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는 왜 말하지 않는가

2021. 11. 4.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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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륭 한림대 명예교수·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지금까지 여야 정당에서 진행돼온 대선 후보 경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답답함과 함께 많은 우려를 느껴왔다. 도대체 여야 후보들은 작은 주제에 대한 제안과 토론, 상대방에 대한 흠집 내기, 여야 주력 후보에 대한 온갖 음모론 등을 제기하면서도 왜 집권 후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가. 그렇게 해서 집권에 성공하면 작은 정책 과제에 대한 고만고만한 수준의 구상을 실행하고 갖가지 음모론에 따라 상대를 제압하기만 하면 국정 운영이 저절로 이뤄진다고 보는 것인가. 이는 마치 거시경제학은 결여된 채 미시경제학만으로 경제 관리를 하고, 거시정치학에 대한 구상은 없이 미시정치학만으로 국정 관리를 하려 드는 것 같은 순진함을 느끼게 만든다.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한국에서 왜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가.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단순다수제와 양당제, 그리고 이에 기반한 양대 세력 중심의 선거 구도가 상대 세력에 대한 흠집 내기와 사생결단식의 극한적 대결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한국의 정치가 새로운 국가 비전과 거대 구상을 결여한 소인국 정치로 쇠퇴하게 만든다고 볼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세계 동향에 대한 후보자들과 정당들의 학습 결핍, 한국 미래에 대한 비전 결핍, 세계사 변화 속에서 한국의 도약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정책설계 역량 결핍 등이 더 큰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결핍과 소인국 정치의 협애함을 넘어설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국민의 선택을 받고자 하는 대통령 후보와 소속 정당은 급변하는 국내외 상황을 직시하고 한국을 어디로 이끌고 갈 것인지 국가 비전을 정확히 설정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대한민국의 세 가지 미래 국가 비전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지난 반세기 이상 오로지 성장에 치중해온 결과 불평등과 빈부격차 확대를 가져온 경제 우위 국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분배와 복지를 강화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경제·사회 균형국가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27.4% 수준인 조세수입을 세계 10위 경제대국에 걸맞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3.8% 수준에 근접하도록 점진적 증세를 준비하고, 동시에 GDP 대비 12.2% 수준인 사회지출 비율을 OECD 평균인 20% 수준에 도달하도록 점진적 증액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둘째,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와 자연자원의 무제한적 사용에 따른 이산화탄소의 대규모 방출로 인해 극심한 기후변화가 발생하고 인류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화석연료 기반의 산업국가를 재생에너지 기반의 지속가능한 그린 생태국가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현재도 이산화탄소 배출과 지구온난화가 계속 가속화하고 있으므로 강력한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지구 기온이 2040년쯤 1.5도, 2100년쯤 4.8도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생태계 보존과 인류 생존을 위한 그린 생태국가의 비전을 정립함으로써 2050년까지 탄소중립화 계획을 반드시 실행해 지구의 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통제해야 한다.

셋째, 세계를 상대로 많은 상품을 수출하고 또 많은 원재료와 중간재를 수입해 경제적 번영을 이룬 한국은 향후 지속적 번영을 위해 세계 여러 나라, 특히 170여개에 달하는 개발도상국을 위해 인도적 지원과 자립적 발전을 지원하는 세계공헌국가로서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경제·사회 균형국가, 그린 생태국가, 세계공헌국가라는 새로운 국가 비전은 저출산, 고령화, 지방 소멸, 높은 자살률 등과 같은 ‘한국의 비극’ 현상을 치유하는 것은 물론 미래의 기후위기를 예방해 인류 생존을 확보하고 세계와 공동번영을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비전들이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현재 정치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선 경쟁은 너무 근시안적이고 현재 지향적이며 미래 위험에 둔감한 우려스러운 행태를 보인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각 정당은 지금부터라도 이 새로운 국가 비전의 관점에서 정책 대안을 재점검하고 미래 기후 위험의 완화와 새로운 기회의 활용을 위해 좀 더 전향적이고 담대한 구상을 제시해주길 기대한다.

성경륭 한림대 명예교수·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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