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민주당 초선엔 '관종'이 없다

이가현 2021. 10. 30.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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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현 정치부 기자


더불어민주당 초선 중에는 ‘관종’이 없다. 관종은 조어 ‘관심 종자’의 줄임말인데,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면 어떤 행동이든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관종 대신 모범생은 많다. 지난 총선에서 전문가 위주의 인재영입을 했으니 예견된 수순인지도 모르겠다.

양질의 초선이 민주당에 많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양질의 기준이 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다. 각자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낸 사람들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당에 오랫동안 헌신했던 당직자들로부터 서운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공천이었으니 말이다.

한 분야에서 인정받은 사람들이니 신념도 확실할 테고, 다양한 곳에서 삼고초려해 모셔온 분들이니 여러 목소리가 당에서 나오길 기대했다. 하지만 신기하리만치 민주당의 초선들은 조용했다. 모범생답게 당의 지침에 잘 따랐다.

단적인 장면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가 사회적 공분을 일으킬 때였다. 이들은 조 전 장관 사태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 진행 중인 사안이니 제가 말씀을 드리기엔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준비된 답변으로 방어했다. 물론 막 영입됐고, 당선 여부는커녕 공천 여부도 확정되지 않은 시점에 극도로 조심할 수밖에 없었을 그들의 마음을 이해 못한 건 아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국회에 입성하고도 그들은 여전히 조용했다. 180석의 거대 의석 중 초선이 86명에 달한다. 민주당의 모범생 초선들은 선배 의원들의 “108번뇌 사태를 재현하면 안 된다”는 충고를 충실히 따랐다. 17대 국회 당시 탄핵 역풍을 타고 입성한 108명의 초선 의원들이 제각기 목소리를 내는 바람에 당이 내홍에 빠진 사태를 ‘108번뇌’라 부른다.

거여(巨與)의 입법 독주, 부동산 사태가 연이어 터지면서도 자성의 목소리는 없었다. 그러다 1년 뒤 4·7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에야 ‘초선 5적’이 탄생했다. 문자 폭탄 탓에 용기를 내 당에 쓴소리를 한 이들은 ‘초선 5적’이란 타이틀을 달게 됐다. 이 당의 참담한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번은 한 초선 의원에게 왜 이제야 목소리를 내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선배 의원들이 ‘108번뇌’의 트라우마를 상기시켰고, 국회의 프로세스를 잘 모르는 새내기로서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대선 국면이라는 특별한 상황도 초선들의 존재감을 지우는 데 한몫했을 터다. 그렇다 해도 21대 국회가 출범한 지 1년6개월이 지났다. 그들이 의정 생활을 해야 할 4년의 거의 절반이 지난 셈이다. 그들의 임기는 2024년 5월 29일 만료된다.

나는 민주당 초선들이 모범생이 아닌 ‘관심에 목매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 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거나, 조금이라도 튀는 행동을 하는 국회의원을 두고 “‘자기 정치’ 한다” “관종이다”며 폄훼하는 내부의 목소리가 종종 들린다. 생각해 보면 그게 정치인의 본질이 아니냐고 되묻고 싶다. 당연히 정치인은 본인이 하고 싶은 정치를 해야 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본인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캐릭터를 좋아한다. 타투를 합법화해 달라며 국회의사당 잔디밭에서 타투 스티커를 붙인 등을 보인 퍼포먼스는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피감기관 증인인 홈쇼핑 대표가 “어이”라 말하자 기가 찬다는 듯 “어이?”라고 되받아치는 모습도 강렬했다.

실명을 거론하는 것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으나 민주당에는 좋은 자질을 가진 초선들이 많다. 물론 모든 초선을 다 만나보지도, 내밀하게 알고 있지도 못하다. 몇 번의 만남에서 받은 인상평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

언론중재법과 수술실 CCTV 설치법 등 주요 법안들을 발의한 신현영 의원은 공부벌레로 유명하다. 초선 5적에 이름을 올린 오영환 이소영 장경태 장철민 전용기 의원은 겸손하고 열정적이라는 게 기자들과 동료 의원들의 주된 평가다. 경력단절을 사법고시 합격으로 극복한 소위 ‘사기 캐(릭터)’ 홍정민 의원은 선배 의원들이 입 모아 칭찬하는 똑순이다. 최근 민주당이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이려 했을 때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소신 발언을 해 제동을 건 일화로 유명해진 고민정 의원도 “한 방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는 그들이 앞으로 좀 더 ‘관종끼’를 발휘해서 아직까진 유권자들이 잘 몰랐던 본인들의 장점을 널리 알렸으면 하고 바란다.

이가현 정치부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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