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성폭력 27년 뒤의 후유증..법원은 시계를 멈췄다
“밤마다 아버지가 꿈에 나왔어요. 그때를 어떻게 잊을까요.”
9살 소녀의 악몽은 1994년 봄 시작됐다. 27년 전 경기도 남양주에 있던 집은 지옥이었다. 딸은 잠을 자다 친부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 15살이 될 때까지 어머니 몰래 다가오는 아버지의 끔찍한 손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공포는 27년째 이어지고 있다.

친부의 범행은 2000년쯤 드러났다. 남편이 대나무 막대기로 딸을 때린 사실을 알게 된 친모가 경찰에 신고했고, 딸 A의 입에서 수년간에 걸친 범행이 쏟아져나왔다. 친부는 미성년자의제강제추행치상 등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심으로 이어진 재판이 고통스러웠던 A와 어머니는 친부와 합의를 했다. 빨리 잊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한다.
악몽 떨치기 위해 쓴 합의서
합의서엔 ‘A가 합의 뒤 받은 3000만원 외에 어떤 명목으로도 친부에게 금전 청구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2심에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됐다.
A는 다른 가족과도 연을 끊었다. 아버지와 교류하는 언니들을 만나면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를까 봐서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상처는 깊어만 갔다. 지난해 초 병원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 종합심리검사에선 ‘외상적인 기억으로 고통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이고 증상 완화를 위해 치료를 받고 경과를 관찰해야 한다’는 소견이 나왔다. 과거 아버지의 성폭력은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합의 20년 뒤 친부 상대 손해배상청구

친부는 “안 날로부터 3년 시효 소멸” 주장

“성범죄 후속 장애는 30년 걸리기도 한다”
이 판사는 “성범죄 피해 관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길게는 30년이 걸리기도 하고 진단 기준 이하로 떨어졌던 증상이 재발하거나 악화하기도 한다”며 “성범죄 당시 일부 증상의 발생일을 일률적으로 손해가 현실화된 시점으로 보면 소멸시효 탓에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는 부당한 결과를 부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A의 진단 결과 등에 비춰보면 그가 성인이 되었다는 사정만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후발 손해를 A가 구체적으로 인식했다고 볼 수 없다”며 친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측할 수 없는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엔 ‘시효소멸의 시계’를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판결 직후 A는 “저와 같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이번 판결을 통해 힘과 용기를 전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성폭력 관련 법이 개정돼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더 나오지 않게 처벌이 강화됐으면 하는 그의 바람이라고 A의 법률대리인은 전했다.
“힘든 나날 보내는 피해자에 용기 전하고 싶어”
이재승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성폭력 범죄사건에서 지연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생하더라도 소멸시효로 인해 피해자들이 권리구제를 받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번 재판부의 판단은 피해자 인권을 옹호하고 회복적 사법에 적극적으로 기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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