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세계흥행 1위 '장진호'.. 한국은 이렇게 반격해야

김성호 2021. 11. 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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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353] <장진호> 와 한국영화

[김성호 기자]

 <장진호> 포스터
ⓒ 8.1영화제작사
 
한국전쟁을 다룬 중국영화 <장진호>가 올해 최초로 매출 1조 원 고지에 올라서며 전 세계 박스오피스 최정상에 올랐다. 71년 전인 1950년 11월, 북한을 지원해 참전한 중공군이 미군에 맞서 치른 장진호 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평단에선 중국 영화계의 <장진호> 제작을 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운 '항미원조' 시각에 입각한 애국주의 영화라고 평가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과 경제, 정치적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의 현 상황에 어울리는 프로파간다 영화란 해석이다.

규모도 중국 영화계의 온 역량이 집중됐다는 평가다. 약 2300억 원에 이르는 제작비는 중국 영화사상 최대 규모다. <패왕별희>의 첸 카이거, <황비홍>의 서극, 최근 5년 간 중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상업영화 감독 단테 람이 함께 연출했다. 홍콩과 중국영화를 대표하는 거장과 최근 중국영화계의 사정을 꿰뚫고 있는 중견 감독이 합을 맞춘 것이다.
 
 <고지전> 포스터
ⓒ (주)쇼박스
 
중국과 미군, 모두에게 가혹했던 전쟁

<장진호>는 여러모로 한국에도 시사점이 크다. 장진호 전투는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중공과 연합군 모두에게 성과가 있는 전투다. 중공 입장에선 동부전선에서 전진하던 미 정예 제10군단을 포위해 완전히 물러나게 한 전투다. 이후 연합군이 함경남도로 진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중공의 승리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연합군의 패배로 보기도 애매한 구석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10군단과 마주한 중공군 9병단이 치명적 타격을 입고 3개월이나 전쟁에서 물러나는 효과를 거뒀다. 1만7843명의 병사가 죽거나 실종되고 다친 연합군에 비해 3배 가까운 4만8156명의 손실을 봤으니 말이다. 전투로 인한 사상자만 계산한다면 중공군 9병단의 피해가 미군보다 3배 이상이나 많았다.

중국 영화계의 <장진호> 제작은 승패를 딱 잘라 나눌 수 없는 전쟁을 중국의 승리로 포장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더 많은 병력으로 미군과 싸운 전투였음에도 작은 부대가 고난을 뚫고 이룩한 승리처럼 묘사한 점도 선전영화의 성격을 그대로 내비친다.
 
 <포화 속으로>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한국전쟁 스크린으로 옮기는 중국

중국이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를 거듭 내고 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은 그동안 <영웅아녀> <상감령> <횡공출세> <금강천> 같이 한국전쟁에서 미군과 맞서 싸운 중공군의 이야기를 거듭 영화화해왔다. 냉전시대 미국이 <람보2>나 <록키4> 같은 영화에서 소련을 격파하는 이야기를 다뤘듯, 중국이 미국에 맞서 자국민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선전영화를 제작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다만 아쉬운 점은 선전선동을 넘어 한국전쟁을 남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한국영화계가 다양한 작품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한 가족의 이야기로 풀어낸 <태극기 휘날리며>와 전쟁 속에서 역설적으로 피어난 인간애를 드러낸 <웰컴 투 동막골>, 조정래 작가의 소설을 영화화한 <태백산맥>, 고착된 전선에서 의미 없이 목숨을 잃는 병사들의 이야기 <고지전> 정도가 있지만 한국 역사에 큰 상처를 아로새긴 전쟁치고는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지 못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근래 10년 간 <포화 속으로>와 <인천상륙작전>으로 이어지는 이재한 감독의 한국전쟁 연작을 예로 들면, 확고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음에도 지나친 영웅주의와 신파적 결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혹평과 마주했다. 그리고 이밖에 더 언급할 만한 한국전쟁 영화가 얼마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인천상륙작전> 포스터
ⓒ CJ ENM
 
중공군 안 나오는 한국영화... 왜?

특히 주목할 점은 한국전쟁을 다룬 한국영화에서 중공군의 존재가 두드러진 작품이 없다는 점이다. 전쟁 발발 5개월 만에 참전하여 전세를 완전히 뒤바꾸는 등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이상하게도 한국 영화에선 그 존재가 철저히 생략돼 있는 것이다. 특히 중공군 개입 이후 전투의 수행을 북한이 아닌 중공이 전담하다시피 했다는 걸 떠올리면 중공군의 존재가 한국영화에서 제거된 점은 놀랍기까지 하다.

역사영화는 현재의 시선으로 과거를 다루는 일이기도 하지만 과거를 사실적으로 재구현해 현재에 물음을 던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차원에서 생각해보자면 <장진호>를 포함한 중국영화는 물론이고 한국에서조차 한국전쟁의 여러 면모를 충실히 다루는 데 실패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여전히 한국 대중문화의 전면에 드러나지 못한 한국전쟁의 여러 면모가 있다. 중공군의 존재와 양측 군대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 전쟁 초반 무능했던 우리 군의 모습 같은 것들이다. 자랑스러운 대목만이 아니라 참담한 장면들도 스크린 위에 드러낼 수 있을 때 우리는 한국전쟁을 제대로 다뤘다고 말할 수 있다.

삐뚤어진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중국의 어긋난 애국주의에 현명하게 대응하기 위해선 아픈 역사일지라도 사실 그대로 드러내려는 용기가 가장 절실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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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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