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은 왜 광기어린 살인마가 되었나

이준목 2021. 11. 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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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KBS 2TV <드라마 스페셜 2021> '통증의 풍경' 편

[이준목 기자]

 KBS 2TV <드라마 스페셜 2021> '통증의 풍경'의 한 장면
ⓒ KBS
 
KBS 2TV <드라마 스페셜 2021> TV 시네마 2편 '통증의 풍경'이 소외받는 이들의 고독과 비극을 그려내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지난 5일 방송된 '통증의 풍경'에서는 시 외곽의 어느 허름한 동네에서 고독사로 위장한 연쇄 살인사건을 둘러싼 신부(안내상), 노파(길해연), 여형사(백지연)의 섬뜩한 추격전이 그려졌다.

첫 장면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던 한 여성이 누군가 설치해놓은 줄에 목이 매여진 채 버둥거리며 끌려가는 참혹한 모습이 등장하여 궁금증을 높였다. 뒤어어 성직자임에도 파친코에서 시간을 때우며 무기력한 삶을 이어가는 가브리엘 신부의 모습이 등장한다. 신부는 고해를 위하여 자신을 찾아온 사람의 이야기에 그저 형식적으로만 답변하던 중 "사람을 죽였다"는 뜻밖의 고백에 점점 심상치 않은 느낌을 감지한다.

정체불명의 여인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내며 "세상에 참 죽이고 싶은 사람이 많다"며 살인을 예고한다. 혼란스러워하는 신부에게 여인은 "신부님은 아무 것도 하실수 없다. 저를 신고하지도 자수시키지도 못한다"는 조롱을 남기고 시간이 다 됐다며 홀연히 자리를 떠난다. 신부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두달 후 동네에서 사망사건이 발생한다. 여형사 윤광숙은 목을 매달고 사망한 시신을 살사펴보며 무언가 수상한 기운을 감지하지만, 후배 형사는 이 동네에 자살 사건이 비일비재하다며 고독사라고 단정하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동네 한편에서는 폐지를 줍고 있던 노파 옆으로 불량 청소년과 노인이 시비가 붙어 몸싸움을 벌인다. 소년에게 구타당하고 격분한 노인은 벽돌을 집어 학생의 뒤통수를 가격하고 학생은 기절한다.

노파는 그 광경을 보고 미소를 짓는다. 그 모습에 격분한 노인은 이번엔 노파에게 달려들어 폭력을 행사했다. 일방적으로 맞는 듯 하던 노파는 돌연 괴력을 발휘하며 노인의 목을 졸라 쓰러뜨린다. 노파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리어카에 노인을 싣고 노인의 집에 들어간다. 노인이 의식을 찾을 기색을 보이자 노파는 다시 한번 목을 졸라 노인을 완전하게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한다.

한편 신부는 최근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조카 박혜서의 지인을 만나 소식을 탐문하고 있었다. 신부의 조카는 사망 당일날 배달통에 담긴 밥을 훔쳐먹었던 누군가와 시비가 붙었다. 오프닝에서 밧줄에 목이 걸려 죽은 여성 배달원은 신부의 조카였고, 조카와 시비가 붙어 살인을 저지르고 신부의 고해소를 찾은 것이 바로 노파였다.

노파는 다시 고해소를 찾아 신부에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준 뒤 "좋은 것을 가르쳐주겠다"며 또다른 범행 사실을 고백한다. 경찰은 신부의 신고로 노파에게 살해당한 노인의 시신을 발견한다. 신부는 노파의 범행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못하고, 윤광숙은 그런 신부를 의심하여 추궁한다. 분노한 신부는 "사람들이 죽어나갈 동안 경찰이 알아낸게 있나? 범인이 어디선가 또 누구를 죽이고 있다고 해도 이러고 있을 거냐?"라며 연쇄 살인을 암시하는 말을 내뱉는다.

비극적인 사건은 계속된다. 노인 살해 용의자로 수사를 받던 불량소년은 경찰차를 타고 이송중 형사와 시비가 붙어 몸싸움을 벌이다가 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하고 형사는 사망한다. 노파의 살인행각도 멈추지않고 또 한 명의 여인이 살해당하며 신부는 여인의 장례 미사를 치른다.

신부는 고민끝에 윤광숙을 찾아가 뒤늦게 노파의 존재를 알린다. 노파는 다시 고해소로 신부를 찾아온다. 노파는 "난 나에게 기분나쁘게 한 사람만 죽였다"고 변명하지만 신부는 "교회법상 진심으로 반성하지않고 같은 죄를 반복하는 건 고해로 인정되지 않는다.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내가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라며 반박한다. 그럼에도 노파는 비웃으며 또 사람을 죽일 것을 예고하며 작별 인사과 함께 신부를 가격하여 쓰러뜨리고 자리를 떠난다.

윤광숙은 노파를 추격하여 몸싸움을 벌이지만 노파의 괴력을 당해내지 못하고 쓰러진다. 노파는 기절한 윤광숙을 한참 관찰하며 "이게 경찰이라는 거구나"라는 말을 되뇌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그때 정신을 차린 신부가 윤광숙을 찾으러 달려오고 노파는 윤광숙을 죽이지 않고 자리를 떠난다.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신부는 사건의 후유증으로 폐인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 사이 경찰관이 세 명이나 잇달아 잔혹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며 뉴스에까지 오르내리고 있었다. 신부는 뉴스에 등장한 범인의 목소리를 듣고 노파임을 직감한다.

신부와 윤광숙은 노파를 유인하기 위하여 의기투합한다. 윤광숙은 노파가 경찰들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미끼가 되기로 결심한다. 어느 시골의 농장에 숨어지내던 노파는 윤광숙을 납치한다. 눈을 뜬 윤광숙은 그녀를 향해 "결국 여기까지 왔네요"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전한다. 신부는 마침내 노파를 찾아냈지만 간발의 차이로 노파는 또다시 도주한다.

노파를 놓친 신부는 혼자 차를 몰고 어디론가 이동하다가 의식을 잃으며 운전대를 놓고 쓰러진다. 살아남은 윤광숙은 신부에게 계속 전화를 걸지만 연락이 되지않는다. 한편 어느 놀이공원으로 향한 노파는 한 젊은 커플과 함께 케이블 관람차를 탑승한다. 사진을 찍어달라는 커플의 부탁을 순순히 들어 준 후 노파가 바깥 풍경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보는 모습으로, 비극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하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KBS 2TV <드라마 스페셜 2021> '통증의 풍경'의 한 장면
ⓒ KBS
 
<드라마 스페셜>은 KBS 단막극의 자존심과 같은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90분으로 편성된 'TV 시네마' 프로젝트로 명명한 4편의 새로운 단막극을 선보이며 또다른 도전을 시도했다. 한국 사회의 현실과 미래를 담은 신선한 소재를 각기 다른 형식과 상상력으로 담아낸 실험적인 구성이 돋보인다.

'통증의 풍경'은 연쇄살인과 추적 스릴러라는 장르적 외피 속에 고독하고 소외된 운명속에 구원의 희망을 잃고 노쇠해가는 우리 사회의 현 주소를 쓸쓸하게 그려냈다. 힘없는 약자로 보이던 노파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색다른 설정, 뚜렷한 이유도 배경도 없이 일상에서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묻지마 살인과 폭력에 대한 공포, 주인공의 승리나 권선징악이 아닌 비극의 악순환을 예고하며 마무리되는 어두운 결말 등은 시청자들에게 충격과 여운을 안겼다.

다만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불친절한 구성은 이야기의 몰입도를 반감시킨다. "더럽고 무례한 사람들만 죽인다"던 노파의 분노가 정작 아무런 상관이 없는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경찰관들에게까지 그 대상이 옮겨가게된 계기, 노파가 여형사를 두 번이나 제압하고도 끝내 죽이지 않은 이유, 노파를 추격하는 신부와 형사의 허술한 계획과 대처까지, 여기에 내내 주인공들의 선문답같은 대사들과 신부의 갑작스러운 최후로 이어지는 결말 등은 시청자들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전개의 연속으로 아쉬움을 자아냈다.

빈약한 스토리를 메운 것은 역시 배우들의 열연이었다. 특히 평범하고 연약해보이는 독거노인처럼 보이다가도, 특유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와 눈빛만으로도 순식간에 강렬한 광기를 뿜어내는 베테랑 배우 길해연의 연기 자체가 극의 분위기를 장악했다. 대중적인 드라마에서는 시도하기 힘든 실험적인 구성, 파격적인 캐릭터와 배우들의 색다른 연기는, 단막극이라는 장르의 존재가치가 왜 필요한지를 분명히 보여준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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