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뛰고 경기는 비실 'S공포' 확산..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과 닮은꼴?

배준희 2021. 11. 8. 16: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뜻하는 ‘S공포’가 전 세계를 덮쳤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침체(stagnation)와 물가 상승(inflation)의 합성어다. 고물가와 실업(失業), 경기 후퇴가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국과 중국 등 G2 국가에서 최근 밝힌 각종 거시지표는 1970년대 전 세계를 휩쓸었던 스태그플레이션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는 진단이다.

▶G2, 물가 뛰고 성장 침체

▷한국도 예외 아냐

세계 경제의 ‘심장’ 미국에서는 시장 예상을 밑도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가운데 물가는 오름세를 이어갔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3분기(7~9월) 경제성장률이 연율 기준 2%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월가 예상치를 밑돈 수준이다. 공급망 병목 현상이 여전한 가운데 ‘위드 코로나’ 정책 전환으로 정부 재정지출이 감소한 것이 소비 둔화로 이어져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성장률이 부진한 가운데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0년래 최고치를 찍었다. 미 상무부는 지난 9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가 전달보다 0.2%, 1년 전보다 3.6%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는 1991년 5월 이후 30년 만에 가장 높다. 근원 PCE는 변동성이 높은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수치다. 연준은 이 수치를 기반으로 인플레이션 추이를 분석한다.

중국의 여러 지표도 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를 키웠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10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2로 나타났다. PMI는 제조업 경기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선행지표로 50보다 낮으면 경기 후퇴 조짐이 보인다는 의미다. 49.2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던 지난해 2월의 35.7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반면 물가는 급속도로 뛰었다.

무엇보다 이들 G2 국가는 한국 경제와 상관관계가 매우 높아 상황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속보치는 0.3%로, 시장 전망치를 밑돌았다. 지난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 같은 달보다 2.5% 올라 4월(2.3%) 이후 6개월째 2%대를 기록했다. 분기별 성장률이 지난 1분기(1.7%) 이후 3개월 연속 낮아지자 경기 침체 속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든 것이다.

▶공급망 병목 여전

▷고용 시장 미스매치도 영향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키운 요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세계 경제의 성장률을 갉아먹은 것은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공급망 병목 현상이다. 특히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변이 바이러스 감염이 확산하자 반도체 생산 공장이 잇따라 멈춰 서면서 반도체 공급난이 심화됐다.

고용 시장에서의 수요-공급 미스매치 역시 경제 성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가령, 미국에서는 유통 업계 중심으로 ‘리오프닝(재개장)’에 대비해 기업 일자리 수요가 일시적으로 급등했지만 노동력 공급은 부족한 현상이 빚어졌다. 이런 현상을 부추긴 요인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실업수당이 첫 번째로 꼽힌다. 바이든 정부 추가 부양 패키지에 따라 연방정부는 지난 9월까지 주당 300달러씩 추가 실업수당을 지급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 몬태나주의 경우 주 차원의 1인당 주당 실업급여는 최대 572달러지만 여기에 연방정부의 추가 실업수당 300달러가 더해진다.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매달 3488달러(약 390만원)를 받을 수 있다. 그 결과, 코로나 국면에서 서비스 시장을 중심으로 상당수 인력이 노동 시장을 이탈했다. 사정이 이렇자 주요 유통 기업에서는 임금을 올려서라도 고용을 늘리려 했으나 즉각적으로 인력 채용을 늘리는 데 한계가 따랐다. 결국 노동 시장에서의 미스매치로 주요 기업은 시장 수요만큼 공급을 늘리지 못했고, 고용 시장을 이탈했던 근로자들은 정부의 재정지출 축소 우려에 씀씀이를 줄여 소비가 부진했다는 진단이다.

물가 상승 요인은 수요와 공급 측면으로 구분해봐야 한다. 수요 측면 충격은 코로나19 사태 극복 과정에서 전 세계 정부의 재정·통화 정책으로 시장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다. 여기에 최근 공급 측 돌발 변수가 물가 상승의 기폭제가 됐다. 공급 측면에서 유가 등 원자재 가격 급등이 주된 원인이다. 공급 측면 악재는 또 있다. 주요 국가들이 친환경 규제를 강화하면서 ‘그린플레이션’ 현상이 고착화할 조짐을 보인다는 것이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공급 충격, 정부의 무분별한 재정·통화 정책으로 인한 수요 충격, 백신 효과에 따른 경기 회복 기대 심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스태그플레이션 갑론을박

▷1970년대 환경과 동조화 주목

단, 전문가들은 대체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일시적일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인플레이션 여부를 판단하는 데 쓰이는 정책적 지표인 근원물가만 놓고 보면 아직 인플레이션의 본격화 단계로 보기는 이르다는 진단이다. 경기 후퇴 역시 아직은 두고 봐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위드 코로나 전환으로 내년부터 글로벌 공급망이 서서히 정상화되면서 기업 이익도 견조한 증가세를 보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구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가운데 물가가 뛸 경우 결국 수요 둔화로 물가 상승세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봤다.

그러나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가볍게 넘길 게 아니라 코로나 국면에서 새롭게 등장한 변수에 주목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만만찮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과 여러 면에서 겹치는 대목이 적지 않아서다.

눈에 띄는 대목은 노동조합의 급부상이다. 1970년대 당시 물가 상승-임금 인상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형성됐던 것은 강력한 노동조합의 존재 때문이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197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체 노동자의 약 38%가 노조를 통해 임금 수준을 교섭했다. 1976년 미국 노조 가입 노동자 60% 이상은 인플레이션에 따라 임금이 자동 조정되는 ‘생계비조정(COLA)’ 조항으로 임금을 보전했다.

최근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여파와 맞물려 노조 활동이 여느 때보다 활발한 것이 이런 신중론을 뒷받침한다. 미국에서는 ‘스트라익토버(Striketober·파업을 뜻하는 ‘Strike’에 10월을 뜻하는 ‘October’를 합친 말)’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노조 활동이 급증했다. 미국 기업의 잇단 리쇼어링(생산 기지 본국 회귀)과 코로나 사태로 촉발된 고용 시장 미스매치는 노사 간 힘의 균형을 일거에 역전시켰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실질임금을 떨어뜨리자 노조는 임금 인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관찰되는 물가 상승 정도는 사실상 인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한 수준”이라며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1%대에 머물고 물가 상승률이 2%대 중후반에서 지속되면 스태그플레이션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물가 상승 원인이 공급 측면에 있는 만큼 기업들의 비용 부담을 완화해 활력을 찾도록 돕는 것이 해법”이라고 말했다.

[배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33호 (2021.11.10~2021.11.16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