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결사회의 그늘.. 통신 끊기자 일상 '초고속 올스톱'

양한주 2021. 11. 6.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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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KT 유·무선통신 마비 사태
스마트폰·결제시스템까지 먹통
'디지털 블랙아웃'은 사회적 재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직장인 박모(29)씨는 지난달 25일 서울 마포구에서 용산구까지 차를 운전해 점심 미팅을 가다 KT 유무선 통신 먹통사태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기름이 떨어져 주유소를 찾았는데, KT 통신망을 이용하던 주유소의 결제기와 박씨의 스마트폰 통신이 모두 작동하지 않았다. 가지고 있던 현금 1만원어치의 기름만 넣은 채 출발했지만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도 되지 않아 길을 찾을 수 없었다. 당황한 박씨는 차를 세워둔 채 택시를 탔다. 박씨는 “평소 30분이면 가던 길인데 통신이 되지 않으니 천 리 길로 느껴졌다. 통신이 멈추자 일상이 마비됐다”고 호소했다.

우리 일상에서 인터넷서비스가 차지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 크기는 KT의 전국적 유무선 통신망 마비 사태로 여실히 드러났다. 스마트폰 앱 접속이 안 되는 건 물론 식당 등 상점의 결제시스템, 병원 예약확인 및 수납, 학교의 비대면 수업 등이 모두 멈춰섰다.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이용자가 몰리면서 과부하가 걸려 이마저도 원활하게 연결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면서 ‘초연결사회’는 한층 가깝게 다가왔지만 이에 비례해 ‘연결 끊김’의 피해도 커진 셈이다.

인터넷 통신망·서비스 등 네트워크 먹통에 따른 피해는 점점 늘고 있다. KT 통신망 이전에도 카카오, 네이버, 페이스북, 구글 등 국내외 주요 콘텐츠사업자(CP)가 먹통 사태를 빚었었다. 15분의 짧은 접속 오류부터 7시간에 가까운 먹통 사태까지 양상도 다양했다.

올해 2분기 기준으로 월간 활성 이용자 수가 4662만명에 달하는 ‘국민 앱’ 카카오톡의 경우 올해만 네트워크 장애 네 번을 겪었다. 지난 5월 5일에 2시간20분간 메시지 송수신과 접속이 이뤄지지 않았다. 같은 달 27일엔 잔여백신 예약서비스가 2시간 동안 먹통이었고, 6월 3일엔 15분간 카카오톡 ‘선물하기 서비스’에 접속할 수 없었다. 7월 16일엔 1시간40분간 장문 메시지와 이미지 파일 송수신에 장애를 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카카오톡은 일상적인 소통의 도구를 넘어 직장인들의 업무 수단으로도 쓰이면서 피해가 더 컸다.


구글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에 문제가 생기면서 여러 앱의 실행이 동시에 중단된 사례도 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탑재된 스마트폰 이용자들은 지난 3월 23일 7시간 동안 앱 접속이 되지 않는 피해를 입었다. 스마트폰 제조사인 삼성전자·LG전자에 문의가 폭증하면서 구글보다 먼저 해결방안을 안내했다. 구글은 다음 날에서야 “안드로이드 시스템 ‘웹뷰’를 업데이트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업데이트를 중단한 후 새로운 버전의 웹뷰를 어제 배포했다”고 늑장 대응했다.

지난해 12월 10일 대형 부가통신사업자에 서비스 안정조치를 의무화하는 일명 ‘넷플릭스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연결 끊김’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넷플릭스법 시행 후 발생한 의무사업자의 네트워크 장애만 15건에 이른다.

정보통신기술(ICT)이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미국 등 선진국에선 ‘디지털 블랙아웃’을 새로운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하고 국가 차원에서 관리에 나섰다. 미국은 국가안전 및 비상 대비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재난 발생 시 우선순위에 따라 비상용 네트워크를 작동한다. 일본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여러 대응책을 마련했다. 2014년 마련한 초고속 무선통신 네트워크 ‘디펜더블 에어’는 지상의 인프라가 파괴돼도 통신 연결이 가능하도록 한다.

한국도 3년 전 KT 아현지사 화재 등을 계기로 재난로밍서비스 등 통신 재난을 막기 위한 대안을 내놓았다.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는 통신재난관리 기본계획과 위기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3년 전 아현지사 화재를 계기로 만든 대응책이 이번 사태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전문가들은 통신 재난을 막기 위해 통신망 이원화 등의 대안을 서둘러 법제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상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은 “이번 사태로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체감한 만큼 비용이 들더라도 코어망의 경우 백업망을 마련하고, 주요 시설의 통신망을 의무적으로 이원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금융시설 등 주요시설의 통신망 강화도 필요하지만 이제 인터넷이 소상공인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적절한 지원책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미 비대면 소통이 일상으로 자리잡은 현대사회에서 네트워크 의존도를 줄이는 건 불가능하다. 보완장치를 더 강화해 나갈 수밖에 없다”면서 “디지털 인프라를 다루는 기업들의 책임을 보다 명확히 인지하고 필요시 배상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갖춘 시민단체들이 감시하고 정부에 역할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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