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발생 온상이었던 정부양곡도정공장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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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경 기자]
▲ 부여 석성면 문화재 보존복원추진위원회 발대식 철거 위기에서 도시 재생을 택한 정부양곡정미소 마당에서 문화재보존복원추진위원회 발대식을 개최했다. |
ⓒ 오창경 |
지난 21일 부여 석성면에서 개최한 '문화재 보존복원 추진위원회' 발대식에 다녀왔다. 부여에서 문화재를 논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사비백제가 남긴 유적과 유물들로 땅만 잘 파면 문화재가 나오는 곳이 부여다. 하지만 그것은 백제의 왕궁터였던 부여읍 쪽에 집중된 이야기다.
그 외 지역에는 선사시대부터 조선과 근대의 유적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다만 백제 문화재에 치여서 한쪽으로 밀려나 있을 뿐이다. 부여 석성면에서 '문화재 보존복원 추진위원회'를 구성한 것은 부여의 전 역사를 아우르는 흔적을 그냥 놔두지 않겠다는 뜻이다.
석성면이 고향인 김지태 석성면장은 지역의 우수한 문화자원을 스스로 평가절하고 훼손하고 방치하는 우를 더 이상 범하지 않기 위해 석성면민들의 뜻을 결집하는 단체가 필요했다고 했다. 위원회는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역량 있는 주민들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문화적 자원과 역사 기록에 근거한 소실 문화재를 찾아내고 매장문화재를 발굴할 때 관계 기관과 적극 협력하고 지원하는 체제이다.
▲ 부여군 석성면 정부양곡정미소 철거보다 도시 재생을 부여 석성의 택한 정부양곡정미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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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 석성면 정부양곡정미소 전경 도시재생의 손길이 미치면 이곳도 근대문화유산으로 우뚝서게 될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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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성면에는 1950년에 지은 '정부미 영산 공장'이라고 불리는 벼 도정 공장이 있다. 부여, 논산 지역에서 최초로 현대화된 정미시설을 갖추고 도정 공장 체계로 운영하던 곳이었다. 덕분에 부여군 최초로 전기도 공급되었다. 당시의 벼 도정의 혁신을 이끌었던 시설을 갖춘 곳이기도 하다. 하루에 드나들던 화물차의 수를 헤아리지 못할 정도였다고 동네 사람들은 추억한다.
그 도정공장 마당에서 발대식을 열었다. 역사적 의미만 남긴 채 퇴색되던 곳에서 문화재에 대한 보존복원을 논의한 데는 근대문화유산부터 차근차근 찾아보고 돌보겠다는 석성면민들의 뜻이 담겨 있다.
현대화된 도정공장들이 많이 생기면서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던 부여 석성면의 정부양곡 도정공장은 문을 닫은 채 지역의 흉물이 되어갔다. 지난 50여년의 세월동안 석성 정부미 영산 공장은 쉼 없이 달려왔으나 한국전쟁이후 경제 성장기를 거치며 혁신을 거듭하는 흐름에는 발을 맞추지 못했다. 벼를 도정한 쌀을 논산 훈련소에 납품했던 임무를 다하고 긴 휴식기에 들어가게 되었다. 기초생활거점사업을 통해 철거하자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한쪽에서는 근대문화유산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는 의견도 거셌다. 주민 여론의 충돌이 팽배한 가운데 대한 여성 건축가 협회 김규린 회장을 초빙했다.
▲ 정미소 천장 손으로 일일이 나무를 재단해서 나사와 볼트로 조여서 만든 수제의 맛이 느껴지는 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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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에서 최초로 전기가 들어왔던 정부양곡 정미소의 변전소 석양이 지는 변전탑에서 멈췄던 시간을 말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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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를 알고 나면 시각도 달라진다. 동네 민원 발생의 온상이었던 폐업한 정부양곡도정 공장의 쓰레기를 치우고 묵은 때를 벗겨놓자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공간으로 변신했다. 어려웠던 시절 우리나라 쌀 생산의 획기적인 전기가 되었던 통일벼가 나와 도정을 해서 밥을 배불리 먹게 되었던 시간이 머물렀던 곳이며 싸래기조차 아까워 떡을 해먹고 술을 담갔던 기억이 먼지 쌓인 공간 속에서 살아났다.
벼를 도정하던 기계 장치들이 부속만 연결하면 곧 도정이 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너무 빠른 걸음을 재촉하는 동안 방치되었던 수동 기계들이 불러오는 향수 앞에서 추억에 젖는다. 낡고 오래된 것들에는 향수가 있다. 시간이 고스란히 머물러 살아왔던 사람의 역사를 소환하게 만든다. 마당에는 화물차들이 드나들며 장병들의 매끼 식사가 되는 쌀을 논산 훈련소로 실어갔던 시간이 머물러 있다. 철문이 굳게 닫혀 있는 동안 석성 사람들의 역사와 추억에 빗장이 걸려있었다.
손맛이 느껴지는 나무 트러스 공법으로 지어진 건물은 지금은 남아있는 곳이 거의 없다. 나무를 재단해서 톱으로 일일이 자르고 나사와 볼트로 조여서 지붕을 떠받치게 만들었다. 한땀한땀 사람의 손길로 매만지고 다듬어 수제의 흔적이 배어있는 건축 공법은 60년 전에는 가능했다. 모든 유물들의 가치는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은 수작업의 솜씨에서 비롯된다. 이계협 석성면 명예 면장은 "손으로 일일이 다듬는 동안 건물에도 혼이 깃드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도시 재생의 물결이 일고 있다. 무조건 철거하고 새로 짓는 것보다 살려내고 보완해서 환경도 살리고 오래된 것의 가치를 돌아보는 것이다. 부여의 석성면 주민들도 새롭고 세련된 것보다 오래된 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멋을 깨닫게 되었다. 역사를 간직한 유물에서는 작품성과 예술성을 발견한다면 바로 전 세대가 사용하던 흔적에서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강화도에서는 '조양방직'이라는 우리나라 근대 산업의 성장을 이끌었던 방직 공장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재생시켜 전국적인 관광 핫플레이스로 만들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추억과 향수를 찾아서 젊은 사람들은 부모가 살아온 시간의 궤적을 쫓기 위해 그곳들을 찾는다. 그 시대를 이야기 하고 공감대를 나누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박물관의 유물보다 세대가 공감하는 향수가 깃든 물건들에서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것은 바로 우리가 사용했던 것이며 매일 봐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부여에서도 그런 공간을 찾아서 재생의 길을 택한 것은 잘한 일이다. 정부미 영산 공장이 재생의 시간을 지나 기억을 소환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할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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