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뚝 799개 박고 능화지로 도배 싹 했다, 고종이 쓰던 향원정
내년 4월쯤부터 일반에 공개
고종이 기거했던 경복궁 건청궁 바로 앞 작은 호수에 지어진 쉼터 ‘향원정’이 3년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문화재청과 궁능유적본부는 5일 “낡아 기울어졌던 향원정을 보수해 복원하고, 건청궁에서 향원정으로 건너가는 다리인 ‘취향교’도 원래 자리와 모습을 찾아 복원했다”고 밝혔다.
향원정은 경복궁 가장 안쪽, 고종의 거처였던 건청궁 바로 앞에 위치한 호수 ‘향원지’ 한가운데 인공섬을 만들어 그 위에 세운 정자다. 약 6~7평 넓이, 2층 규모의 작은 건물이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사용했거나 외국 사신 등을 접견하는 등 소수의 인원이 이용할 수 있었던 시설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2012년 향원정이 보물로 지정되면서 건물에 대한 정밀 실측조사를 시작으로, 2018년 보수공사에 돌입했다. 인공섬 전체를 임시 구조물로 덮은 뒤 향원정의 나무, 돌 부속 하나하나를 모두 해체해 점검한 뒤 고스란히 다시 짜 맞췄다. 총 31억 3000만원이 들었다.
4.5m 기둥도, 2층 서까래도 사람이 들어 옮겼다
향원정은 건물을 지은 기록을 적은 상량문이나 사용된 자재·인력 등이 적힌 묵서 등의 기록이 전혀 없어서 고증작업 결과를 일일이 담당자에게 확인하며 진행하느라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중장비가 들어오지 못하는 좁은 인공섬 안에서 모든 작업을 해야 하는 것도 어려움을 더했다.
복원 현장을 총괄한 문화재 수리기술자 고광진 소장은 "1층부터 2층까지 이어진 4.5m 기둥 6개는 8~10명이 들어 옮겨 세웠고, 말뚝을 박기 전 땅을 3m 파는 작업도 크레인이 들어올 수 없어 삽으로 다 파냈다"며 "말뚝을 박기 위해서 도르래를 설치하고 추를 달아 떨어지는 힘을 이용하는 등 온갖 궁리를 다 해야 하는 현장이었다"고 돌이켰다.
복원을 마친 향원정의 달라진 점을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해 짚어봤다.
①부실한 인공섬 지반, 말뚝 799개 박았다
향원정이 기울어진 건 남동쪽 지반이 침하된 탓이었다. 정현정 주무관은 “호수 위에 만든 인공섬 위쪽까지 지반을 보강하는 장치가 부족했던 탓”이라며 “이번에는 야구방방이보다 조금 더 두꺼운 정도의 나무 말뚝 799개를 박아 지반을 다졌다”고 밝혔다. 6개 기둥 아래쪽에는 6m짜리 긴 말뚝 150개를 섬 바닥까지 닿게 박아넣고, 건물 주위에는 1.8m 혹은 2.7m짜리 짧은 말뚝을 649개 꽂아 토양이 조금 더 빡빡해지고 단단해지도록 했다.
②밀랍으로 문양 새긴 '왕실전용' 한지 200장 도배
건립 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치면서 내부에 발라져 있던 겹겹의 창호지 맨 아래에서는 왕실 건물에만 사용되는 ‘능화지’(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문양을 밀랍으로 눌러 새긴 한지)가 발견됐다. 이번 보수에는 무형문화재 배첩장(전통 도배, 장판 등 기술 보유 장인) 강성찬 이수자가 찍어낸 능화지 수백장으로 천장과 기둥 등 벽지를 발랐다. 강씨는 “39×53㎝ 능화지를 200장 넘게 찍어낸 뒤, 무늬가 이어지게 일일이 재단해서 발랐고, 벌레가 꼬이지 않도록 2년간 수침해 단백질을 거의 제거한 밀가루 풀을 사용했다”며 “여러 문화재 복원 현장을 가봤지만 향원정은 고증을 많이 한 뒤 전통방식으로 오롯이 복원해내, 굉장히 의미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③'푸른 배경에 꽃무늬' 드러난 왕실 단청
일제 시대에 여러 차례 보수를 거친 향원정 내부의 지지목을 떼어낸 자리에선 향원정 건립 당시 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단청의 원형이 발견됐다. 단청기술연구소 구본능 소장은 “푸른색 혹은 붉은색 바탕에 문양을 남기는 방식의 단청은 이 시기 왕실 건축 내부에서는 흔히 쓰던 모양이지만, 원형이 남아있는 곳이 거의 없는 데다 일반에 공개된 곳은 더더욱 적어 낯설게 느껴질 것”이라며 “향원정은 처음 칠한 단청도 상태가 잘 유지됐고, 위에 덧칠한 단청도 고스란히 남아있어 향후 전통단청 복원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④너무 큰 지붕 꼭대기 장식, 원형으로 복원
이번 복원은 최대한 향원정 건립 초기의 모습을 살려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향원정 기와지붕 꼭대기에 투박하게 씌워져 있던 청동제 절병통(호리병모양 장식)은 과거 사진을 이용해 향원정 크기에 맞게 새로 만들어 씌웠다. 정현정 주무관은 “비교적 작은 호수인 향원지 안에 지어진 향원정은 ‘건물’이라기보다 모형처럼 예쁘게 지었고, 건물 안에 사용된 목재도 일반 건물보다 전반적으로 얇다”며 “향원정 크기에 비해 너무 큰 절병통은 일본강점기 때 보수공사를 하며 얹은 것으로, 이번 복원에서는 초기 향원정과 비슷하게 주변과 비례를 맞춰 작은 절병통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⑤편의상 남쪽에 만든 다리도 북쪽으로 '원위치'
인공섬으로 들어가는 ‘취향교’의 위치도 달라졌다. ‘취향교’는 ‘향에 취한다’는 뜻으로, ‘향이 널리 퍼지는 정자’라는 뜻의 향원정에 맞춰 설치한 나무다리다. 본래는 건청궁에서 향원정에 가기 편한 방향인 향원정 북쪽에 다리가 있었지만, 한국전쟁 때 파괴된 이후 경복궁 입구에서 걸어 들어가는 관람 동선에 맞춰 향원정 남쪽에 재설치됐다. 이번 향원정 복원과 함께 호수 바닥에서 향원교 기단부를 발굴해, ‘나무로 만든 흰색 아치형 다리’ 취향교를 되살려냈다.
향원정은 주변 보수와 건청궁 권역 정비사업을 마친 뒤, 내년 4월 즈음 특별관람 형태로 대중에 공개될 예정이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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