라면비책 고기짬뽕’, 이마트 ‘정든 된장라면’ 등도 프리미엄 전략을 내세운 상품이다. 소울푸드 라면 시장에 불기 시작한 프리미엄 바람. 브랜드별 어떤 차별점을 내세우고, 어떤 트렌드를 이끌게 될 지 한동안 한국 라면 시장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Tip | 우리나라 지역별 인기 라면은 무엇일까?
전국 1위? 신라면 2020년 닐슨코리아가 전국 라면 매출을 집계한 결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라면은 ‘신라면’이었다. 신라면은 9.9%의 점유율로 전국 1위에 올랐다. 신라면 팬이 특히 많은 지역은 충청북도로, 점유율 12.9%를 기록하며 전국 최고치를 보였다.

전국 2위? 짜파게티 짜파구리 신드롬의 주역 ‘짜파게티’가 지난해 전국 라면 매출 2위를 차지했다. 짜파게티는 점유율 7.1%를 기록하며 상승세가 돋보였다.

경상도? 안성탕면 신라면이 유일하게 1위를 차지하지 못한 지역, 바로 부산과 경남이다. ‘안성탕면’이 부산, 경남지역에서 1위, 경북지역에서 2위를 차지하며 경상도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 이는 된장 맛을 선호하는 경상도 소비자들이 구수한 우거지장국 맛의 안성탕면을 선호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전라도? 삼양라면 전라도에서는 ‘삼양라면’이 돋보였다. 삼양라면은 전북과 전남에서 순위권(3위)에 들었다.(전라북도 4.5%, 전라남도 5.6%) 전라도 지역은 상대적으로 매운 맛의 강도가 낮은 삼양라면이 이 지역의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우러지는 특징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호남에서 생산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삼양식품에 대한 친근감도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강원도? 육개장 사발면 군부대가 많고 각종 레저와 휴양시설이 밀집한 강원도 지역. 간식 혹은 간단한 요기에 편리한 용기면 ‘육개장사발면’이 3위를 차지해 눈길을 끌었다.

수도권? 진라면 오뚜기 수도권 지역에서는 오뚜기가 강세를 보였다. 진라면 매운맛은 서울과 경기, 충북 지역에서 4% 대의 점유율로 3위를 차지했다.

[참고 및 발췌 자료 농심 ‘2020년 전국 라면 인기지도’(2020.11)]

[글 시티라이프 이승연 기자 일러스트 포토파크 참고 및 자료제공 농심, 오뚜기, 빙그레, 삼양식품, 하림, 이마트24, CU,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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