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감성을 만나 소설이 되다

임세정 2021. 11. 6.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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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 소설가 김초엽
소설가 김초엽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과학도 출신인 그는 SF 장르에서 독창적인 작품을 잇달아 선보이며 확고한 팬덤을 구축했다. 인터뷰와 사진촬영은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사에서 진행했다. 이한결 기자


“사실 저도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어요. 또래가 쓴 책이라 많이 읽어주시는 것 아닐까요. 비슷한 경험과 생각을 가진 분들이 가장 쉽게 이해하실 테니까요.”

작가 김초엽(28)이 조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는 요즘 한국 문학계의 ‘인싸’(인사이더의 줄임말·주류)다. 국내 공상과학(SF) 소설 장르에서 20대 독자들의 독보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김초엽은 등단 이후 꾸준히 작품을 내 왔다. 2017년 ‘관내분실’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 2019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표지사진)으로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지난해 ‘인지 공간’으로 제11회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지난 8월 첫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을 내놓은 데 이어 지난달 단편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를 발표했다. 그를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사에서 만났다.


포항공대에서 화학을 전공한 그는 용돈을 벌기 위해 교내 SF 공모전에 도전했다가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김초엽은 “어릴 때부터 소설가를 꿈꾼 건 아니다. 대단한 사람이나 소설을 쓰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화학을 좋아하면서부터다. 그는 “화학원리를 처음 배울 때 세상이 갑자기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물질을 공부하고 싶었고 사람과 물질의 상호작용에도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과학 연구자의 길을 가지 않은 건 호기심 때문이다. 한 가지를 오래, 깊이 들여다보기보단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싶었다. 그는 “연구엔 인내심이 필요하다. 가능성이 희박해 보여도 몇 년씩 붙들고 있는 끈기가 필요하다. 관심사가 다양하고 넓게 공부하고 싶은 저와는 맞지 않는다”고 나름의 분석을 내놨다.

문학의 여러 장르 중 SF를 선택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는 “장르에서 요구하는 태도, 과학에 대한 관심 등 여러 면에서 SF가 나와 가장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SF가 요구하는 태도는 ‘과학적인 태도’에 가깝다. 김초엽은 “SF에서 다루는 과학적 소재 자체는 비현실적일 수 있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일일 수 있다”며 “그런 것들에 대해 ‘내가 탐구하면 이 세계의 진실을 알아낼 수 있다’ ‘어떤 비밀이 숨어있다고 해도 난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과학적인 태도”라고 말했다.

‘방금 떠나온 세계’에 수록된 단편 소설들에서 그는 복제인간 트랜스휴먼(몸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인간) 등을 소재로 다른 시공간의 삶을 그린다. 소설이라기보단 곧 들이닥칠 미래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준다.

광범위한 해양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된 화학 약품으로 인해 한 세대에 걸쳐 시지각 이상증이 나타나고(‘마리의 춤’) 우주를 탐사하던 인간이 다른 행성에 불시착해 외계의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며(‘오래된 협약’) 감각 이상을 겪은 사람들이 기술을 활용해 신체에 기계를 이식하는(‘로라’) 이야기는 무서우면서도 흥미롭다. 독자들이 김초엽의 작품은 몰입도가 높고 기존 SF와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다.

그는 “SF 소설 중엔 현실과 먼 이야기를 하는 작품들도 있지만 현실과 가까운 이야기를 하고 현실의 문제를 일종의 사고실험처럼 다루는 작품도 많다”며 “SF인데 다른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라기보다 SF의 넓은 스펙트럼 중 하나라고 봐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 작품을 시작으로 독자들이 다양한 SF를 많이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초엽의 책은 과학적 소재를 다루지만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건드리는 감성적 요소들이 곳곳에 있다. 젊은 독자들은 여기에 공감하며 빠져든다. ‘로라’에서 주인공 진은 세 번째 팔을 이식하길 원하는 연인 로라 이야기를 하며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라고 말한다.

소통과 교감은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키워드다. ‘숨그림자’에서 미래의 인류는 음성이 아닌 입자로 소통한다. ‘마리의 춤’에선 시지각 이상증을 겪는 사람들이 다른 형식의 소통을 한다.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전시회에 소설로 참여하면서 ‘광장’이라는 주제어로 쓴 소설이다.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야기하는 김초엽. 이한결 기자


그는 “시대에 따라 ‘광장’의 개념이 변해왔다고 생각하다가 세대 간 소통의 단절을 떠올렸다”면서 “세대 차이라는 게 단지 사고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감각하는 방식의 차이가 되면 어떻게 될까,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보는 사람들이 한 세대를 구축한다면 우리와 그들의 세계는 얼마나 달라질까 하는 발상에서 시작된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초엽은 풀 초(草)에 잎 옆(葉)자를 쓴다. 식물을 좋아하는 부모가 여리면서도 강인한 풀잎의 문학적 의미를 담아 딸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김초엽은 “식물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진 않다”고 했지만, 그의 작품에는 식물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최근 공개한 작품 ‘파견자들’은 외계에서 온 이끼가 지구를 뒤덮는 내용의 디스토피아 연작이다. ‘지구 끝의 온실’에는 자가증식하는 먼지로 뒤덮인 2055년의 지구에서 인간의 기술로 개량한 식물 모스바나가 인간을 숨 쉬게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지구 끝의 온실’을 집필할 때는 원예학을 전공한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는 “인간과 비(非)인간인 존재가 함께 세계를 구하는 이야기, 세상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 했다. 느리게 오는 변화를 식물성과 연관 지어 보고 싶었다”며 “식물은 느리게 자라는 듯 보이지만 그 존재를 잊고 있다가 뒤돌아보면 풍경을 뒤덮고 있는 것처럼 세상의 변화 역시 느리지만 강력하게 오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인간은 생태의 일부에 불과하고 우리는 다른 생명들에게 삶을 빚지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전했다.

김초엽은 요즘 성탄절 즈음 발간할 중편 소설을 쓰면서 인터뷰, 대학 강연 등의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대중의 관심과 기대가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부담감을 느끼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재밌게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다”며 “제가 책을 내면 일단 사고 본다는 독자들의 말이 큰 응원이다. 새로운 작품을 계속 써도 되겠구나 안심이 된다”고 답했다.

작가로서 목표를 묻자 “할머니가 될 때까지 글을 쓰는 것”이라는 소박한 답이 돌아왔다. 그때까지 SF 장르를 계속 쓸 거냔 질문엔 MZ세대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다른 장르 써서 대박 나면 그걸 써야죠.”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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