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이건희 기증관, 서둘 일이었나

송세영 2021. 11. 11.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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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기증한 미술품과 문화재를 보존·전시·활용하는 가칭 '이건희 기증관' 건립부지가 서울 종로구 송현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인근으로 결정됐다.

이 회장 유족이 소장품 기증 방침을 밝힌 게 지난 4월 28일이니까 불과 6개월여 만에 건립부지가 확정된 셈이다.

더구나 그 짧은 기간에 이 회장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나눠 기증한 총 2만3000여점의 미술품과 문화재를 통합해 소장·관리하는 별도 공간을 만든다는 결론도 함께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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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영 문화체육부장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기증한 미술품과 문화재를 보존·전시·활용하는 가칭 ‘이건희 기증관’ 건립부지가 서울 종로구 송현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인근으로 결정됐다. 이 회장 유족이 소장품 기증 방침을 밝힌 게 지난 4월 28일이니까 불과 6개월여 만에 건립부지가 확정된 셈이다.

기증관을 서울에 짓겠다는 결정은 이보다 더 빠른 2개월여 만에 이뤄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7월 7일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방안’을 발표하며 기증관 건립 후보지를 서울의 용산과 송현동 2곳으로 압축했다. 그 기간 별도의 전담팀과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10차례 회의를 가졌다고 하지만 충분한 시간이었는지 의문이다. 당시 부산 대구 대전 인천 세종 등 여러 지역에서 유치전에 뛰어들었고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곳도 있었다. 하지만 유치 제안서를 바탕으로 설명회나 공청회를 열고 전문가 의견을 폭넓게 구하는 절차는 없었다.

더구나 그 짧은 기간에 이 회장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나눠 기증한 총 2만3000여점의 미술품과 문화재를 통합해 소장·관리하는 별도 공간을 만든다는 결론도 함께 내렸다. 기증품을 바탕으로 국립근대미술관을 짓자는 제안도 나왔고 별도 공간 대신 기증받은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각각 소장·관리하면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주제 하나만 놓고도 논문 몇 편은 쓸 수 있다고 했지만 2개월이란 시간에 그럴 여유는 없었다.

가장 큰 의문은 범국민이든 문화예술계든 의견 수렴과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이유다. 혹 ‘번거롭게 그런 절차를 왜 거치나’ ‘시끄럽고 분란만 커질 텐데 밀어붙이자’는 생각이었다면 위험하다. 민주주의에선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구성원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며 의견을 내놓고 토론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다. 시간과 비용과 노력이 들어도 낭비가 아니다. 우리가 왕정이나 독재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선택한 것은 그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공론화 과정을 거쳤어도 결론은 이번과 같을 수 있다. 이건희 기증관을 균형발전 차원에서 지방으로 보내는 것만큼이나 서울에 건립하는 것도 장점이 많다. 그래도 더 많은 국민과 전문가의 참여, 더 많은 대화와 토론이 있어야 했다. 이를 누락함으로써 국민적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 공감을 이룰 기회를 잃었다. 문화재와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높았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이번 기증은 좋은 기회였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문화 인프라를 점검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수도권과 지방의 문화적 격차를 공론화할 기회,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전략을 문화 분야에서 논의할 기회도 잃어버렸다. 신도시를 만들어 아파트 짓고 공공기관 옮긴다고 균형발전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은 현실이 보여준다. 교육 문화 여가 인프라의 개선 없이는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없다. 공론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지만 이것도 원천 봉쇄됐다. 공감과 설득의 과정을 생략하니 유치전에 뛰어든 지자체는 더 거세게 반발했고 문화예술계에서도 이견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건희 기증관처럼 국가적인 문화공간 건립은 누군가의 치적이 아니라 백년대계의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문화 창달도 불도저로 밀어붙이듯 하는 건 군사독재의 유산이다. 문화적 성취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성숙을 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짧은 임기 안에 뭔가를 해내고 싶은 정치인 장관에게 이런 걸 주문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 모른다. 그래도 문화행정과 정책에서만큼은 ‘빨리빨리’ 속도전을 보고 싶지 않다.

송세영 문화체육부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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