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한국 지정감사제 따라한다고?

데스크 2021. 11. 10.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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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감사인 지정제' 英도 채택 추진" 가짜뉴스 유감
회계법인 국가지정 국제 표준에 맞지 않아
기업은 국가의 또다른 강력한 규제로 인식
제52기 삼성전자 정기주주총회ⓒ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한 전직 국회의원이 지난 9월 29일 오전 페이스북에다 “○○○법 전 세계로 수출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내용인 즉, “미국은 법명에 법제정자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고 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2016년 대우조선해양 등의 분식회계를 기회로 2017년 주기적 지정제를 도입하는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을 개정했습니다. 제가 제도의 아이디어를 내고 법으로 설계하여 통과까지 주도적으로 역할을 하였습니다. 아마 제정자의 이름을 붙였다면 ‘○○○법’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법제도가 세계로 수출될 전망입니다. 제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의 회계투명성을 제고하는데, 일조하게 된다니 뿌듯합니다”고 썼다.


아마도 웃자고 하는 얘기겠다. ‘세계의 회계투명성을 제고’는 무슨, 한국 외 세계 어느 나라도 정부가 지정한 회계감사인이 민간 기업 감사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유시장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이 한국을 벤치마킹한다고? 턱도 없고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한 언론사가 “영국에서 한국의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벤치마킹하여 감사인 지정제도 도입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한 것이 오해의 진원지가 아닌가 한다. 위 언론보도는 전형적인 가짜뉴스다.


영국에서도 감사제도 개혁이 논의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영국이 한국의 감사인 지정제를 벤치마킹했다는 근거는 없다. 오히려 영국은 특수 상황이 아닌 한 전면적 감사인 지정제에 대해서는 명확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영국의 회계감사 및 기업지배구조 감독체계 개혁안의 주요 내용은 1개 기업을 2곳의 회계법인이 감사하는 ‘공유 감사제’(shared audit) 도입과, 기업 부실 등 특수 상황의 경우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 도입이다. 기업 부실 등 특수 상황의 경우 감사인 지정제도는 한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한국은 부실기업이 아닌 정상기업도 6년간의 자유감사계약 이후에는 3년간 반드시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하는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도록 법률로 강제했다. 이것은 회계법인의 무리한 대형화, 감사비용의 폭증, 감사품질 저하 등 수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올해 3월 영국 ‘사업·에너지·산업전략부’(BEIS)는 ‘감사 및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신뢰 회복’(restoring trust in audit and corporate governance)을 위한 ‘정책제안서’(policy paper)를 발표했다. 제안 내용 중 ‘7.2. 독립 감사인 임명’에는 ‘제한적 감사인 지정’에 대한 논의가 포함되어 있다. 그 내용은 대규모 상장법인에 대해서는 새로 ARGA라는 규제기관을 설치해 아래 3가지 일정한 상황 하에서 새로운 감사인 지정 권한을 이 기관에 부여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 일정한 상황이란 ①회사의 감사 품질에 문제가 있음이 밝혀진 경우, ②회사가 정상적인 순환 주기 때문이 아닌 다른 이유로 그 감사인을 교체한 경우, ③감사인 임명에 대해 주주들의 유의미한 반대표가 행사된 경우를 말한다. 이에 대해 존 킹맨(John Kingman·UK Research & Innovation 이사회 의장 및 Legal & General 그룹 이사회 의장)은 자신이 발표한 검토자료에서 감사인 지정에 대한 각계의 반대 주장을 소개하면서, 제한적 지정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응답자가 이와 같은 방향으로의 변경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요 반대 이유는 “감사인을 선임하는 것은 이사회의 고유한 권한이며, 실질적으로 감사는 회사 업무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매우 복잡한 업무이므로 정부기관이 이사회만큼 감사인 선임을 잘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증권선물위원회가 무슨 근거로 이 회사 저 회사에 감사를 꽂는다는 말인가?


독일의 ‘자본시장 투명성 강화 법률’의 주요 내용도, 기업이 외부감사인을 10년마다 무조건 교체하도록 의무화하는 ‘주기적 감사 교체제도’를 도입했을 뿐이다. 국가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따위의 황당한 짓은 한국 외 세계 어느 나라도 하지 않는다.


결국 위 언론의 보도내용과 달리, 영국과 독일에서 우리나라의 제도를 벤치마킹했다는 근거는 없고, 전면적인 감사인 지정제를 도입을 논의한 적도 없다. 영국은 회계 개혁 논의만 3년째 심사숙고하고 있는 중이며, ‘제한적 감사인 지정제’가 거론되었으나 영국에선 이것조차 최종 도입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자유시장 자본주의 본산인 영국에서 지정감사제가 도입된다고 믿는 것은 영국을 몰라도 너무 모른 탓이다.


전술한 것처럼 영국식 제한된 지정감사제 정도는 2017년 외감법이 개정되기 훨씬 전에 이미 한국에 도입됐다. 현행 외감법 제11조(증권선물위원회에 의한 감사인 지정 등) 제1항에 증권선물위원회가 외부감사인을 지정할 수 있는 사유 12가지를 정해두고 있다. 예컨대 3개 사업연도 연속 영업이익이 0보다 작은 회사, 3개 사업연도 연속 영업현금흐름이 0보다 작은 회사, 3개 사업연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회사, 그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재무기준에 해당하는 회사 등(제6호), 주권상장법인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증권선물위원회가 공정한 감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지정하는 회사(제7호) 등이다. 영국법상 제한적 지정감사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포괄적이고 상세해 이미 이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멀쩡한 기업까지 6년 후엔 반드시 지정감사를 받도록 한다.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부 파견 감사인이 사기업을 감사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조급하게 도입된 한국 지정감사인제도는 기업에 막대한 감사비용 부담을 안기고, 회계법인은 인력 부족으로 인해 내실 있고 시간적으로 충실한 감사를 진행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지금 회계업계는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고, 80세 노인도 회계사 자격증만 있으면 러브콜이 이어진다고 한다. 반면 기업들만 골병이 든다. 기업이 범죄집단인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이런 반시장적 법률로 기업인들은 복장이 터진다. 이것도 모자라 한국 제도가 영국에 수출된다는 턱도 없는 가짜뉴스까지 나돈다.


민간 기업은 국가 소유가 아니다. 민간 기업이 망하면 주주가 가장 큰 피해를 입기 때문에 당연히 회사가 심사숙고해 역량 있는 외부감사인을 선임해야 한다. 제3자일뿐이며 회사가 망해도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해야 할 이유가 없다.


글/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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