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풍자 어때요?" 직접 물었다..10년 SNL 노하우
"정치 풍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회초년생 인턴기자가 각 당의 대선후보들을 1대 1로 만나 묻는다. 후보들은 모두 긍정적 답변을 했다. 6일 10회차로 막을 내린 'SNL코리아 리부트'의 '주기자가 간다' 코너다.
SNL(Saturday Night Live)은 정치풍자와 '19금' 개그가 주축인 미국 NBC의 간판 코미디다. 2011년 SNL 포맷 라이선스를 구입한 tvn은 ‘SNL 코리아’를 만들어 7년간 시즌 9까지 방영했다.
특히 ‘정치 코미디’가 화제가 됐다. 2012년 18대 대선 때는 당시 박근혜‧문재인‧안철수‧이정희 후보와 이명박 대통령을 풍자한 ‘여의도 텔레토비’를,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Mnet의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을 차용한 ‘미우프(미운 우리 프로듀스101)’를 앞세워 인기를 끌었다.
"너무 나뉜 정치판, 팬덤 첨예한 대립… '웃음' 으로 윤활"
19대 대선 이후 SNL 코리아는 막을 내렸고, 정치 풍자 콘텐트도 점차 사라졌다. 개그콘서트(KBS)‧웃음을 찾는 사람들(SBS) 등 국내 대표적 코미디 프로그램도 차례로 종영하면서, 정치 풍자에 대한 아쉬움과 갈증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런 가운데 지난 9월 선보인 ‘SNL 리부트’는 OTT 채널인 쿠팡플레이로 옮겨 다시 정치 풍자를 꺼내들었고, 큰 논란 없이 첫발을 무사히 디뎠다. 총지휘한 것은 tvN 시절부터 SNL 코리아를 10년간 끌어온 안상휘 에이스토리 제작2본부장이다. 그는 "정치판이 너무 나누어져 있고, 팬덤이 첨예하게 대립하지만, 대선이 코앞인데 ‘정치’를 다루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며 "후보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은 건 앞으로의 정치풍자를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제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대립하는 양쪽에 '웃음'으로 윤활 역할을 더하겠다는 포부다.
안 본부장이 본 'SNL 리부트'의 연착륙 요인은 무엇이었는지 9일 들어봤다. 그는 “사람들의 생각이 다른 건 당연하고, 웃음을 통해서 공존할 수 있는 판이 넓어졌으면 했다”는 그는 갈등의 소지를 줄이기 위한 여러 장치를 썼다고 설명했다.
①'비난' 말고 '뉴스'로, 균형 맞춘 '순한 맛' 풍자
뉴스 형식으로 구성한 ‘위켄드 업데이트’ 코너는 대장동 의혹을 비롯해 윤미향‧이재명‧윤석열‧곽상도 등 여야의 주요 이슈와 인물을 고루 다뤘다. 천화동인 1호의 수익률에 대해서는 앵커(안영미)가 "이쯤 되면 워런 버핏 뺨칠 정도의 투자 천재 아닌가요?"라고 꼬집는가 하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손바닥 '王'자 논란은 '오징어 게임' 패러디에 넣어 보여줬다. 진지하기보다는 가볍게 툭 치고 가는 것이 과거 SNL보다는 덤덤하고 ‘순한맛’에 가까웠다.
안 본부장은 “10년간 시사 풍자를 하며 누군가에겐 상처, 혹은 불쾌함을 줄 수도 있다는 걸 배워서 이번엔 가능하면 드라이하게 접근하려고 했다”며 “‘여의도 텔레토비’는 좀 직접적인 풍자였다면, 이번엔 살짝 돌려 표현하는, 우회적 풍자를 의도했다”고 덧붙였다. 또, “‘한쪽에 치우쳤다’는 느낌이 들면 많은 시청자가 공감하긴 어렵기에 균형감을 가지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②다들 궁금해하는 뒷얘기, 민감한 화두 짚었다.
재난지원금, 물가, 코로나19도 빠지지 않았다. 안 본부장은 "민감한 화두일수록 코미디 프로에서 웃음을 더해 대신 말해주면, 최근 분노가 많은 사회에서 '해소 창구' 역할을 하지 않을까"라며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지친 시민들, 먹고 살기 힘든 상황 등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풀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각 당의 대선 후보를 섭외한 '주기자가 간다'의 경우 일견 불편할 수 있는 질문도 현장에서는 모두 웃음으로 마무리됐다. 안 본부장은 “사석에서 농담으로 할 수 있지만, 공식적으로 하기 어려운 말들을 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야 허를 찌르는 풍자고 코미디”라며 "직접 얼굴을 맞대고 같이 하는 코너라 후보도 웃음으로 넘기면서 편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후보 측 반응도 긍정적이다. A후보 캠프 관계자는 "너무 인신공격성이 아니라 어느 정도 선을 지키는 풍자라면, 좀 쓰리긴 해도 재미로 웃고 넘길 수 있는 것 같다"고 했고, B후보 캠프 관계자는 "후보의 정제된 면이 아니라 평소 모습을 편하게 보여줄 수 있어, 정치인에게도 꼭 독은 아닌 것 같다"고 언급했다.
③'불편러' 질문도 이들이 하면 웃긴다
자칫 민감해질 수 있는 이슈나 대사도 신동엽, 안영미, 주현영이 맡으면 웃음으로 끝났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분장한 신동엽이 명절은 쉬냐는 질문에 "쉬긴요~ 오히려 저희 입장에선 대목이죠"라고 말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안 감독은 “사회적으로 가장 첨예한 이슈를 꺼내도 제일 많은 분들이 ‘부드러운 눈’으로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신동엽이더라”며 “오래 크루로 함께한 안영미가 진지한 뉴스를 하는 역발상도 성공적이었다"고 했다.
‘인턴기자 주.현.영.입니다’로 메가 히트를 친 ‘주현영’ 캐릭터도 ‘주기자가 간다’ 코너 등에서 긴장감을 녹이는 역할을 쏠쏠히 했다. 안 본부장은 “20대 청년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표현하는 풍자에 목말라 있었다는 게 크게 느껴졌다”며 “20대를 대변하는 크루로, 민감한 질문도 주현영이 하면 웃어넘길 수 있게 ‘인턴기자’ 캐릭터에 푹 빠져서 너무 잘해줬다”고 평가했다.
④신생OTT, "자유도 100%"
지난해 12월 문을 연 신생 OTT 채널 ‘쿠팡플레이’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안 본부장은 “기존 채널이었다면 내부적으로 자체 필터가 걸렸을 수도 있는데, 이번엔 내용에 제약 없이 제작 자유도가 거의 100%"라고 흡족해했다.
다만 ‘쿠팡플레이’는 쿠팡 회원 중 로켓와우 서비스 이용자만 볼 수 있다. 쿠팡의 공시 자료에 따르면 로켓와우 이용자는 약 475만명으로 전 국민의 약 10%만 접근 가능한 플랫폼인 셈이다. 시청자의 폭은 한정적이지만, 안 본부장은 “아쉬움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많이들 보시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유튜브 '쿠팡 플레이' 채널에 공개된 '위켄드 업데이트' 하이라이트 영상의 조회수는 606만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안 본부장은 “‘SNL’ 시즌 1~9를 함께한 제작진 대부분이 이번 ‘리부트’도 함께 했는데, 방송국에서 제작할 때보다 기술적 어려움이 좀 있어서 고생한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며 'SNL리부트'는 곧 시즌2 준비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대선 후보 출연은 어렵지만, 더 많은 이슈를 다루고 '위켄' 외에 다른 코너의 시사 이슈 비중도 늘어날 전망이다. 안 본부장은 "SNL은 본래 정치 풍자가 주축이고, 대선 전까지 바짝 만들어보려고 한다"며 "사회적 이슈 풍자가 자유로운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한다. 시즌2에서는 더 고급스럽고 수위도 약간 높은 풍자를 선보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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