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렀던 잎사귀들 비에 젖은 낙엽 되어 거리를 뒹구네 [스밍]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2021. 11. 1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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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밍: 이번 주엔 이 노래] 캐논볼 애덜리 'Autumn Leaves'
*스밍(streaming): 온라인 음원 실시간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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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고 바람 불어 낙엽은 모두 쓰레기가 되었다. 모든 생명은 무상(無常)하지만 엊그제까지 밟힐 때마다 사그락대며 가을의 정취를 풍기던 마른 잎들이 갈가리 찢긴 흉물로 변했다. 그것들은 지난 봄 보드라운 연초록 새순이었다. 여름엔 세상을 녹색으로 덮으며 그늘을 드리우던 젊은 잎사귀였다. 봄부터 가을까지 나무의 주인공이었던 잎들이 하나 둘 노랗고 빨갛게 물들더니 짧은 생을 마감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뿌리의 힘으로 겨울을 나야 하는 나무는 줄기를 어떻게든 살리지만 잎사귀는 건사할 수 없어 떨구고 만다. 잎사귀는 봄에 다시 틔우면 되는 소모품일 뿐이다. 잎사귀의 복수형이 ‘leaves’인 것은 떠나야 할 운명이기 때문인 것이다. 거리의 낙엽을 보며 세상 이치를 새삼 깨닫는다.

▼이브 몽탕 - Les feuilles mortes

‘Autumn Leaves’는 샹송에서 재즈 스탠더드 명곡이 된 노래로, 이맘 때 자주 들을 수 있다. 1945년 영화음악으로 만들어졌을 때 이 노래의 프랑스어 제목은 ‘죽은 잎사귀들(Les Feuilles mortes)’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소개될 때 ‘고엽(枯葉)’이란 제목이 붙었다. 영화음악일 때는 소프라노가 불렀으나 1950년 이브 몽탕이 다시 부르면서 유명해졌다. 시를 읊듯 노래하는 이브 몽탕의 가느다란 음색이 더없이 감미로우면서 헤어진 연인을 향해 노래하는 쓸쓸함을 자아낸다.

▼로저 윌리엄스 - ‘Autumn Leaves’

영어로 번역된 이후엔 냇 킹 콜과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발라드 가수들의 애창곡이 됐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재즈 연주곡으로 발표됐다. 특히 로저 윌리엄스가 연주한 ‘Autumn Leaves’는 1955년 빌보드 1위에 올랐다. 피아노 연주곡이 빌보드 정상에 오른 것은 이 곡 외에 전무후무하다. 왼손으로 주 멜로디를 연주하고 오른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훑어내려오는 편곡이 당시로서는 매우 신선한 느낌을 준 듯하다.

재즈 연주로는 무려 1400회 이상 리메이크됐다고 한다. 그 가운데 앨토 색소포니스트인 캐논볼 애덜리 버전을 최고로 꼽고 싶다. 1958년 발표된 앨범 ‘Somethin’ Else’에 수록된 이 곡에는 무려 마일스 데이비스가 세션 연주자로 참여했다. 피아노에 행크 존스, 베이스 샘 존스, 드럼 아트 블레이키까지 당대 최고의 수퍼 재즈밴드라고 할 수 있다. 캐논볼은 이 앨범 이전에 마일스 음반에 참여해 큰 도움을 줬고 명반 ‘Kind of Blue’에서는 마일스 밴드의 정규 멤버로 활동했다. 마일스가 캐논볼 앨범에서 트럼펫을 분 것은 이에 대한 보답 차원이었다고 한다.

▼캐논볼 애덜리 - ‘Autumn Leaves’

이 곡은 마일스의 트럼펫으로 시작해 캐논볼의 앨토 색스로 이어지는데, 누가 곡의 리더인지 모를 만큼 두 사람의 연주가 용과 호랑이의 대결을 보는 듯하다. 두 사람 모두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던 때여서, 숨으로 불어넣어 소리를 내는 악기로 저렇게 섬세하고 미묘한 음색을 만들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감동적인 연주를 들려준다.

▼쳇 베이커 - ‘Autumn Leaves’

쳇 베이커가 연주한 버전은 캐논볼 버전보다 훨씬 경쾌하고 밝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 곡을 녹음하던 1974년 쳇은 이미 마약으로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성한 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구강 상태도 나빴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그는 믿기 어려울 만큼 감미로운 소리를 낸다. 이 곡의 또 다른 감상 포인트는 앨토 색소폰을 분 폴 데스몬드와, 키보드를 연주한 밥 제임스, 베이스 론 카터, 드럼을 맡은 스티브 갯 같은 최고 실력자들의 세션 연주다. 이 곡을 녹음할 때 이미 거리를 뒹구는 젖은 낙엽 같은 신세였던 쳇은 이후 1988년 암스테르담의 한 싸구려 호텔 앞 거리에서 변사체로 발견될 때까지 지독하게 엉망진창으로 살았다. 그의 말년은 하수구 근처를 맴도는 낙엽 같았다.

▼에릭 클랩튼 - ‘Autumn Leaves’

에릭 클랩튼도 이 노래를 연주하고 불렀다. 이 노래가 실린 2010년 앨범 ‘Clapton’은 클랩튼 팬이라면 소장해야 할 명반이다. 노년에 접어든 클랩튼의 기타와 노래가 모두 한결 편안해졌고, 젊은 시절 쳇 베이커 못잖게 엉망으로 살았던 그가 점잖은 어른이 되어 말년을 시작하는 듯한 앨범이다. 이 곡의 하이라이트는 후반 2분 여의 기타 독주다. 클랩튼의 기타는 이 노래를 부른 어떤 가수의 노래보다도 절절하게 떨어지는 잎사귀들을 묘사한다. 이제는 어찌해 볼 도리 없어 그저 그리워하는 수밖에 없는 것은, 옛 연인 뿐 아니라 인생 자체이기도 하다. 그 역시 그제서야 낙엽의 의미를 알게 됐는지도 모른다.

[지난 스밍 List!] ☞조선닷컴(chosun.com/watching)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해바라기 ‘그날 이후’

🎧배호 ‘마지막 잎새’

🎧정밀아 ‘꽃’

🎧신해철 ‘Here, I Stand For You’

🎧박지성 응원가 ‘개고기 송’ 원곡…19세기 찬송가 ‘춤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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