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리포트] '이건희 컬렉션' '모던라이프' 돌풍.. 미술 르네상스 여는 달구벌

최일영 2021. 11. 2.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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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 이끄는 대구미술관
서울, 평양과 함께 한국근대미술의 발상지로 불렸던 대구에서 미술의 부활을 알리는 긍정적인 신호들이 잡히고 있다.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대구는 그동안 뮤지컬, 오페라 등 공연예술 육성에 나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등의 굵직한 성과를 일궜다. 그러나 시각예술은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못해 아쉬운 부분으로 남았었다. 하지만 10주년을 맞은 대구미술관의 흥행, 대구시의 인프라 확대 움직임 등 최근 대구 미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대체불가토큰(NFT)가 적용된 미술품 등이 투자대상으로 인식되면서 세계적으로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관람객들이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모습. 대구미술관 제공

개관 10주년 대구미술관, 주목받다

지난 6~8월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웰컴 홈:향연饗宴’이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이인성 이쾌대 유영국 등 유명 작가의 작품 등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 기증품에 대한 관심과 코로나19 상황 속 문화 욕구가 합쳐진 결과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원제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1일 동안 진행된 전시회에 3만9931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사전예약은 일찌감치 마감돼 관람을 포기한 인원도 많았다. 전시 기간 홈페이지 방문자도 평소보다 2배 이상 급증했다. 인기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RM이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관람한 것도 이슈가 됐다. 그가 사진을 찍은 자리가 대구미술관의 인기 포토존이 되기도 했다.
관람객이 BTS 멤버 RM이 사진을 찍은 장소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있는 모습. 대구미술관 제공


대구미술관이 진행 중인 개관 10주년 기념 교류전 ‘모던 라이프’ 역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세계 최고 미술재단으로 손꼽히는 매그재단과 협업했다. 자코메티 샤갈 미로 등 세계대전 이후 유럽 미술의 정수와 대구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을 만날 수 있어 관람 열기가 뜨겁다. 지금까지 관람객 6000명가량이 찾았다. 유료에 인원제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대구미술관 직원들이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개최 전 작품을 검사하고 있는 모습. 대구미술관 제공


이건희 컬렉션과 10주년 교류전은 대구미술관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됐다. 자신감을 얻은 대구미술관은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하기 위해 ‘공감의 미술관, 하이 터치 뮤지엄(High Touch Museum)’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2023년 전시 계획까지 완료되는 등 활발한 활동도 예고하고 있다. 대구시도 대구미술관의 최근 행보를 보면서 대구 미술 확장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한다.

대구미술관 2일 관계자는 “다양한 계층이 시공간을 넘어 미술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전시, 교육, 이벤트를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한 미술 플랫폼을 구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문화도시 대구 “이제는 미술이다”

대구시는 대구미술관을 중심으로 한 시각예술 클러스터를 계획 중이다. 대구미술관을 현대미술 거점으로, 내년 말 개관 예정인 대구간송미술관을 고전미술 거점으로, 대구미술관 부속시설(부속동)을 근대미술 거점으로 삼는 것이 큰 그림이다.

대구시는 2015년 간송미술관의 분원격인 대구간송미술관 건립을 확정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대구미술관 바로 옆 수성구 삼덕동에 들어설 예정이다. 대지면적 2만4073㎡, 연면적 7970㎡, 지하1층, 지상3층 규모로 4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1938년 서울에 설립된 간송미술관(간송미술문화재단)은 일제강점기 민족의 문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간송 전형필 선생이 모은 1만여점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훈민정음 해례본과 고려청자 대표작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의 국보와 보물을 비롯해 국가적으로 귀중한 문화재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대구간송미술관이 개관하면 본원의 소장품을 상설 전시할 수 있게 된다.

대구시가 구상 중인 대구 시각예술 클러스터에서 중심 역할을 할 대구미술관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예식장으로 사용돼 논란이 됐던 대구미술관 부속동도 근대미술을 담당하는 시설로 활용될 전망이다. 대구시는 최근 대구경북연구원에 부속동의 활용방안을 의뢰했다. 대구시는 연구기관의 의견을 바탕으로 부속동을 근대미술 거점이자 각종 편의시설이 마련된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부속동은 총 면적 4460여㎡, 지하1층, 지상 2층 규모 시설이다. 대구간송미술관과 대구미술관을 연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부속동 개조의 핵심은 근대미술 상설전시관 마련이다. 근대미술은 지역은 물론 국내 미술계에서도 수요가 높은 분야다. 최근 미술계 트렌드인 개방형 수장고(수장과 전시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시설), 온라인 스튜디오, 증강·가상현실 전시관, 어린이 전시공간 등도 설치를 검토 중이다. 이 밖에도 교육 공간, 로비, 라운지, 뮤지엄숍, 카페·레스토랑 등 관람객들이 머물고 쉴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한다.

국립미술관 유치를 위한 노력도 계속될 전망이다. 대구시는 최근 국립 이건희미술관 유치를 추진했지만 아쉽게도 수도권 건립으로 결론났다. 아직 지역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이 이건희미술관 지방 건립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구시는 국립 시각예술시설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구 시각예술 클러스터와 국립시설이 함께 지역 미술을 이끌어야 시너지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대구시 내부에서도 국립미술관 유치 기조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은주 대구미술관장
“앞으로 10년은 대구미술관 색깔 찾는 과정”


"가장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입니다."

최은주(사진) 대구미술관장은 2일 대구 미술이 가야 할 길을 묻는 질문에 이처럼 답했다. 그는 "젊은 시절 현대미술관에서 일했을 때 가장 큰 고민이 변방 취급을 받는 한국 미술을 세계 미술과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이었다"며 "당시 미술계 전문가들과 고민해보니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는 지금의 대구 미술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관장이 부임 직후 직원들과 고민했던 것은 '과연 대구미술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한국현대미술과의 관계성에서 어떤 영역과 특성을 차지하는가' '대구미술의 영역을 어떻게 해석해 나갈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대구작가를 발굴해 소개하는 '다티스트(대구아티스트)', 대구에서 한국현대미술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토론의 장을 열겠다는 각오로 준비한 '대구포럼' 등이 이 같은 고민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최 관장은 "그동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현대성을 추구하는 미술관이라는 이미지를 얻는데 성공했다"며 "앞으로 10년은 대구미술관의 색깔을 찾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9개월 동안 공석이었던 대구미술관장에 2019년 선임됐다. 9개월 동안 관장이 없었던 것은 생각보다 문제가 컸다. 결정 부재로 프로그램의 세심함과 방향성이 부족했다. 이에 학예실 조직을 수집연구팀, 전시기획팀, 교육팀의 3팀 체제로 바꾸고 큐레이터들의 희망사항을 반영해 일하고 싶은 부서에 배치했다. 미술관의 기초적인 역량,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최 관장은 전시, 교육, 관객과의 교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코로나19 시기를 내실을 다지는 기회로 삼았다. 영상, 가상현실(VR), 메타버스 콘텐츠 등 다양한 디지털 기획을 시도했고 소장품 수집·연구, 아카이브 구축 등에 심혈을 기울여 대구미술관의 전환점으로 삼았다.

그는 "미술관은 천천히 기반을 다지는 곳이라 그동안의 성과를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하나를 꼽으라면 연구체제를 갖춘 미술관으로 자리 잡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관장은 서울대 서양화과 출신으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덕수궁미술관장, 경기도미술관장 등을 역임한 미술계 베테랑이다.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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