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남양유업의 쉽지 않은 뒤집기

임혜선 2021. 10. 2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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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에 꼭 등장하는 것이 친구 좋아하는 아버지들의 '빚 보증'이다.

친구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빚 보증을 선 아버지 덕에 집을 잃고 고생하던 주인공이 성공하는 것이 공통된 스토리다.

홍 회장은 이번 주총에서 측근으로 새로운 이사를 선임해 매각 장기화에 대비할 것이라는 업계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서류에 이같은 내용은 없었다는 것이 법원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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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혜선 기자] 1980~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에 꼭 등장하는 것이 친구 좋아하는 아버지들의 ‘빚 보증’이다. 친구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빚 보증을 선 아버지 덕에 집을 잃고 고생하던 주인공이 성공하는 것이 공통된 스토리다. 기껏해야 서류 한장에 도장 한 번 찍었을 뿐인데 가진 재산을 모두 날리고 일가족이 길거리에 주저앉아야 한다니 참 통탄할 일이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다. 이 때문에 현행법에서도 서류와 자필 서명, 도장을 중요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

남양유업의 이사회 구성원 교체는 결국 무산됐다. 29일 오전 9시 열린 남양유업 임시주주총회는 홍원식 회장 일가가 지분(53.08%) 행사를 못하게 되면서 의결 정족수 미달로 파행됐다. 홍 회장은 이번 주총에서 측근으로 새로운 이사를 선임해 매각 장기화에 대비할 것이라는 업계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법원이 남양유업과 한앤컴퍼니의 주식 매매 계약이 유효하다고 판단하면서 홍 회장의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홍 회장 일가는 ‘불가리스의 코로나19 항바이러스 효과’ 논란으로 5월27일 한앤컴퍼니에 지분 53.08%를 3107억2916만원에 매각하는 주식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거래 종결 당일 홍 회장은 돌연 주주총회를 연기했다. 이후 홍 회장은 한앤컴퍼니가 부당하게 경영에 간섭했다는 등의 이유로 지난달 1일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그러면서 한앤컴퍼니가 거래를 위한 선행조건을 이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번 법적 공방 과정에서 ‘선행 조건’이 외식브랜드 백미당을 매각에서 제외하고 오너 일가의 임원 유지 등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하지만 서류에 이같은 내용은 없었다는 것이 법원 판단이다. 법원은 "홍 회장 측이 제출한 자료만으로 외식사업부의 분사 등에 대해 한앤코가 확약할 의무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창업주 고(故) 홍두식 명예회장은 ‘4무(無) 경영’을 바탕으로 현 홍원식 회장에게 가업을 물려줬다. 돈을 빌려쓰지 않고(무차입), 노사분규가 없으며(무분규), 친인척이 개입하지 않으며(무파벌), 자기 사옥이 없는(무사옥) 경영을 말한다. 현재의 남양은 어떠한가. 4무 경영이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는 신뢰마저 잃었다. 홍 회장은 위기에 처한 회사 이미지를 회복시키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회사 매각을 발표했다. 명예로운 퇴진을 볼 수 있길 기대한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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