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다닐 수 없습니다.. 이 길에서 받은 특별한 위로
[이상구 기자]
인천 남동구는 오늘날 인천의 중심지다. 시청, 경찰청 등의 관공서가 몰려 있고, 시립문화예술회관과 남동 아트홀 등은 인천의 문화예술을 선도하고 있다. 3천여 공장이 가동 중인 남동산업단지는 인천은 물론 대한민국 제조업의 전초기지 역할을 다하고 있다. 대형 쇼핑센터와 농산물 도매시장 등 유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 도시엔 자동차는 다닐 수 없는, 사람만을 위한 길이 있다. 길을 걸으며 찻길을 한 번도 건너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안전하다. 게다가 제법 길다. 13~14km쯤 된다. 시민들은 이 길을 한가하게 걷거나 달린다. 자전거를 타는 이도 많다. 길은 소래포구에서 시작해, 습지생태공원을 지나 장수동 인천대공원까지 간다. 물론 그 반대로 코스를 잡아도 상관없다.
그 정도면 결코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마음 단단히 먹고 그 길을 걸어 봤다. 지하철을 타고 소래포구 역에서 내리면 여정이 시작된다. 평일 오후인데도 사람들이 꽤 북적인다. 귀동냥으로 들어 봤더니 오늘이 물때란다. 낚시하기 좋은, 물고기가 가장 잘 잡히는 때다. 코로나 확진이 2천명을 넘나든대도 좋은 먹거리를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까지 막지는 못한 것 같다.
▲ 소래역사관 생명의 순례길이 시작되는 곳. 소래의 오랜 역사를 증언하는 곳이다 |
ⓒ 이상구 |
소래포구 입구에 소래역사관이 있다. 말 그대로 소래의 지나온 발자취를 모아 놓은 곳이다. 소래라는 지명의 유래도 적혀 있다. 일각에서는 당나라 소정방이 이곳을 통해 들어와 그리 불렸다고 하지만 그건 설득력이 없고, '가늘다', '뾰죽하다'는 뜻의 우리말 '솔다'에서 유래됐다는 게 정설로 인정받는다. 그게 무엇이든 이 포구의 역사가 대단히 깊다는 사실은 맞다.
▲ 꼬마기관차 1978년까지 수인선을 달렸던 협궤열차의 기관차. 대관령 휴게소에 있던 걸 2000년대 초 여기로 가져왔다. |
ⓒ 이상구 |
역사관 바로 맞은 편엔 월곶까지 가는 다리가 있다. 원래는 꼬마열차가 지나다니던 철교였다. 다리엔 밑바닥이 없었다. 듬성듬성 침목 사이로 바다가 그대로 보였다. 높이도 꽤 된다. 그걸 건너다니며 담력 테스트를 하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그때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그냥 그대로 놔뒀으면 스릴 넘치는 관광 상품이 됐을지도 모른다. 참 보존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 소래어시장 그 옆에 신식건물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곳 난전을 더 좋아한다 |
ⓒ 이상구 |
시장 옆의 경매장도 북적이고 있었다. 마침 배들이 들어와 꽃게를 풀어 놓은 판이다. 가을 꽃게는 솔직히 살이 별로 없다. 알 품은 암게보다 숫게가 많다. 봄 꽃게보단 못하지만 맛은 깊다. 인천 앞바다의 가을 꽃게가 9년 만에 최대 풍년이란다. 경매사들도 오랜 만에 신바람이 나는지, 몸 사위에 힘이 잔뜩 들었다.
▲ 소래생태습지공원 드넓은 갯벌에 갯벌과 바다의 환경을 생가갛고 체험하고 공부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다. 붉게 보이는 게 함초다. |
ⓒ 이상구 |
드넓은 땅에 사람은 별로 없다. 고즈넉하고 평화롭다. 아이들과 나들이 나온 젊은 엄마들, 친구들 손잡고 길을 나선 중년의 여인네들, 예사롭지 않은 카메라를 메고 출사 나온 사진작가, 자전거를 타고 운동 중인 라이더들이 원시 그대로의 자연과 어우러져 가을의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무너져가는 소금창고나 군데군데 눈에 띄는 쓰레기 더미는 옥의 티였다.
▲ 인천대공원 호수 인천대공원의 호수. 규모는 작지만 제법 운치가 있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
ⓒ 이상구 |
거기부터 길은 본격 시작된다. 인천대공원까지는 8km쯤. 입구까지의 거리다. 공원 이름에 '대(大)'자가 붙은 건 이유가 있다. 진짜 크다. 거기 가서도 한참을 걸어야 한다. 힘은 들어도 길은 심심치 않다. 청둥오리, 왜가리, 백로 따위가 줄지어 나타나 길벗이 돼 준다. 매 순간이 다른 하늘과 구름의 풍경도 눈을 즐겁게 한다. 길가의 이름 모를 들꽃에도 눈길이 머문다.
▲ 갯골 수 억 년을 쌓여온 갯벌의 모습은 그 자체로 신비로워 보인다. |
ⓒ 이상구 |
이윽고 장수천이 나온다. 남동구 장수동에서 발원해 소래 앞바다로 흘러드는 작은 개천이다. 다리 위에서 물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뭔가 큼지막한 생물체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잉어다. 팔뚝, 아니 어른 다리통 만하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떼로 몰려 있다. 움직임은 빠르지 않다. 여유로워 보인다. 뭔가 신령함 마저 풍긴다.
아무도 그걸 잡지 않는다. 가냘픈 철새들은 오히려 잡혀 먹힐 것 같다. 개천의 왕처럼 느릿느릿 헤엄치다 누가 건빵 조각이라도 던져주면 일제히 물 위로 튀어 오른다. 잉어는 장수를 상징한다. 그 잉어가 장수천에 사니, 두 배는 더 오래 살 터다. 잉어는 또 등용문, 합격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제 공원이다. 공원 내엔 이런저런 시설물이 많다. 작은 수목원도 있고, 목공예 체험장과 전시장도 있다, 신비로운 자태의 수석도 구경할 수 있고, 4계절 썰매장도 있다. 코로나로 구경은 할 수 있지만 직접 체험하거나 즐기는 건 중단 상태다. 공원 한 가운데 호수가 있다. 일산이나 청라만큼 크지는 않아도 제법 운치가 있다. 거기에도 잉어가 살고 있다.
▲ 장수동 은행나무 인천대공원 뒷편에 있는 은행나무. 수령이 800년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수리가 제법 노랗게 물들었다. |
ⓒ 이상구 |
사람들은 그 은행나무 주변에 식당들을 차렸다. 메뉴는 무척 다양하다. 모두가 비장의 맛으로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어느 하나 고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여기 메뉴는 시내에서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다. 뭔가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것을 원한다면 발품을 더 팔아야 한다. 한 3km쯤 나가면 있다. 인천식 고추장 추어탕이다.
▲ 인천식 추어탕 고추장을 베이스로 끓인다. 무쇠솥밥이 특히 찰지고 달다. 푸지뫈 한상이 만원이다. |
ⓒ 이상구 |
여기 집들은 특히 밥이 맛있다. 무쇠솥에 갓 지어 낸다. 1인분도 예외가 없다. 밥은 찰지고 달다. 다 덜어내고 물을 부어두면 식사가 끝날 즈음 구수한 숭늉이 되어 있다. 반찬도 정갈하고 깔끔하다. 김치와 제철 나물 등 대여섯 가지가 상에 오른다. 그냥 밥하고 밑반찬만 있어도 될 성 싶다. 다 넣고 쓱쓱 비벼 먹어도 별미일 것 같다. 그거 다 주고 1인분에 만 원이다.
이날 총 15km 가까이 걸었다. 혼자 걸었지만 실은 혼자가 아니었다. 자연이 있었다.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힘에 부칠 때면 으레 나타나 격려해주고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 자연을 보존하고 보호해주자 하지만 사실 그걸로 우리가 받는 혜택이 더 크다. 그들은 우리의 소중한 동반자이자 수호자들이다. 인천 남동구엔 위대한 생명의 순례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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