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노태우
부친의 입에서 그가 아닌 다른 이의 이름이 나왔다. 1987년 대선을 앞둔 어느 날 누구를 뽑을 거냐는 아들의 질문을 받고서다. 의외였다. 당시 우리 동네 어른들 사이에서는 특정 프로야구팀을 응원하는 것만큼이나 그를 찍는 걸 당연시하던 분위기가 있었다.
이유를 여쭙자 “군사정권은 이제 끝내야지”란 답이 돌아왔다. 군사정권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도 부족했던 까까머리 중학생에게 와 닿는 답은 아니었다. 부친이 표를 던졌던 인물이 낙선하고 그가 당선된 이후에도 입시준비에 바빴던 기자에게 군정 연장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그는 더듬거리면서 서울올림픽 개회 선언을 하던 할아버지일 뿐이었다.
대학생이 됐을 때 그는 여전히 권좌에 있었다. 그리고 기자는 그때야 군사정권의 실체를 실감하게 됐다. 그는 군정 종식을 외치던 대학생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시위 도중 ‘백골단’의 곤봉에 맞거나 ‘토끼몰이’ 과정에서 깔려 사망한 학생들이 속출했다. 그에게 저항하는 차원에서 스스로 꽃다운 목숨을 버린 이들도 줄을 이었다. 그가 당시로부터 10여년 전 발생한 군사반란과 광주에서의 민간인 학살에 큰 책임이 있다는 사실도 그때 제대로 알게 됐다. ‘물태우’ ‘노가리’ 등 우유부단함 또는 유연함을 강조한 별명들에도 불구하고 그는 본질적으로 압제자였다.
군정이 종식되고 세상이 바뀌면서 그는 감옥에 갔고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 그리고 또 한 번 세상이 바뀌면서 거짓말처럼 풀려났다.
그가 사선(死線)을 여러 번 함께 넘은 친구이자 전임자와 달랐던 건 특별사면 이후 몸을 낮춘 채 조용히 살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말년에 가까워지자 아들을 통해, 또는 아들에 의해서 여러 번 과거 행위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뜻을 표했다. 진정성에 대한 의문이 작지 않지만, 세상에는 형식이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경우가 있는 법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공적에 대한 인정을 어느 정도 받은 것 역시 이런 반성과 사죄 덕택이다.
그보다 역사에 져야 할 책임이 더 크면서도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전임자가 배웠으면 하는 덕목이다.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구국의 결단’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오명을 조금이나마 희석하는 차원에서라도 더 늦기 전에 반성과 사죄를 했으면 좋겠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박진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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