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범의 문화탐색] 인사동 민속주점은 장식미술?

2021. 11. 4.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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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 디자인 평론가

디자인은 겉모습이 아니다?

디자인은 겉모습에 불과하다는 대중의 몰이해(?)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흔한 반응은 ‘디자인은 단지 겉모습이 아니다’라고 강변하는 것인데, 이리하여 디자이너들은 마침내 디자인의 깊이에 관한 저 악명 높은 이분법의 함정에 빠져들고 만다. 누가 일부러 쳐놓은 것도 아니건만, 이 이분법은 대중은 물론이고 디자이너들조차도 좀체 벗어나지 못한다. 디자이너로서는 디자인의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사회적 인정을 받으려는 제스처겠지만, 문제는 이러한 도식이 디자인의 의미를 스스로 옭아매기 일쑤라는 것이다. 사물의 겉과 속, 외면과 내면, 표층과 심층을 구분하는 사고방식은 뿌리 깊은 것이고, 그 기원은 멀리 플라톤에까지 가닿는다. 플라톤의 이미지(현상)와 이데아(본질)의 구별이야말로 존재론적 차별의 극단적 원형을 보여주니까 말이다.

「 전통이란 기묘한 콜라주
현상과 본질의 낯선 조합
장식과 디자인 섞인 한국
우리 디자인이 나갈 길은?

‘디자인은 겉모습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일단 외면과 내면을 분리할 뿐, 그 둘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시가 없다. 외면과 내면, 즉 표층과 심층이 맺는 관계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표층이 심층을 지시하는 것, 둘째, 표층과 심층이 분리되지 않고 일체화되는 것, 셋째, 표층만이 있고 심층은 아예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첫째가 표층과 심층의 이분법을 전제한다면, 둘째는 그 둘을 인정하되 분리하지 않으며, 셋째는 둘 중에서 하나만을 인정한다.

인사동 어느 민속주점의 외관. 이른바 민속주점은 현대 한국인이 상상하는 전통의 콜라주인데, 이것을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장식미술이라고 보아야 할지 아니면 한국적 포스트모던이라고 보아야 할지는 혼란스럽다. [바론시오 블로그 캡처]

디자인에서 표층과 심층의 관계는 디자인 패러다임에 그대로 드러난다. 흔히 디자인의 역사적 패러다임을 장식미술, 모던 디자인, 포스트모던 디자인으로 나누는데, 이는 각기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조형했는가를 보여주는 디자인 사유의 유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디자인 사유의 기본구조는 결국 디자인의 표층과 심층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첫째, 장식미술은 표층이 심층을 지시하는 것이다. 예컨대 왕의 옥좌와 옷에 새겨진 용무늬는 왕의 지위를 상징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용무늬라는 표층이 왕이라는 심층과 연결된다. 이처럼 장식미술에서는 문양이라는 조형적 요소가 장식이라는 상징적 형식을 띠면서 일정한 문화적 의미를 표상하게 된다. 조형(표층)과 의미(심층)는 존재론적으로는 위계적이지만 의미론적으로는 통합된다.

둘째, 모던 디자인은 표층과 심층이 분리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겉모습과 내용은 존재론적으로나 의미론적으로 완전히 일체가 돼야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바탕에는 진실함이라는 윤리적 가치가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나무는 나무처럼 보여야 하고 금속은 금속처럼 보여야 한다. 통나무처럼 보이도록 만든 콘크리트 벤치는 거짓된 것이어서 진실한 디자인이 아니다. 이처럼 모던 디자인에서 사물의 외면과 내면은 분리되지 않고 통합된다.

셋째, 포스트모던 디자인은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표층뿐이라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던 디자인은 사물의 심층을 부정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깊이에의 강요’를 거부한다. 그렇다고 해서 포스트모던 디자인이 ‘의미의 제로 상태’(롤랑 바르트)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던 디자인의 ‘진실에의 강박’에 대해 비판적이다 보니 다소 탈가치적 경향을 보이게 된 것이다. 이는 서구 문화사와 디자인사의 맥락 내에서 상대화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그러면 한국 현대디자인에서 표층과 심층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장식미술, 모던 디자인, 포스트모던 디자인이 모두 뒤섞여 있는 한국에서 딱 하나만을 꼬집어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디자이너들의 염원처럼 한국 디자인은 심층을 지시하고자 하지만, 사실 그 심층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거나 역사적 판타지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크 데리다식으로 말하면, 한국 디자인의 기표(記表)는 기의(記意)에 가닿지 못하고 자꾸 ‘미끄러진다’. 모던하고자 하지만 그것은 장식미술 위에 걸쳐진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포스트모던하고자 하지만 엇나간 모던 위에 올려놓은 포스트모던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난감하다. 인사동에 있는 민속주점은 장식미술인가 포스트모던인가. 아니, 그 이전에 한국의 모던은 식민지적 모던인가 포스트식민지적 모던인가, 한국의 포스트모던은 식민지적 포스트모던인가 포스트식민지적 포스트모던인가. 그것은 표층도 심층도 아닌 차라리 어떤 ‘낯섦’이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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