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지는 기시다 내각, 꼬이는 한·일 관계..종전선언 제안도 '딴지'

정진우 2021. 11. 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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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달 31일 자민당 선거본부에서 총선 승리가 확정된 후보들의 이름에 꽃을 붙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총선에서 단독 과반 의석(261석) 확보에 성공하며 한·일 간 냉기류가 당분간 지속할 전망이다. 특히 취임 한 달 만에 맞는 총선에서 자민당의 보수적 노선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재확인함에 따라, ‘한국 때리기’라는 강경한 한·일 관계 접근법도 계속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 입장에선 임기 말 한·일 관계 정상화 시도에 악재가 계속 쌓이고 있는 셈이다.

한·일 간 최대 현안인 과거사 갈등과 대북 공조 문제에 대한 기시다 총리의 입장은 사실상 전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의 접근법을 계승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선 한국 측에 “먼저 해법을 내놓으라”며 사태 해결의 책임을 전가하고, 대북 정책에선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무력 도발을 강하게 규탄하며 대립각을 세우는 식이다.


"한국 측의 해결책 제시 강하게 요구할 것"


지난달 13일 참의원 본회의에 출석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기시다 총리는 이 자리에서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한국 측의 선제적인 해결책 제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연합뉴스]
실제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13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 “일본이 수용 가능한 해결책을 조기에 내놓도록 한국 측에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선제적인 해결책 제시 없이는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엄포나 다름 없었다. 기시다 총리는 취임 11일 만에 문 대통령과의 통화했지만,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상호 입장차만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외형적으론 자민당이 국정 운영을 위한 절대 안정 의석을 확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론 공명당과의 연립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 조율 등 국내 정치적 리스크가 여전한 상황”이라며 “또 기시다 총리가 미·일 관계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동력도, 명분도 없는 한·일 관계 개선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리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종전선언 논의에도 한·일 이견 부각


지난달 19일 한미일 북핵수석대표 협의 당시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왼쪽)과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운데),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후나코시 국장은 이날 협의에서 북한의 잇딴 무력 도발을 규탄하며 역내 억지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이는 종전선언을 통해 북미-남북대화를 조기 재개하려는 한국 측의 대북 접근법과는 온도차가 있다. [외교부 제공]
한·일 양국 간 경색 국면은 종전선언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 노력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 특히 북한의 영변 원자로 재가동 징후 및 계속되는 미사일 시험 발사 등을 이유로 일본은 종전선언에 회의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일본의 기류는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북핵수석대표 협의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당시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종전선언에 대한 지지·협력을 요청했는데, 이에 후나코시 다케히로(船越健裕)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북한이 한반도 긴장 조성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고 강하게 규탄했다고 한다. 특히 후나코시 국장이 한·미·일 협의에서 ‘역내 억지력 강화’를 수차례 강조한 것은 사실상 종전선언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피력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외교 소식통은 “일본 역시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대전제에는 동의하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에서 한국이 제안한 종전선언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게 확고한 입장”이라며 “오히려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고, 억지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것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내는 게 우선이라는 한국의 접근법과 상당한 간극을 보인다”고 말했다.


영국 찾은 文-기시다, 회담 가능성은 '희박'


31일(현지시간)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참석차 영국 글래스고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영접 나온 로스 여왕실법률담당과 인사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모두 1~2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참석하지만, 한·일 정상 간의 깜짝 대면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한·일 모두 국내 정치적 변수에 묶여 만나도 관계 개선을 심도 있게 논의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기시다 총리는 문 대통령이 아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지난달 29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기시다 총리가 COP26을 계기로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을 뿐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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