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판 중국-일본.. 일본인 전쟁연구가의 따끔한 진단 [일본史람]

박광홍 2021. 10. 29.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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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史람] 엄습하는 중국의 군사위협.. "일본의 군비증강이 답이 될 수는 없어"

[박광홍 기자]

▲ 일본 나가사키현 단죠군도 인근 해역을 지나는 중러 해군 함대(10월 23일) 최근, 중러 해군 함대가 일본 열도를 일주한 사태로 일본에서는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기시다 후미오 수상은 이들의 항해를 '불온한 움직임'으로 규정하였다.
ⓒ 일본 방위성
 
최근 중국-러시아 해군 함정 10척이 일본 열도를 사실상 일주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타이완 문제로 악화일로를 달리던 중일 간의 긴장감이 더더욱 고조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연합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동해를 가로질러 북상했던 중국-러시아 해군 함대는, 지난 18일 일본 혼슈와 홋카이도를 잇는 쓰가루(津軽) 해협을 통과해 22일 가고시마현의 오스미(大隅) 해협을 통해 동중국해로 빠져나갔다. 중국과 러시아는 해당 훈련이 특정한 제3국을 상정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양국 함대가 일본 열도를 돌면서 무기체계까지 시연한 상황에 대해 일본 국내에서는 위기감이 높아졌다.

일본 당국의 반응 역시 격앙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중국 측 구축함에서 헬리콥터가 이륙하자 방위성은 자위대 전투기를 긴급 발진시키기도 했다. <닛케이신문>(日本経済新聞)이 지난 25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수상은 중러 함대의 일본 일주를 '불온한 움직임'이라고 논평했으며, 기시 노부오(岸信夫) 방위대신 역시 미 해군 당국자들과 회담을 갖고서 이번 사태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영토 분쟁, 근래에 대두되고 있는 타이완 주권 문제 등으로 인해 일본과 중국이 첨예하게 대립해온 상황에서, 이번 중러 함대의 일본 일주는 일본의 정부와 대중사회에 감돌던 중국에 대한 경계심에 기름을 부은 것으로 보여진다. 여러 언론은 이번 사태를 '중국의 무력시위' '일본에 대한 강력한 경고' 등으로 해석했다. 누리꾼들의 분위기 역시 심상치 않았다. '중국의 위협에 맞서 무장해야 한다' '중국의 도발에 침묵하는 야당에 투표할 수 없다' 등의 댓글들에는 다수의 공감이 누적됐다.

일본과 중국의 대립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전보장과도 직결되는 것임은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흔들리는 국제정세 위에서, 살얼음판과도 같은 갈등 국면을 벗어날 출구는 좀처럼 찾기 어려워 보인다. 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일본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활로를 찾아야 하는 것일까.
  
"군비증강이 답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 전쟁/분쟁사 연구가 야마자키 마사히로 작가 야마자키 작가는 아시아 태평양 전쟁 뿐 아니라, 2차세계대전 당시의 유럽 전선, 현대의 중동지역분쟁사 등을 주제로 다수의 저서를 썼다.
ⓒ 야마자키 마사히로
 
전쟁·분쟁사 연구가 야마자키 마사히로(山崎雅弘) 작가는 현 상황의 해법을 묻는 말에 "최소한, 주변에 배치된 군비를 증강시키는 게 답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고 못박아 말했다. <전전회복(戦前回復, 2018)> <역사전과 사상전(歴史戦と思想戦, 2019)> 등 여러 저서에서 과거 제국시대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세력의 존재와 그 위험성을 지적해왔던 그는, 현재의 위기 국면을 옛 제국 일본의 과오에 빗대 설명했다.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여 군비를 확장하는 것은) 1937년 7월 노구교 사건 이후 일중전쟁(중일전쟁)이 전면전으로서 서서히 확대돼 가던 과정을 다시 밟는 것입니다."

노구교 사건은 애당초 병사 1명의 미복귀에서 비롯된 우발적인 군사충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군의 위협을 의도적으로 과장한 일본 군부는 대규모 병력을 증파해 사태를 전면전으로 확대시켰다. 결과적으로 당시 이뤄진 일본군의 증파는 중국과의 갈등에 있어 해법이 되지 못했다. 중일전쟁의 수렁에 빠진 제국 일본은 결국 1945년에 이르러 패전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야마자키 작가는 중일 간의 구체적인 현안들에 대해서도 과거의 사례를 제시하며 논평을 이어갔다. 가령, 센카쿠(尖閣) 열도 분쟁의 경우 그 양상이 1939년 일본군과 소련군 사이에 벌어졌던 노몬한 사건(할힌골 전투)과 닮아 있는 점을 지적했다.

1939년의 만몽국경 문제에서 분쟁지로 떠오른 노몬한 언덕 일대는, 현 시점에서 중일간의 분쟁지로 남아 있는 센카쿠 열도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지대였다. 소련의 영향을 받는 몽골인민공화국과 일본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이 노몬한 일대를 둘러싸고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며 갈등했다.
  
▲ 노몬한의 평야로 진군하는 일본육군 제23사단 노몬한 언덕 일대를 둘러싼 국경분쟁에 대해, 일본군은 외교적 해법을 배제한 채 대규모 병력을 동원했다. 결과적으로 전투는 참패로 끝이 났고, 아무 가치없는 척박한 땅 위에서 수천명의 일본군 장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 wiki commons
 
애당초 이 지역의 영유권 문제는 누군가의 적극적인 침략이나 도발로부터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청나라 시대에 몽골인들의 권역을 구분한 국경선이 불분명하게 그어진 탓에, 만주국이 수립되고 나서야 이에 대한 엇갈린 해석이 갈등으로 표면화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갈등이라고 해봐야, 양측이 주장하는 국경선의 차이는 10~20km에 지나지 않는 사소한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만주국을 사실상 지배하던 일본 관동군은 이 척박한 무인지대에서의 분쟁을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특히 츠지 마사노부(辻政信)와 같은 강경론자들은 적극적으로 확전을 획책했다. 결국 모래와 잡초만 가득한, 실질적으로 가치 없는 이 척박한 무인지대를 점유하기 위해 관동군은 대규모 병력을 투입했다. 사소한 국경분쟁은 일본과 소련의 전면전 양상으로 확대됐다. 결과는 참패로 끝났다. 일본군은 1만7000여 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고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노구교 사건과 할힌골 전투의 공통점, 그것은 자그마한 분쟁이 의도적으로 과대포장돼 더 큰 출혈과 파국적 결말을 초래했다는 데 있다. 야마자키 작가는 이러한 역사적 교훈에서부터, 상대의 어떤 움직임을 성급하게 도발로 선동하며 물리적 대책부터 강구하려 하는 조급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NHK 등 일본의 보도 매체는, 미군이나 자위대가 중국이나 북한을 염두에 두고 군사 행동을 하면 '견제', 같은 일을 중국군이나 북조선군이 실시하면 '도발'이라고 하는 등 적과 아군에게 쓰는 말을 구분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냉정하게 문제를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는, 잘못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위협을 과장 없이 직시하는 일
  
▲ 센카쿠 열도 사람이 살지 않는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은 일본-중국 간 갈등의 중심에 위치해왔다.
ⓒ wiki commons
 
물론 야마자키 작가 역시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실존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인터뷰 중간 중간, 중국이 타이완인들을 불안에 빠뜨리기 위해 끊임없이 군사력을 과시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며, 특히 앞서 언급한 센카쿠 열도에서 국지적 군사충돌이 발생할 가능성 또한 적지 않음을 짚고 넘어갔다. 다만, 중국이 일본이나 타이완의 안전에 명백히 위협이 되고 있는 상황을 직시하면서도 그 위협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뜯어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야마자키 작가는 중국이 타이완이나 일본을 군사적으로 정복하고 유지하는 것은 적어도 현재의 역량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논했다.

"과거 사례를 통해 볼 때, 중국 공산당 정부가 명하는 군사행동에는 자국 내 정치 문제와 연계되는 것이 적지 않았습니다. 1958년 대만과의 진먼 포격전도, 1979년 베트남 북부에 대한 국지적 침공도 사실 정치적 동기가 주를 이뤘습니다.

중국 공산당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치 권력자가 국내에서의 정치 문제로부터 국민의 눈을 돌려, 정부에의 국민의 종속을 강화하는 등의 정치적 동기로 분쟁이나 전쟁을 일으키는 일은 많이 있었습니다. 또한 군이나 정보기관, 치안경찰은 그 조직의 성질상 '강대한 외국의 위협'을 필요로 해 예산 획득을 위해 위협을 과장하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즉, 야마자키 작가에 따른다면 현재 시점에서 관측되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은 그 목적이 일본이나 타이완 등의 외부가 아닌 중국 내부에 있다는 것이 된다. 야마자키 작가는 그 위협의 본질을 바로 마주하면서,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과장해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우익 세력들이 일본 내에서 약진하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 "붉은 손 시진핑, 일본을 범하지마라!"(2020년) 중국을 일본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며 집단적 자위권 보장을 주장하는 반중시위가 오사카시 교바시역 부근에서 열리고 있다.
ⓒ 박광홍
 
그는 미국 정부가 센카쿠 열도의 방어에 관여하겠다고 천명했으므로, 중국은 대미전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 센카쿠 상륙 등의 군사행동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이번 중러 함대의 일본열도 일주로 일본에 대한 직접적 위협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확대해석을 삼가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애당초 중국이나 러시아의 관심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미군에 있기 때문에, 이들이 자위대나 해상보안청 지휘계통의 반응을 살펴보고 싶어했을 수는 있어도 주일미군과 분리된 형태로 일본을 공격할 의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일까. 

"현 상황에서는, 현장의 다툼이 군사분쟁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위대가 아니라 해상보안청이 대응하는 것이 좋겠죠."

위협을 과장없이 직시해야 한다는 것. 현장의 다툼이 군사분쟁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의 제언은 비단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만 유효한 게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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