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 연아' 대 이을 빙판의 요정.. "후회 없이 최선 다할 것"

조효석 2021. 10. 30.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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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하오! 베이징 2022] <1> 피겨 국가대표 임은수
피겨 스케이팅 국가대표 임은수가 지난 22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 인근에서 피겨 연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피겨 스케이팅 국가대표 임은수(18)는 일찍이 한국 빙상계의 기대주로 자랐다. 어릴 적부터 ‘피겨여왕’ 김연아 이후의 각종 기록을 다시 썼고 시니어 무대에서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런 그에게 지난 몇 년은 힘겨웠다. 성장기가 찾아오면서 성적은 부진했고, 예기치 못한 사고에 훈련 환경까지 급변하면서 마음도 흔들렸다. 최근 기량을 다잡은 그는 내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향해 다시 도약하려 한다.

임은수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시니어 그랑프리 대회를 위해 다음 달 3일 출국하기에 앞서 훈련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4월 시즌 종료 뒤 첫 대회이자 12월에 열릴 올림픽 대표팀 선발전을 앞둔 마지막 공식 대회다. 당장의 성적도 중요하지만 실전 감각을 회복해 대표 선발전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는 게 우선이다. 국민일보는 지난 22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 인근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회복의 시간

임은수가 2019년 1월 13일 전국종합선수권대회에 출전해 목동실내아이스링크에서 영화 ‘시카고’ 삽입곡에 맞춰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하는 모습. 당시 입은 선수복이 임은수가 가장 아끼는 의상이다. 뉴시스

임은수에게 2019년은 녹록지 않았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종합 205.57점을 기록하며 여자 싱글 선수 중 김연아 이후 최초로 200점을 넘었지만 이어진 새 시즌에는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경기 외적인 일 때문에 스스로의 의사와 상관없이 8개월간 전지훈련을 하던 미국에서 귀국해야 했고, 마침 찾아온 성장기 때문에 그간 다져온 기술마저 흔들렸다.

임은수는 “그 시기가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다”고 돌이켰다. 그는 “전지훈련 기간은 새 환경이었고, 제가 배워보고 싶던 코치를 만났기에 열정도 가장 많았다. 몸도 열심히 하는 만큼 잘 따라줘서 그 시즌(전지훈련 기간)이 여러모로 가장 좋았다”고 했다. 그는 “이후 너무 많은 게 바뀌었다. 훈련지가 갑자기 바뀌고 의도치 않은 일과 변화가 많아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방황했다”고 했다.

다른 선수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도 겪었다. 임은수는 그는 “오래전부터 (국가대표 신분으로) 태릉에서 훈련하는 데 익숙했지만, 코로나19로 문을 닫아 다른 곳에서 개별 대관을 해야 했다”면서 “새벽이나 늦은 밤에 훈련하는 일이 잦았고 다른 환경도 태릉보다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임은수에게 올해 남은 일정은 선수 인생에서 중요하다. 당장 베이징 올림픽에 가는 관문인 대표팀 선발전이 12월이다. 임은수는 최근 태릉에서 다시 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다. 쉬는 건 일주일 중 일요일 하루뿐이다. 오전부터 낮까지 빙상장 위에서 훈련을 마친 뒤에는 지상에서 기술을 보완하거나 필라테스, 유산소 운동과 마무리 스트레칭 운동을 병행한다.

축제를 준비하며

2018년 평창 올림픽 때 주니어 선수였던 임은수는 또래 대표팀 동료 유영과 함께 갈라쇼 무대에 섰다. 그는 “올림픽 경기를 실제로 가서 본 건 처음이었다”며 “그땐 선수가 아닌데도 무대에 서고 싶다는 감정을 피부로 느꼈다”고 했다. 그는 “좋아하는 선수를 직접 보면서 왜 점수가 잘 나오는지를 실제로 보니 알 수 있었다. 배울 점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올해 열린 하계올림픽도 평소와 다른 마음가짐으로 지켜봤다. 펜싱을 특히 재미있게 봤다고 한 그는 “사실 동계종목이다 보니 하계 올림픽을 관심 있게 볼 기회가 없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가족과 함께 지켜봤다”고 했다. 그는 “전에는 올림픽이 남의 일로만 느껴졌지만 이번엔 경기 결과를 떠나 올림픽 무대에 선 모든 선수가 너무 멋있었다”고 했다.

‘김연아 키드’가 몰린 또래 중에는 출중한 경쟁자가 많다. 그중 김예림, 함께 평창올림픽 갈라쇼에 선 유영까지 셋은 여자 피겨 트로이카로 불린다. 허락된 베이징행 티켓은 단 2장이다. 경쟁에 임하는 임은수의 마음가짐은 예전과 사뭇 다르다. 그는 “예전에는 경쟁으로 동기부여도 되고 자극도 받았지만, 겪을수록 ‘(남들보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집중력을 흩트렸다”고 했다.

“남들이 잘하는 거랑은 상관없이 스스로 제 몫을 하는 게 저한테는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어차피 경쟁이니까 아예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건 지금도 어렵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이나 외부환경을 생각하기보단 최대한 제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제 몫을 다하려면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요. 스스로에게 집중하려고 제일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취향 뚜렷한 소녀 예술가

어른에 가까워진 임은수는 취향이 또렷하다. 어릴 적엔 스타일리스트로 일하던 어머니가 경기복을 골라 주는 일이 잦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의견이 8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 가장 좋아하는 건 영화 ‘시카고’ 삽입곡에 맞춰 연기할 때 입은 검정색 의상이다. 임은수는 “어릴 때는 어머니가 의상도 화장도 알아서 잘해주시니까 의견을 많이 따랐지만 이제 저도 나름 취향이 생겼다. 이제 엄마 말을 잘 안 듣는다”며 웃었다.

음악 취향도 마찬가지다. 피겨 연기 외 즐겨듣는 노래를 묻자 한참 고민했다. 남몰래 다듬은 플레이리스트를 내놓기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는 “차분한 노래, 가사가 좋은 노래를 듣는다”면서 “유행하는 노래보다는 저만 아는 노래가 좋다. 가수가 잘됐으면 좋겠지만 노래는 저만 알았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몇 가지만 꼽아달라고 하자 파테코(PATEKO)의 ‘널 떠올리는 중이야’와 잔나비의 ‘꿈과 책과 힘과 벽’을 추천했다.

베이킹은 최근까지 임은수가 공을 들인 취미 중 하나다. 그가 보여준 휴대전화 사진첩에는 몇 번이고 손가락을 튕겨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직접 만든 빵과 케이크 사진이 가득했다. 집에도 베이킹 도구가 잔뜩 있다. 체중관리 탓에 빵을 맘껏 먹진 못하는 대신 주변에 나눠주며 뿌듯해한다. 처음에는 힘들까 봐 걱정하던 어머니도 이제는 나눠 먹을 수 있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실력이 좋다.

‘혼자 놀기’의 달인인 임은수는 넷플릭스도 즐겨 본다. 액션보다는 로맨스가 취향이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와 ‘글리’ ‘미스터선샤인’이 그가 재밌게 본 작품 목록이다. 이번 2차 그랑프리 대회에서는 즐겨본 영화 ‘물랑루즈’의 ‘록산느의 탱고’에 맞춰 연기한다.

“후회는 없고 앞으로도 없다”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대선배 김연아로부터는 지금도 종종 조언을 받는다. 가끔 안무를 보러 와주기도 하고 임은수가 먼저 묻기도 한다. 남들이 쉽게 해줄 수 없는, 실용적인 충고가 많다. 그는 “언니(김연아)가 경험이 정말 많다 보니 선수로서 정말 필요한 조언을 많이 해준다. 안무도 실제로 와서 봐주면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김연아가 일종의 ‘랜선코치’ 역할을 해줄 때도 있다. 임은수는 “외국에서 열린 시합에 나갔을 때 평소처럼 점프가 잘 안 돼서 언니에게 연락한 적이 있다. 빙질에 예민한 편이 아니라 몰랐는데 ‘이러이러한 게 안된다’고 하니까 언니가 ‘그럼 얼음이 이런 것 같다, 그럴 때 나는 이렇게 했더니 괜찮더라’고 조언해 줘서 크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경험이 많지 않으면 해줄 수 없는 도움이다.

임은수에게는 또래가 으레 겪는 학창시절의 기억이 없다. 하루종일 훈련에 매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 초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그는 앨범에 들어갈 졸업사진도 훈련 일정 탓에 학교에서 찍지 못하고 별도로 촬영했다. 그만큼 인생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피겨에 임하고 있다.

선수 생활 중 아쉬운 점을 묻자 임은수는 망설임 없이 “없다”고 했다. 항상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이야기다. 그는 “실수에 대한 아쉬움, 더 잘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은 시합마다 있지만 열심히 하지 않아서 아쉬운 건 생각나는 게 없다”면서 “앞으로도 그런 아쉬움은 없도록 하는 게 (선수생활에서) 가장 큰 목표”라고 했다.

올림픽을 바라보는 자세도 마찬가지다. 임은수는 “올림픽에 나가고 못 나가고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12월 베이징올림픽 대표팀 선발전을 앞둔 그는 “못 나간다 해도 ‘이만큼이면 후회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정도여야 한다”면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준비해보자, 그게 지금 제 목표”라고 했다.

올림픽이 끝나면 하고픈 일을 묻자 임은수는 “운전면허”라고 쑥스럽게 말했다. 그는 “항상 엄마가 운전하는 차로 훈련장을 오가다 보니 대중교통 타는 게 익숙지 않다. 엄마가 데려다 줘야 다른 데를 갈 수 있다”면서 “면허를 따면 가고 싶은 데를 혼자서도 갈 수 있다. 혼자서, 스스로 하는 걸 좀 넓혀보고 싶다”고 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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