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호의 시시각각] 구멍 난 핵우산도 괜찮은가
재래전 및 생화학 공격 위험 커져
종전선언, 교황 방북할 때 아니야
한국 정치는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1968년 그레고리 헨더슨 전 미국 대사관 문정관이 그의 역작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Korea: The politics of the vortex)』에서 지적했듯, 온 국민의 관심까지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요즘 같은 대선 정국에선 더 말할 나위 없다. 이 때문에 마땅히 초미의 관심사가 돼야 할 나라 밖 움직임조차 무시된다.
최근 전 세계를 들끓게 한 미 바이든 행정부의 ‘핵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NFU)’ 원칙 논란이 바로 그런 사안이다. 지난달 말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내년 초에 발표할 '핵 태세 검토 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 내에 사실상 핵무기 선제 사용을 금지하는 '단일 목적(Sole Purpose)' 원칙을 포함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핵 공격으로부터 미국과 동맹국을 보호하거나 이에 대해 보복할 경우에만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원칙이다. 단일 목적 원칙이 채택되면 적국이 미국과 동맹국을 공격하더라도 재래식 무기만 사용할 경우 핵폭탄으로 반격하지는 않겠다는 얘기다.
이 정책은 의도치 않은 국지적 충돌이 핵전쟁으로 비화하는 걸 막는 효과가 있다. 예컨대 동유럽에서 예기치 않은 미·러 전투기 간 소규모 전투가 일어났다고 치자. 이 작은 전투는 자칫 더 큰 군사적 충돌로 확대될 수 있다. 이럴 경우 러시아는 미국의 핵 공격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판단되면 먼저 핵무기로 미 군사 시설을 파괴하려 할 위험이 있다. 소규모 국지전이 전 세계를 멸망으로 이끌 핵전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NFU 원칙을 공식화했다면 러시아도 핵무기 사용을 자제하게 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원하는 바다. 또 선제 공격용 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없어 국방비도 아낄 수 있다.
이런 장점으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 때부터 이 원칙을 지지해 왔다. 그가 대통령이 된 뒤 '단일 목적', 즉 NFU 원칙을 채택하려는 것도 놀랄 일이 못 된다.
하지만 이 같은 방침이 알려지자 미국의 동맹국인 영국·독일·프랑스 등 나토 회원국과 일본·호주에선 난리가 났다. 국가 안보의 기틀인 미국의 핵우산에 구멍이 나게 됐다고 보는 까닭이다. 이들이 비관적인 이유는 여럿이다. 첫째, 핵무기를 먼저 안 쓰게 되면 재래전 공격 위험이 커진다. 러시아와 중국이 막강한 재래식 군사력으로 각각 나토 회원국과 일본·호주를 공격해 올 경우 핵무기가 아니면 이를 제대로 막아낼 방법이 없다. 둘째, 적국이 핵무기 못지않게 위험한 세균·독가스 같은 대량살상용 생화학 무기로 공격해도 핵무기로 반격하지 못하게 된다. 끝으로 NFU 천명은 미국이 동맹국 안보에 소홀해지고 있다는 신호로 비칠 수 있다. 이런 탓에 동맹국들은 바이든 행정부를 상대로 단일 목적 원칙을 버리라고 맹렬히 로비 중이라고 한다.
그럼 같은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의 현 정부는 어떤가. 대미 로비는커녕 위기감조차 못 느끼는 듯하다. 지난 4일 국방부 측은 NFU 원칙의 영향을 묻는 말에 미국의 '핵우산' 제공 공약엔 "변함이 없다"고 답할 뿐이었다.
우리 안보는 두 기둥이 받치고 있다. 미국의 핵우산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이 중 17조원을 투자하는 KAMD는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로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핵우산마저 흔들리게 됐으니 여간 심각한 사태가 아닌 것이다. 미국의 동맹국 한국으로서는 자체 핵 개발 카드를 다시금 만지작거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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