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욱의 슬기로운 금융] 반환점 돈 유동성 파티.. 'K자 양극화' 취약계층 대책 급하다

2021. 11. 8.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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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를 서서히 줄이겠다는 테이퍼링(tapering)을 선언했다. 이로 인해 유동성 파티가 갑자기 끝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반환점은 돌았다고 본다. 이제 경기도 회복되고 물가도 잡히는 등 경제는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안타까운 것은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피해자가 생긴다는 점이다.

엄청난 유동성 공급으로 경기 방어 성공

한때 화폐금융론의 전유물이었던 유동성(liquidity)이라는 말이 이제는 일상적 용어가 돼 버렸다. 현금은 물론 현금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예금이나 적금까지도 모두 돈으로 보겠다는 말인데, 이 유동성이 코로나19가 대유행하기 시작한 작년 이후로 엄청나게 늘었다. 미국의 경우 지금까지 대략 7000조원이 풀렸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500조원가량 늘었다. 무너지는 경제를 떠받치기 위한 극단적 조치였는데, 이것이 주효해 경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 경제성장률이 작년 -3.2%에서 금년에는 6%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동성 공급 확대의 폐해, K자 양극화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경기 회복과 함께 물가 불안 그리고 양극화라는 시장경제의 복병이 불거졌다. 이른바 K자 경기 회복이다. K자 윗부분은 자산가, 전문가, 대기업, 디지털산업이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 이전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K자 밑부분에 있는 특별한 기술이 없는 단순 근로자는 코로나에 일자리를 잃었고, 많은 자영업자가 파산했다. 중소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기업 중 작년 한 해에 사업으로 번 돈으로 대출금 이자를 못 갚는,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의 취약기업이 40%를 넘어섰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양극화가 심화되는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공급된 유동성이다. 유동성이 늘면 물건 값이 상승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물가 불안이 야기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물건이란 것이 소비자물가를 산출하는 생필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식, 부동산과 같은 자산도 있다. 물가도 올랐지만, 자산가격은 더 올랐다.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에 비해 5.4% 올랐는데, 집값은 3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한 19.7%나 뛰었다. 비트코인이나 주식은 말할 것도 없다. 돈을 빌려서 혹은 여윳돈으로 자산을 산 사람은 벼락부자가 된 반면, 서민들은 생필품값이 올라 살림살이가 더욱 팍팍해졌다. 그 과정에서 빚은 계속 늘어만 갔다.

유동성은 금리에 좌우

사실 유동성의 원형(原形)은 빚이다. 빚을 얻어 한 번만이라도 거래를 하면, 빚은 원래 주인을 잊고 유동성으로 거듭난다. 부도를 막으려고 했든지, 아파트를 사려고 했든지 간에 사람들이 대출을 받으면 시중에 유동성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그리고 금리가 내려가면 대출이 는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 위기를 맞아 유동성을 늘리기 위해 금리를 대폭 낮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는 0.5%까지 내려갔었고, 미국 유럽연합(EU) 등은 0%까지 낮췄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채권 등을 사주는 방식으로 시중에 돈을 퍼부었다. 이른바 양적완화다.

이제 경기 회복이 가시권에 접어들고 물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게 되자 세계 각국은 유동성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주 미 연준이 테이퍼링을 발표하면서 금리 인상과 연계하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금리가 들썩이고 있다. 금리가 올라가면 대출 수요가 둔화되고, 당연히 시중 유동성은 줄게 될 것이다(테이퍼링만으로는 유동성이 줄지 않는다).

파티의 끝에는 양극화 심화가 기다린다

본격적인 유동성 회수가 시작되면 물가나 자산가격이 안정될 터이니 양극화가 완화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K자 아래쪽 사람들이 직격탄을 받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나라 개인사업자들은 약 1000조원의 빚을 지고 있다고 하는데, 금리가 1% 포인트만 올라도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이자가 물경 10조원이다. 엄청난 규모다. 코로나도 가라앉고 경기도 회복된다고 해서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는데, 짐짝 한 덩이가 더 얹혀지는 격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파산이나 부도를 맞을 수도 있다.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는데 양극화가 더 심해지는 것이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중앙은행이 현실을 도외시하고 기계적으로 금리를 올렸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유동성 파티를 더 누리고 싶은 K자 위쪽 사람들도 경기 회복이 멀었다며 가세할 것이다. 그래도 중앙은행들은 금리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나 미국 EU 같은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경제의 버팀목이던 외화자금이 고금리를 찾아 다른 나라로 떠나버린다면 경제는 결딴이 나고 만다. 이들 나라는 울며 겨자 먹기로 금리를 올리게 될 것이다. 아니면 우리나라나 노르웨이 뉴질랜드처럼 미리 금리를 인상하는 수밖에 없다. 금리 상승은 더 이상 변수가 아니고 상수가 돼 버렸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K자 하단부에 대한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미국처럼 고용이 제 궤도에 오를 때를 충분히 기다려 금리 조정을 시도하면 좋겠지만(참고로 미 연준은 성장이 아니라 고용을 통화정책의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는 기축통화국이 아니기에 금리 인상 타이밍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 아마도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그 간극은 재정에서 메워줘야 한다. 이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어떤 형태로든 지원을 해줘야 한다.

그렇더라도 K자 하단부의 당사자들은 피해를 각오해야만 할 것이다. 사실 지금부터라도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고 본다. 손해가 나는 것을 알지만 더 큰 손해를 막기 위해 끊어 내야 할 것은 끊어 내야 한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지만, 이제까지의 방식으로는 앞으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자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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