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 Mania | 김포 장릉章陵, 400년이 지나 알게 된 원종

2021. 11. 4. 15: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핫이슈는 단연 대장동이다.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부동산 이슈가 있다. 바로 인천 검단 신도시 아파트 건설 현장이다. 지난 9월17일 청와대 국민 청원에 청원이 하나 올라왔다. 제목은 ‘김포 장릉 인근에 문화재청 허가 없이 올라간 아파트 철거를 촉구합니다’라는 글이다. 청원은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정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청원을 보면 김포 장릉 인근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런데 이 중 일부가 문화재청이 고시한 ‘김포 장릉 반경 500m 안에 짓는 높이 20m 이상의 건축물은 개별 심의해야 한다’는 조항을 위반했다는 것. 불똥이 떨어진 건설사들은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주장하지만 현재 일부 동의 공사가 중단되었다. 문화재청과 건설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고 있지만 내년에 새 아파트로 입주할 희망을 품고 있던 입주민들은 고통을 받고 있다.

여론도 두 갈래다. 본래 조선 왕릉 40기는 일괄적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는데 이 중 하나라도 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전체 왕릉의 문화유산 등록이 취소될 수 있다는 것. 또 하나는 ‘왕릉보다 산 사람이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논리로 이미 골조 공사가 끝나고 내부 작업에 들어간 아파트를 허물 수는 없다는 의견이다. 이 능에 묻힌 원종과 인헌 왕후도 이 사실을 안다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김포시 풍무동 장릉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이자 인조의 생부인 원종과 그의 부인 인헌 왕후의 능이다. 원종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왕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 능양군이 인조로 즉위하면서 왕으로 추존되었다. 선조는 다섯째 아들 정원군을 유독 아꼈다고 한다. 하지만 선조 뒤는 광해군이 이었다. 광해군은 정원군을 집중적으로 감시했다. 정원군에게는 셋째 아들 능창군이 있었다. 능창군은 호탕하고 무예도 출중해 왕재로 주목받았다. 마침 황해도 순안 군수 신경희 등이 능창군을 왕으로 추대할 모사를 꾸민다는 상소가 광해군에게 올라간다. 광해군은 능창군을 강화로 유배 보내고 죽였다. 아들을 잃은 정원군에게 더 비극이 닥쳤다. 지관이 광해군에게 새문동 터에 왕기가 서려 있으니 그곳에 궁을 지어야 한다고 고한 것. 광해군은 새문동 터를 압수하고 경덕궁, 지금의 경희궁을 지었다. 헌데 이 새문동 터는 정원군이 살던 곳. 집까지 잃은 정원군은 술로 세월을 보내다 그만 40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후손들은 평소 정원군을 눈엣가시처럼 여긴 광해군 눈치를 보느라 장례도 변변하게 치르지 못하고 무덤도 남양주의 처갓집 선산에 마련했다.

1623년, 반정으로 광해군은 쫓겨나고 정원군의 장남 능양군이 왕위에 올랐다. 바로 인조다. 인조는 생부 정원군을 정원 대원군으로 추증하고 묘도 홍경원으로 승격시켰다. 그리고 생모는 새문동 터에 있던 경덕궁에 들어가 살았다. 인조 10년, 정원 대원군은 원종으로 추존되고 장릉에 묻혔다. 얼마 후 인헌 왕후도 세상을 떠나 장릉에 합장했다.

김포 장릉은 정문에 역사문화관이 있고 이어 약 2㎞의 산책로가 이어진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꽤 규모가 있는 연못과 저수지가 나온다. 그리고 능은 홍살문을 기점으로 시작한다. 홍살문은 정자각으로 이어지고 그 길은 제향 시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향로와 왕이 걷는 길인 어로로 구분된다. 관람객은 어로를 통해 능을 볼 수 있다. 합장능이 아닌 쌍릉으로, 문인석과 무인석 1쌍씩 서 있고 보호석만 둘렀다. 정자각 주변에는 뽕나무가 있는데 이 중 하나는 인조가 심었다고 한다. 수령이 족히 400년 가까이다. 본래 뽕나무는 그 색이 왕실의 상징하는 황색이라 궁에서도 길렀던 수목이다. 인조의 아버지를 위한 배려다. 지리를 보면 계양산, 인조가 묻힌 파주 장릉, 김포 장릉이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또한 인조의 효심의 발로다.

[글 장진혁(프리랜서) 사진 국가문화유산포털]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