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극 몽땅 뒤집는 영화, 기록되지 않은 역사 한 토막

김상목 2021. 11. 6.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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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소개] <퍼스트 카우>

[김상목 기자]

 영화 <퍼스트 카우> 포스터
ⓒ 영화사 진진
 
'서부극' 혹은 '웨스턴'이라 불리는 장르는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역사가 짧은 미국인들이 자국의 역사 중 가장 각색하기 좋은 시기인 '서부개척시대'를 무대로 개척지와 원주민, 무법자가 빠지지 않고 구성요소로 등장하는 일군의 영화들을 떠올릴 법하다. 여기에 명확한 선/악 구도, 즉 정의의 주인공과 악당이 대립하는 구조가 필수요소로 결합된다. 주인공은 무법천지인 개척지 마을을 지키는 보안관이거나 약자를 돕는 '쿨'한 카우보이들, 악당은 범죄를 일삼는 무법자나 악덕 부자, 그리고 약탈을 일삼는 원주민('인디언'이라 불리는)들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서부개척시대'가 현재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짧은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살펴본다면 '서부극' 장르의 위상은 금방 변하게 된다. 미국은 건국 초부터 줄기차게 대륙 전체로 확장을 꾀했고, 1세기에 걸쳐 동에서 서로 대륙을 횡단하며 백인 중심의 역사관으로는 '프런티어' 개척의 시대, 원주민 입장에선 침략과 정복의 시대를 맞는다. 그 중에서도 본격적으로 태평양 연안이 개발되기 시작하던 남북전쟁 전후 시기가 서부극이 다루는 핵심 시기로 활용된다. 카우보이가 이 시기에 등장했고,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 또한 바로 이 당시다. 카우보이의 등장은 산업화된 목장과 육류산업의 태동과 함께, 골드러시는 서부해안 개발을 통한 대륙 전체를 연결하는 경제블록 형성의 서막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미국은 바로 이 시기를 통해 기본 틀이 완성된 셈이다.

이 서부개척시대를 철저히 백인 중심의 시각으로 서술한 게 바로 미국의 정통 역사관이자 국가의 건국신화인 셈이다. 카우보이가 등장해 쌍권총을 휘두르지 않더라도 서부극의 기본 얼개와 선악 구도 등은 타 장르영화에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다. 우리에겐 블록버스터 SF 판타지 영화의 대명사인 <스타워즈> 시리즈 또한 기본적으로 서부극의 전통적 구조와 설정을 충실히 따른다. <스타워즈>의 도입부 해설자막이 웅장한 OST와 함께 스크린에 등장하던 순간을 떠올려보라. '옛날 옛적 우주에서~'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즉 <스타워즈>는 '스페이스 오페라'로 재현한 미국의 가상 신화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런 승자의 논리이자 일면에 편향된 서부극은 세대를 거듭하고 과거 역사에 대한 수정주의적 해석이 추가되면서 다양한 변형을 맞이한다. 주로 선악 구도가 모호해지거나 과거 백인들의 범죄를 일정부분 묘사하고 '정치적 올바름'의 반영으로 원주민에 대해 동정적인 서술이 추가되는 정도의 변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경이 되는 서부개척시대는 무법천지에 힘의 논리가 곧 법이요, 여성이나 원주민, 그리고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거나 객체로만 취급될 뿐이었다. 그런데 아주 독특한 영화가 하나 등장했다. 서부극의 한 변주로 분류되기 딱 좋지만 실제로는 역사적으로 서부극이 취하는 기본 전개와 흐름을 거의 정면으로 온통 거스르고 부정하는 기묘한 작품. 미국 인디영화 진영의 거장 켈리 라이카트의 <퍼스트 카우>가 바로 그 영화다.

감독이 펼치는 마이너리티와 전복의 서사
 
 <퍼스트 카우> 스틸
ⓒ 영화사 진진
 
1964년생 여성 감독 켈리 레이카트는 주로 숲이 울창하고 풍광이 수려한 미국 북서부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소소한 인간군상을 섬세하게 다뤄내는 스타일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그런 작은 이야기 속에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마이너리티를 조명하는 연출로 주목받았다. 2010년 작품 <믹의 지름길>의 경우에 전형적 서부개척시대 배경의 영화이지만 주인공은 시련을 견뎌내는 강인한 여성이 담당했었고, 본 작품 <퍼스트 카우>는 여성은 아니지만 사회적 소수자/약자의 성격을 명확히 띠는 주인공들을 등장시켰다. 수정주의 서부극의 계보를 따르면서 독특한 변주의 행보도 꾸준한 편이다.

영화제나 기획전에서 감독의 작품을 종종 접하다 보니 켈리 라이카트의 영화 중 <퍼스트 카우>가 국내 최초 개봉이라는 점을 잊고 있었다. 그런데 정식 개봉은 정말 <퍼스트 카우>가 최초였다. 월드 세일즈 담당인 미국 독립영화 전문 배급사 A24가 엄청나게 수입가를 높게 책정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방망이 깎던 노인>에서 주인공이 노인에게 투덜거리던 심정이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수입된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수입해주신 영화사 진진님 감사합니다"라는 것 뿐. 오직 그뿐이었다.

<퍼스트 카우>는 흔히 서부극-웨스턴 장르의 변주로 분류될 수 있지만 우리가 서부극을 떠올릴 때 등장하는 캐릭터와 배경들과는 거리감이 좀 있다. 서부극의 상징이라 할 카우보이가 등장하려면 영화 속 현실로 따지면 아직 한두 세대를 더 기다려야 한다. 독립한 지 한 세대 고작 지난 신생 미합중국 연방정부의 통제력은 아직 이곳에 제대로 미치지 못한다. 아니 아직 영화 속 배경인 동네는 미국 영토로 확정된 것도 아닌 시절, 영국과 미국의 공동관리구역 비슷한 상황이다. 공권력은 미약하며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몰락도 아직은 유예되었던, 하지만 서부개척시대와 비슷하게 일확천금을 노린 모험상인과 무법자들이 횡행하던 1820년대 오리건 준주가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이다.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주 사이의 오리건 준주의 울창한 숲과 강가에서 당시 고가로 팔리던 비버 가죽 사냥꾼들의 식량조달담당이던 '쿠키'는 실수로 사람을 죽인 중국인 '킹 루'를 만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나눠준다. 낯선 이방인, 그것도 살인자에게 다짜고짜 총부터 쏘지 않는 서부극이라니? 몇 년 후 둘은 개척지 마을에서 재회한다. 이번에는 킹 루가 쿠키에게 술을 대접한다. 둘은 빈 털털이 신세를 나누며 열심히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지만 밑천, 즉 자본이 없는 둘에겐 대박은 남의 일. 하지만 마을의 치안을 책임지는 권력자 팩터 대장이 지역에 최초로 젖을 짜기 위해 암소를 데려온 걸 들은 둘은 그 우유를 몰래 짜서 척박한 개척지에선 맛보기 힘든 발효 빵을 구워 팔 궁리를 한다. 둘의 작전은 성공해 돈은 넘쳐나지만 삶의 질을 보장할 재화가 귀하던 마을에서 잘나가는 장사가 된다.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그들의 우유도둑 행각은 들키지 않을까?

<퍼스트 카우>의 시공간적 배경인 1820년대의 오리건 준주는 말 그대로 미개척지다. 이곳에는 제대로 된 행정기구도 인프라 서비스도 부재한 가운데 일확천금을 기대한 이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중이다. 백인도 여러 갈래로 나뉘어 차등이 있다. 점점 세를 잃어가지만 아직은 북아메리카 원주민도 버티고 있다. 곳곳에서 흘러들어온 흑인, 러시아인, 중국인까지 개척시대가 아니라면 보기 드문 용광로 같은 풍경이 영화 초반부터 펼쳐진다. 이들은 모두 비버가죽이나 천연자원을 통해 돈을 벌려는 욕망에 가득 차 있다. 두 주인공 또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꿈은 그저 오늘날 우리가 찾는 중산층의 소박한 꿈 이상은 아니다. 강도질이나 약탈로 돈을 모으려는 시도를 하기엔 애초에 둘은 그럴 뜻도, 무법세계에서 먹힐 폭력도 갖고 있지 못하다. 고작 우유도둑질을 통해 맛있는 빵을 구워 파는 게 그들의 사업방법이다.

영화는 미니멀리즘의 극을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시대극이라 하기엔 너무나 초라해 보이는 작은 개척지 마을을 배경으로 시종일관 느릿느릿한 전개로 일관한다. 여기엔 우리가 알던 서부극 장르의 공식은 거의 통용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카운터 개념에 가까운 설정들로 가득하다. 미국에서도 가장 자연이 울창하고 사계절이 뚜렷한 것으로 정평이 난 오리건의 풍광을 활용해 감독은 정갈한 풍속화를 선보이듯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감독이 밝힌 바대로 영화 속 주인공들과 개척지의 묘사는 드문 당시 시대상을 다룬 몇 안 되는 스케치 삽화나 가난한 농부와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즐겨 다뤘던 에드가 드가와 피터 브뤼겔의 그림들에서 영감을 얻어 재현한 것이다.

자연의 풍광과 유럽 풍속화에서 영향을 받은 미술 디자인도 빼어나지만, 그런 이미지를 영상으로 구현한 촬영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무엇보다 이 또한 서부극 전통과는 거의 완벽하게 대립하는 요소다. 서부극에서 장대한 풍광과 역동적인 연출을 위해 활용되던 와이드 스크린 화면 비율 대신 <퍼스트 카우>는 1.37:1, 흔히 4:3 화면 비율을 구사한다. 영화는 선과 악의 치열한 대립이 아닌 둘의 관계에 집중해 그 화면비가 온전하게 제 장점을 극대화하도록 배치된다. 또한 이제는 잊혀져가는 35mm 필름 촬영을 통해 아직 인간의 파괴적 손길이 파헤치지 못한 미국 북서부의 광활한 숲과 웅장한 대자연을 제대로 담아낸다.

자본주의 태동기를 알리는 징후들
 
 <퍼스트 카우> 스틸
ⓒ 영화사 진진
 
영화 내내 총 한방 쏘지 않는, 아예 무기라곤 가진 게 없는 두 주인공은 숲속 초라한 오두막집에서 그저 프라이팬과 오븐, 거품내기 도구들로 성공을 꿈꾸며 빵을 반죽하고 노동의 시간 동안 서로의 꿈을 나눌 뿐이다. 쿠키는 여행자들을 위한 작은 호텔을 여는 게 꿈이고, 킹 루는 농장을 운영하고 싶다. 그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그들은 사금을 캐거나 남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생각조차 않는다. 그저 자신들의 노동을 통해 딱 새 출발할 만큼의 자금만 모으고픈 꿈이다. 하지만 그들의 소박한 꿈은 시작부터 초창기 자본주의의 맹아와 연결되는 중이다.

사실 한참 후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때도 금을 캐러 전 세계에서 몰려든 10만이 넘는 광부들 중 돈을 번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가장 확실하게 돈을 모은 이들은 그들을 상대로 생필품을 공급하는 장사를 한 상인들이다. 금이나 값진 물건은 가졌어도 의식주를 위한 기본 조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던 미개척지 상황을 철저하게 이용한 셈이다. 미국 동부 지역이라면 흔해빠졌을 암소가 1820년대 오리건 준주에는 팩터 대장의 대단한 자랑거리로 이제 한 마리가 들어왔을 뿐이다. 자연히 우유는 팩터의 밀크 티에 들어가는 것 외에는 한반도 전체 면적보다 드넓은 이 동네에 존재하지 않는다. 쿠키와 킹 루는 여기에 착안한다.

이 넓은 개척지에선 누구도 제대로 발효된 빵을 먹을 수 없다. 이것은 팩터 대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높은 관리이기 때문에 우유는 있어도 빵은 구울 줄 모른다. 쿠키는 제빵사의 조수 노릇을 한 적이 있어서 폭신하고 부드러운 발효 빵을 만들 줄 안다. 하지만 그에겐 필수요소인 우유가 없다. 그러나 가난한 쿠키는 팩터 대장과 교섭할 연줄도, 거래할 물건도 없다. 결국 그와 킹 루는 누구에게도 당장 피해가 가지 않는 우유 절도를 감행한다. 그들의 위험한 시도는 일단 큰 성공을 거둔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은 그들이 파는 빵의 고가격을 유지시키는 원동력이다. 이 동업자들의 제빵 사업은 성황을 이루지만 일손과 재료의 제한으로 한 번에 팔 수 있는 양은 제한되어 있다. 마지막 빵만 남자 둘이 정한 가격보다 웃돈이 오르기 시작한다. 과열을 막기 위해 줄을 선 순서대로 1개씩만 팔기로 하지만 무법천지인 개척지에서 힘센 자가 새치기를 하거나 권력자가 순서를 건너뛰는 건 당연한 듯 받아들여진다. 자본주의 체제가 시작부터 온전하게 공정한 출발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그리고 원래 갖고 있던 기득권이나 폭력으로 유리한 조건에 속하게 됨을 대사 몇 마디와 약간의 장면만으로 은유하는 탁월한 연출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런 반짝 인기는 계속될 수 없다. 두 주인공 또한 이 호황이 영속되지 못할 것이란 걸 안다. 그저 새 출발할 밑천만 마련되면 족할 일이라며 이들은 조바심을 낸다. 단기적으로는 우유가 팩터 대장의 암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독점적 자원이라는 점, 그것 때문에 이들의 레시피 비밀이 언제고 의심받게 될 게 첫 번째 유한성이다. 장기적으로는 비록 운송 상 넘어야 할 벽이 많지만 그들의 소박한 성공에 자극받아 금방 자본을 가진 이들이 모험적으로 추가 도입을 시도할 거라는 점이 두 번째 유한성이다.

주인공들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요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정말 일시적인 독점 시기에만 성공할 수 있을 뿐이다. 원래 소를 번식시키기 위해 수소와 송아지까지 같이 오던 중 죽고 암소만 도착한 것. 즉 발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손해가 두려운 것뿐인 상황이다. 가진 게 없고 그들에게 주어진 기회의 시간제한은 너무나 빤하기에 이들은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인 둘(비주류 백인인 유대인과 '쿨리'란 멸칭으로 차별받던 중국인)에게 그들이 이루려는 작은 소망은 결코 도달하기 힘든 장벽과도 같다. 결국 자본과 권력을 가진 자들 간에 벌이는 약육강식 경쟁에 휩쓸리는 가련한 신세일 뿐이다. 둘이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발휘해 새 출발을 위한 자금 마련을 하고자 성실히 일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공식적으로 찬미하는 기업가 정신과 직통한다. 하지만 '퍼스트 카우'는 그 가치를 그저 자신의 귀족적 취미에만 투자하는 팩터 대장의 소유물이다. 만약 둘에게 암소가 주어졌다면 이들은 어쩌면 200년 후까지 이어지는 전통의 기업 시조로 추앙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이들은 '퍼스트 카우'의 현란한 혈통보다 한미한 존재일 뿐이다.

팩터 대장을 포함한 개척지 파견 공무원과 군인들은 영국에서 파견된 중산층 이상의 신분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변방에 파견되는 바람에 당대 유행과 떨어질지 몰라 두려워하며 필사적으로 최신 흐름을 쫓으려 애쓴다. 한편 그들은 식민지 관료로서 당대 유럽에서 방한/방수용품으로 각광받던 비버 가죽 수집을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미 유럽의 비버들이 남획으로 절멸 직전까지 간 상황이라 북아메리카의 비버는 시장 독점적 존재들인 셈이었다.

영화 내내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퍼스트 카우>의 1820년대 북서부 개척지에선 아직 본격적 서부개척시대처럼 학살과 강제이주를 당하진 않고 있었다. 아직 백인 인구는 부족하고 자원 수집이나 식민지 관리 협조 등에서 그들의 비중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불과 한두 세대 후에 처참하게 몰락할 후손들과는 꽤 다른 면모를 보이는 원주민 묘사가 이질감이 들 만큼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팩터 대장이 다른 파견 장교와 티타임을 가지며 비버가 넘쳐나 줄어들 일이 없고, 비버가죽의 인기는 영원할 거라던 호언장담은 역사적으로 바로 뒤집어진다. '파리의 유행'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리고 덩달아 자원을 관리하던 원주민들의 세력도 저물어간다. 결국 시장은 처음부터 불안정했고, 원주민들과의 공생은 조건과 필요에 의해서만 성립되던 것임을 <퍼스트 카우>는 역사 참고서처럼 정밀하게 묘사한다.

결국 두 주인공은 자신들에게 부족한 자본을 차지하기 위해 인정사정없이 남을 해치거나 등쳤다면 성공확률은 더 높아진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그들은 아주 작은 절도로 만족하고 누구에게도 실질적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심지어 암소의 주인 팩터 대장도 그들이 구운 빵에 만족하며 행복해한다)

하지만 장사가 잘될수록 주인공들은 점점 불안하고 조급해진다. 영화에서 돈을 긁어모으는 주인공들이 점점 전체 형상보다는 돈을 받아 집어넣는 손으로만 묘사되는 이미지와도 매치되는 지점이다. 그런 조바심은 결국 화로 돌아온다. 더 노골적이고 더 치밀하게 이익을 추구하지 않아서일까? 하지만 영화의 결론에서 감독이 옹호하고 조명하려는 그림은 세상의 이치라 통용되는 것과는 사뭇 다르게 보인다.

잊혀져간 존재들을 부활시키는 영화의 매력
 
 <퍼스트 카우> 스틸
ⓒ 영화사 진진
 
두 주인공의 우정과 작은 재치는 결국 그들이 노리던 일확천금의 덧없는 욕망에 삼켜질 운명이다. 하지만 그들의 처연한 운명을 직감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는 시적인 위로를 건네는 듯 섬세한 터치를 선사한다. 감독은 둘에게 닥칠 비극성을 전시하는 것보다는, 그럼에도 우정으로 시작해 배신하지 않는 소수자의 우애를 전하는데 집중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기존의 서부극은 수정주의적 접근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의의 주인공을 여성이나 흑인, 혹은 원주민으로 바꾸고 악과의 대결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혹은 피카레스크 식 구성으로 허무주의적 결말로 나아가는 데 그쳤다. 반면에 <퍼스트 카우>는 비록 실제 역사에선 짓밟히고 스러져 갔을지언정 이 영화를 만든 이들이 주목하고 동조하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힌다. 그 결과는 수정주의 서부극 사조의 가장 먼 지평선이자 어쩌면 새로운 출발의 서막일지도 모르는 강렬한 전복과 변주다.

이 영화에서 그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거나 아름답게 묘사되는 존재들이 어떤 것들인지 한번 영화를 보고난 뒤 되살펴보자. 반대로 권력을 가진 자들의 위선과 단편적 시야가 어떻게 풍자되는지도 떠올려보자. 그 은근히 선명한 대비 구도를 관찰하는 수고는 돋보기로 들여다볼수록 하나둘 드러나는 발견의 재미로 보상받게 될 것이다.

이 독특한 작품의 결말에서 조금 과장해 상찬한다면, 1969년 조지 로이 힐의 걸작이자 서부극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명작 <내일을 향해 쏴라>의 엔딩 장면,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가 마지막을 앞두고 뛰쳐나오던 바로 그 순간, "Raindrops Keep Fallin' on My Head"가 귓가에 들려오던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수많은 상징과 은유가 넘쳐나는 가운데 기존 서부극, 즉 미국의 W.A.S.P 기반 건국신화에 대해 거의 모든 요소를 반대로 설정해놓는 전복의 매력이 <퍼스트 카우>에선 강물을 거슬러 오르던 연어처럼 펄떡거린다. 기록되지 못한 미국사의 한 토막, 혹은 민초들의 미국사가 이백년 전 오리건 준주의 두 주인공과 함께 그림처럼 내려앉는 체험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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