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올해는 블랙리스트 예술감독 논란

장지영 2021. 11. 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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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예경 이관 이후 축제 정체성 계속 약화.. 서울아트마켓과 시너지 효과도 의문
2021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포스터.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가 7일 막을 내렸다. 예술경영지원센터(예경)가 주최하는 SPAF(스파프)는 지난달 10월 7일 개막해 대학로 등에서 22편을 선보였다. 축제 기간은 예년보다 늦게 시작하면서도 2주 가까이 연장됐지만 특별한 화제성 없이 조용히 치러졌다.

올해 유난히 스파프의 존재감이 낮았던 것은 라인업 발표가 예년보다 한 달 이상 늦춰졌을 뿐만 아니라 라운드테이블 등 부대행사를 통한 이슈 메이킹이 안됐기 때문이다. 특히 전체 라인업을 9월 초 스파프 자체 블로그에 올리긴 했지만, 외부에 공식적으로 알리는 첫 보도자료를 축제 개막 1주일 후에나 내는 등 홍보에 소극적이었다. 당초 예경은 축제 폐막 이후 결산 보도자료만 내려다가 본보의 문제 제기 이후에야 첫 보도자료를 냈다.

이해하기 어려운 스파프의 태도는 올해 예술감독을 선임했다가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물러나면서 준비 과정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와 맞물려 스파프가 국립극단과 공동주최 형태로 공연을 올리려던 계획이 불발되면서 급하게 공연장을 새로 구해야 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예경과 공연계의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올봄 스파프 예술감독으로 위촉된 최준호 감독이 축제 프로그램을 준비하던 중 ‘블랙리스트 재발방지 제도 개선 이행협치추진단(블랙리스트 이행추진단)’ 민간위원인 김미도 평론가와 이양구 연출가 등의 문제 제기에 자진 사퇴했다. 최 감독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가 펴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에서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 예술감독으로서 작품 검열과 예술인 배제에 주요 역할을 수행했다고 서술돼 있다. 최 감독은 “블랙리스트 조사 당시 내가 소명했던 것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나 때문에 스파프가 피해를 보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예술감독을 사퇴했다”고 밝혔다.

2001년 설립부터 문체부 지시로 운영주체의 잦은 변경

스파프는 2001년 설립 때부터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의 지시에 따른 운영주체와 조직의 잦은 변경에 시달렸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운영주체 변경은 15회를 마친 직후인 2015년 11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 공연예술센터(Hanpac·한팩)에서 예경으로 넘어간 것이다. 예경이 대표 사업인 서울아트마켓(PAMS·팸스)과 함께 스파프를 운영함으로써 한국 공연의 해외 진출 시너지 효과를 높이겠다는 문체부의 결정에 따랐다. 하지만 축제 인력과 극장이 확보되지 않은 이관에 대해 비판이 일자 예술위의 스파프 담당자 2명이 2년간 파견 가는 한편 아르코·대학로 예술극장을 운영하는 예술위가 공동주최 하는 형태로 정리됐다.
2021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여 작품들.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예경 이관 이후 스파프의 상황은 공연계의 우려대로 예산과 인력 등 여러 면에서 한팩 시절보다 악화했다. 또 2010년 민간 독립기구에서 한팩에 흡수되며 사실상 사라진 스파프 예술감독직은 예경 이관 이후에도 부활하지 못했다. 예경은 이병훈 연출가와 최상철 안무가를 각각 연극 및 다원예술과 무용 부문 프로그래머로 두고 작품 선정에 도움을 얻었다. 하지만 예술감독이 없기 때문에 축제의 정체성을 보여주거나 공연 유통 플랫폼 역할을 하지 못한 채 그저 국내외 작품을 맥락 없이 관객에게 보여주는 데 그쳐왔다.

이와 관련 예경은 지난 2019년 김도일 전 대표 취임 이후 구성한 자문위원회에서 예술감독의 필요성을 제기되자 이듬해 TF팀을 꾸려 후보들을 추렸다. 그리고 최종 후보 3명 가운데 자타공인 국제 교류 전문가인 최 감독을 예술감독으로 위촉했다. 최 감독은 스파프 감독으로 위촉된 이후 2019년부터 맡아왔던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예술감독에서 물러났다. 스파프에서 최 감독은 연극·무용·다원예술 분야의 기획자 및 연출가 3명과 함께 작품을 선정하는 한편 아트&테크 등 몇몇 주제로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지난 7월 블랙리스트 이행추진단과 문체부의 회의에서 김미도 평론가가 최 감독의 선임 소식을 공론화하자 문체부는 예경에 관련 사항을 이행추진단에 설명하라고 권고했다. 김 평론가는 “문체부에서 예경에 어떤 방식으로 전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도일 전 예경 대표가 나와 이양구 연출가에게 만나자고 했다. 하지만 김 전 대표는 최 감독 선임을 취소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연출가는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문체부는 블랙리스트 관련자들을 유관 업무에서 배제하도록 했다. 하지만 산하기관에 대해선 그런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이 같은 대화가 오간 것을 들은 최 감독이 예경에 사의를 표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2010년 민간 독립기구에서 한팩에 흡수되며 예술감독 사라져

이와 관련 예경 관계자는 “예경이 주관한 한·불 상호교류의 해 당시 최 감독님은 안팎의 압력 속에서 행사를 제대로 진행하기 위해 정말 애쓰셨다.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최 감독님이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예술감독도 하셨기 때문에 스파프를 이끄는 것에도 문제가 없을 거로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블랙리스트 문제가 제기되자 최 감독님이 사임하셨다. 그리고 최 감독님의 사임으로 계획했던 것들이 중단되면서 예경이 올해 축제에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2021 서울아트마켓 포스터

다만 국립극단과 스파프가 공동 기획으로 올리려던 공연이 취소된 것은 블랙리스트 관련이 아니라는 게 김 평론가의 설명이다. 김 평론가는 “국립극단 레퍼토리 자문위원회에서 연간 기획 중 창작극이 부족한 상황에서 번역극이 너무 많은 데다 스파프 등 외부 단체와의 공동 기획이 4건이나 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광보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취소 관련해선 노 코멘트 하겠다. 최종 결정은 예술감독인 내가 내렸다”고 말했다.

예경에 축제 전문 인력 부족… 전문가들은 개선에 회의적

한편 스파프의 존재감 하락은 비단 예술감독 논란을 겪은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0년 민간 독립기구에서 한팩에 흡수되며 계속된 것으로 예경 이관 이후 더욱 심각해졌다. 예경 관계자는 올해 스파프에 대해 “대부분의 공연이 매진이었다”고 강조하지만, 작품당 공연횟수가 2~3회에 불과하면서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로 좌석의 50%만 팔리는 상황에서 매진이 안 되는 게 이상하다. 오히려 스파프에 대한 예경의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렇게 된 데는 예술감독 외에 예경에 축제 전문가가 없는 데다 현재 실무 담당자도 3명에 그치기 때문이다. 이마저 지난 여름 1명이 충원된 것인데다 스파프와 팸스를 같이 맡고 있어서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실례로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뒤늦게 스파프를 비대면 온라인 중계로 방침을 정했을 뿐만 아니라 영상물 제작 및 등급 심의 등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해 온라인 개막을 기존 축제보다 한 달 이상 늦춘 것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지난해 온라인으로 개막한 팸스 역시 플랫폼 시스템 장애로 행사가 지연되기 일쑤였고 접속자의 수 역시 민망할 정도로 적었다. 올해는 시스템 장애를 피했지만, 여전히 저조한 관심을 받는 데 그쳤다.

올해 스파프의 국내 공모 심사나 팸스 프리젠터 등으로 참여한 공연 관계자들은 “스파프는 국내 대표 공연예술축제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 한 지 오래 됐다. 하루빨리 제대로 된 축제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스파프와 팸스의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는 것도 원점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문제는 현재 예경이 스스로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다들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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