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만해의 상무정신과 보살의 눈물

2021. 11. 9.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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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성 경희대 명예교수

망국에 대한 만해 한용운(1879~1944)의 울분과 한(恨)은 깊었다. 조선 독립을 위해 싸우면서도 민족이 패배자가 된 일을 슬퍼하고, 현실을 견디면서도 때로 눈물을 흘렸다. 필자는 ‘출세간의 해탈도 꿈’으로 보던 만해를 좋아했고, 그의 세계정세론, 자기책임론, 상무정신도 높이 보아왔다. 간디를 읽었지만 만해에 대한 든든한 감정은 많이 남아있다.

만해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쓴 ‘조선독립의 서’(1920)는 다음 구절로 시작한다. ‘자유는 만유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죽은 시체와 같고 평화를 잃은 자는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이다. (···) 참된 자유는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음을 한계로 삼는 것으로서 약탈적 자유는 평화를 깨뜨리는 야만적 자유가 되는 것이다.’ (『전집』1, 1980)

「 외세에 대한 무지, 내부의 부패로
조선은 침략 이전에 자멸했다
자유·평화 지키는 데 힘이 필수
약자를 돕는 일에도 주저 말아야

자유가 없어지면 생명·평화·행복도 없다. 일본제국은 마음대로 조선의 자유를 침해하고 약탈했다. 그런데 조선은 왜 자유와 생명을 빼앗겼을까? 외세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시 ‘세모’(歲暮, 1931)에서 만해는 그리 말한다.

‘산 밑 작은 집에 두어 나무의 매화가 있고 주인은 참선하는 중이다.// 그들을 둘러싼 첫 겹은 흰 눈, 찬바람 혹은 따스한 빛이다.// 그 다음의 겹과 겹은 생활·전쟁·주의·혁명 등// 가장 힘 있게 전진되는 것은 강자와 채권자의 권리행사다.// 해는 저물었다. 모든 것을 자취로 남겨두고 올해는 저물었다.’

산에서 참선한다고 해도 세 겹의 현실을 피할 순 없다. 흰 눈, 찬바람, 따스한 빛이 그 첫째 겹이고, 생활·전쟁·주의·혁명이 그다음 겹이다. 마지막 겹은 강자와 채권자 곧 외세의 권리행사다. 왕과 백성은 이런 권리행사를 알지도 대비도 못 해서 조선은 망했다. 무지·무능의 책임이 우리에게 있으니 결국 자기책임론이다.

‘한용운공소공판기’(1920)에 나오는 자기책임론은 더 분명하다. 만해는 “어떠한 나라든지 제가 스스로 망하는 것이지 남의 나라가 남의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없는 것”이며 “우리나라가 수백 년 동안 부패한 정치와 조선 민중이 현대문명에 뒤떨어진 것이 합하여 망국의 원인이 된 것”이라 했다. 그는 부패 정치와 현대문명에서의 낙후가 망국의 원인이라 하면서, 위정자와 민중 모두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또 ‘반성’(1936)에서 망국의 한이 깊어도 그 원인을 제거해서 제2, 제3의 정복국에게 다시는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 한을 제대로 푸는 길이라 했다.

만해는 사람을, 선, 악 그리고 더 큰 악, 이렇게 셋으로 나눈다. 우월하고 승리한 자가 되어 민중을 보호하고 만물을 애육하는 자가 되는 것이 선이고, 사람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악이다. 그런데 힘이 없어서 열등한 자, 패배한 자가 되는 것은 더 큰 악이다. 만해는 “패자(敗者)가 되면 만물의 영장 되는 권리를 포기하는 자”라고 해서 패배자에게는 인간의 권리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만해는 이순신과 을지문덕을 기리는 시조도 지었다. 상무정신의 극치다. ‘이순신 사공 삼고/ 을지문덕 마부 삼아//파사검(破邪劍) 높이 들고/ 남선북마 하여 볼까.// 아마도 님 찾는 길은/ 그뿐인가 하노라.’

100년 뒤에도 국가흥망의 원리는 같다. 우리는 모두 강자들의 움직임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의 김정은은 생존을 위해 언제든 핵무기로 강자의 권리행사를 할 수 있다. 북한과의 신뢰구축을 위해 한국은 남남갈등을 극복해서 지속성 있는 대북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동시에 출중한 장군의 지략으로써 방어무기체계는 스스로 갖추고, 미국의 핵확장 억지력은 공유하자. 한반도평화를 위해서도 미·일이라는 강자들과 협력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전쟁과 평화의 중간에서도 잘 견디자. 성급하게 평화하려다 당하는 것보다 백번 낫다.

만해의 상무정신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해방은 주로 미국의 힘으로 왔다. 만해는 ‘조선독립의 서’에서 티베트 민족도 우리처럼 자존(自存)을 꿈꾸고 있다고 썼다. 그들은 현재 수백 배 강한 힘을 가진 중국의 폭력적인 압제하에 있다. 자비와 비폭력 정신으로 독립 아닌 자치만을 수십 년째 호소해왔다. 저 비원에도 응답은 없다.

만해의 시 ‘찬송’에서 ‘님이여, 당신은 봄과 광명과 평화를 좋아하십니다. 약자의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자비의 보살이 되옵소서’라는 구절을 골라 달라이라마에게 보내며 ‘존자님, 당신은 이미 보살이십니다’라고 말하면 위로가 될까?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우리가 약자를 돕는 정도 만큼, 강자들 앞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은 높아질 것이다.

허우성 경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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