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히든캐스트(63)] 뮤지컬 배우 남궁혜인, 10년간 지켜온 뚝심

박정선 2021. 11. 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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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하데스타운' 일꾼 역 출연
2022년 2월 27일까지 LG아트센터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에스앤코

“사실 제가 무언가를 뚝심 있게 지켜왔다고 말하기엔….”


무려 10년을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오른 남궁혜인의 말이다. 자신의 직업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확실히 알고, 그 길을 어떻게 나아가는지가 중요하다. 남궁혜인 역시 스스로가 ‘뚝심’이 없다고 했지만 그의 10년는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흔들리던 그 순간까지도.


무엇보다 남궁혜인을 높이 평가하는 건, 자신의 현재 모습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매일같이 자신이 섰던 무대를 모니터한다. 그렇게 쌓아온 시간들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현재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하데스타운’에서 남궁혜인 배우가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는 것도 뮤지컬 배우로 10년, 초등학교 4학년 시립합창단을 시작으로 하면 무대 경력 21년 동안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인 덕분이다.


-‘하데스타운’을 처음 접한 건 언제였나요?


브로드웨이에서 페르세포네 역할을 맡은 배우 엠버 그레이(Amber Gray)의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어 무슨 작품인지 찾아보니 토니어워즈에서 상을 휩쓸었던 ‘하데스타운’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작품이고 음악은 어떤지 너무 궁금하여 영상을 찾아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상을 통해 접한 작품의 첫인상은요?


그 당시 그리스 로마신화라는 소재 자체가 개인적으로는 꽤나 친숙하고 가깝게 느껴졌고 재즈라는 음악 장르를 평소에도 너무 사랑하는데, 이야기를 재즈로 풀어낸다는 것이 너무 흥미롭고 매력적이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이 뮤지컬을 공연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는데 1년도 안 돼서 오디션 공고가 올라온 거예요! ‘이렇게 빨리 한국에서 초연을? 내가 살아있을 때?’라는 생각과 함께 이건 목숨을 걸고 오디션을 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에스앤코

-남궁혜인 배우는 극중 어떤 역할들을 맡고 계신가요? 또 어떻게 캐릭터에 접근하고, 해석하셨는지도 궁금해요.


‘일꾼’이자 ‘운명의 여신’ 커버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저희 일꾼들은 극 중에서 땅만 보고 있는 것이 일상인데요. 이런 모습들이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닮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나아가 더 많은 물질적 풍요를 이루기 위해 다들 일꾼으로 살아가고 있잖아요. 개인적으로는 1막 마지막 넘버 ‘Why We Build the Wall’이 일꾼들의 마음을 가장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장벽이 우릴 더 자유롭게 만든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벽을 세우고, 감정적인 것들에 대하여 점점 무감각해지며, 나중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인간의 모습, 이게 바로 일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극중 가장 애정하는 장면, 혹은 넘버가 있나요?


커튼콜 넘버인 ‘I Raise My Cup To Him’입니다. 공연의 마지막인 “너흴 위해 건배, 굿나잇 형제여 굿나잇”이라는 가사가 모두의 마음에 위로와 치유가 되는 곡인 것 같아요. 우리 모두가 귀한 존재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공연 중(혹은 연습 중)의 특별했던 일화도 들려주세요.


2막 ‘Come Home With Me 2’ 장면에서 에우리디케가 오르페우스에게 “여긴 어떻게 온 거야”라고 물어보면 오르페우스가 “걸어왔어 한참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한 번은 옆에 있던 다른 일꾼과 눈이 마주치게 돼서 ‘쟤 뭐야’라는 신호를 턱으로 보낸 적이 있었어요. 그랬는데 동료 일꾼이 “걸어왔대”라며 애드리브로 대답을 해주어서 공연 중에 방심하고 있다가 혀를 깨물며 웃음을 참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하.


-작품에 참여하면서 어떤 것들을 느끼고, 어떤 것들을 배웠는지도 궁금합니다.

‘하데스타운’은 이제까지 한국에서 공연된 여타 작품들과는 다른 결을 지닌 신선한 형식의 뮤지컬이죠. 보편적인 프로시니엄 무대를 사용하지 않고 다소 연극적인 그리스 원형무대 형식이라서 구도에서부터 공간감을 볼 수 있는 능력이 굉장히 넓어지는 작품이에요.


또 극 중 모든 캐릭터들이 첫 등장 이후 거의 퇴장이 없고 무대 위에서 함께 호흡하다 보니 한 명이라도 집중을 못 하면 극의 밀도가 정말 크게 달라져버리거든요. 그래서 더 많은 집중력을 요하는 작품인 것 같아요. 물론 모든 공연에서 집중은 중요하지만 ‘하데스타운’은 거의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해 모든 감각을 다 열어야 해요. 공연에 참여하는 모두가 공연이 끝날 때까지 한마음으로 호흡을 조절하며 드라마를 완성시키죠. ‘하데스타운’을 하면서 정확히 듣고, 정확히 반응하여 호흡하는 법을 많이 느끼면서 배우고 있답니다.


ⓒ에스앤코

-2011년 데뷔하고 벌써 10년동안 무대에 오르셨는데요. 데뷔 당시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루틴이 있나요?


그동안 제가 무언가를 뚝심 있게 지켜왔다고 말하기엔, 여러 가지로 흔들렸던 적이 많아서 변하지 않은 건 쉽게 떠오르지 않네요(웃음). 그렇지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며 꼭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있습니다. 바로 날마다 공연을 녹음하여 모니터를 하는 일입니다. 제가 무대에 어떻게 서있고, 어떤 움직임과 연기를 하고 있는지 공연을 하는 중에는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매일 공연할 때 녹음한 후 공연이 끝나고 잠이 들기 전에 당일 공연을 모니터하고 다음날 눈을 뜨면 또다시 모니터를 합니다. 어떤 부분을 더 보완해야 할지 또 어떤 부분은 더 살려야 할지를 생각하고 적어두면서 조금씩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던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도 재생 중인데 이제는 직업병처럼 굳어진 것 같아요.


-데뷔 당시와 지금 가장 달라진 점은요?


많은 선배님들 앞에서 이야기까지 부끄럽지만 그래도 데뷔와 달라진 것은 ‘나이’ 아닐까요? 하하. 10년 전에는 학교를 아니고 졸업을 하고 열정과 패기가 가득했다면 지금은 그 열정의 불을 밖으로 뿜고 표현하기보다는 그 불을 제 안에서 계속 이 직업을 해 나아갈 수 있도록 연료로 태우고 있는 것 같아요.


-데뷔 10주년, 소감도 남다를 것 같아요. 남궁혜인 배우의 10년 배우생활을 돌아보자면요?


이 질문을 받고 돌아보기 전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지도 몰랐네요. ‘어느새 내가 10년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시립합창단을 계기로 어느덧 무대 경력 21년 차가 되었네요. 그동안 무대에 설수 있게끔 ‘허락’되었고, 무대를 통해 만들어진 많은 인연을 통해 지금까지 이렇게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만났던 작품들 그리고 그 작품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던 모든 인연들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순간은요?


2014년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레퍼토리 ‘단테의 신곡’ 작품을 만났을 때였어요. 사실 그때 배우의 꿈을 놓으려 하던 순간이었는데 제게 기회가 온 거죠. 인간의 본질에 대해, 아니 그 이상으로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미라’라는 역할을 맡았었는데 지옥의 마지막 문 전 단계의 죄인이에요. 죄목은 근친상간이었죠.


내용 자체도 어렵고 맡았던 역할도 무게감이 많이 느껴져서, 매일 아침 산부인과에 찾아가서 산모분들과 두 시간씩 인터뷰하고 국립극장까지 맨발로 출퇴근을 했던 기억이 있어요. 상상조차 하기도 힘든 이 죄를 저지른 인물을 맡게 되니 처음에 ‘와, 어떻게 나를 뽑으셨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죠. 그때 연출을 맡으셨던 한태숙 연출님께 나중에 여쭤보니 ‘넌 그게 무엇이든 다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말씀을 해주시면서 신뢰를 보내주셔서 더 열심히 참여하게 됐었고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단테의 신곡’이라는 작품에서 연출님 및 여러 선배님들과 함께 연기하며 연기에 대해서 굉장히 진지하게 접근하게 되었고, 몸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새롭게 느끼게 되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함께했던 모든 분들이 보고 싶고, 항상 응원하고 존경합니다.


ⓒ에스앤코

-앞으로 출연하고 싶은 작품, 맡고 싶은 역할도 있는지.


아직 우리나라에선 공연된 적은 없지만 뮤지컬 ‘슈렉’의 피오나 공주를 너무 해보고 싶어요. 캐릭터의 매력이 철철 넘쳐요. 어느 날 외국에 있는 친구가 ‘슈렉’ 공연을 보고 연락을 해왔어요. “오늘 공연을 봤는데 이 뮤지컬의 여자 주인공이 성격이 그냥 너야. 너밖에 생각이 안나”라고 하더라고요. 그 인물이 바로 서튼 포스터(Sutton Foster)가 했던 피오나 공주였고, 친구가 보내준 DVD 영상을 보니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그 영상을 보고 (나중에 이 역할에 도전하려면) ‘탭을 할 줄 알아야 하는구나!’하고 생각했는데 사실 저는 탭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때마침 ‘브로드웨이42번가’ 오디션 공고가 올라와 참여했고, 그 해에 ‘브로드웨이42번가’에 출연하며 무릎 부서지게 탭을 배웠습니다.


또 국내 소개된 작품들 중에는 ‘레드북’의 안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자야, ‘미드나잇 액터뮤지션’의 비지터 역도 해보고 싶어요!


-관객들이 남궁혜인 배우를 어떻게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지. 어떤 배우로 인식해주길 바라시는지.


긍정적으로 차기작이 궁금해지고, 또 어떤 매력을 보여줄지가 궁금해지는 배우이길 바라요.


-남궁혜인 배우의 행보도 궁금합니다. 배우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요.


저도 저의 행보가 궁금하답니다. 하하. 우선은 현재 하고 있는 공연에 최선을 다해보려고 해요. 이 인터뷰를 보고 계시는 분들께서도 앞으로 제가 또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지켜봐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항상 마음도 몸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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