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지'가 '제2의 이루다'로 끝나지 않으려면

김기진 2021. 10. 2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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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가슴만 크면 좋을 텐데 참~ 에휴.’

최근 가상 인간 시장에 대한 기사를 썼는데 여기에 달린 댓글이다. 댓글을 보자마자 ‘이루다’가 생각났다.

이루다는 인공지능(AI) 챗봇이다. 20세 여성 대학생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웠는데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말투를 구사해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12월 말 서비스를 시작해 약 2주 동안 75만명에 가까운 이용자가 이루다와 대화를 나눴을 정도로 화제였다. 하지만 이루다는 약 3주 만에 서비스가 중단됐다. 이루다가 성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 탓이다. ‘이루다 성노예 만드는 방법’과 같은 게시물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면서 논란이 됐다.

신한라이프 광고 모델로 활약한 ‘로지’ 등 돋보이는 성과를 내는 가상 인간이 잇따라 등장하며 가상 인간의 존재감이 빠른 속도로 커진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5년이 되면 가상 인간 인플루언서 시장 규모가 14조원을 기록하며 실제 인간 인플루언서(13조원)를 추월할 전망이다.

기대하는 대로 시장이 순탄하게 성장하려면 윤리에 대한 논의를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AI 윤리는 이루다 사태 직후 반짝 관심을 모았지만 오래가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가상 인간을 두고 벌써부터 ‘가슴이 더 컸으면 좋겠다’는 등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반응이 적지 않게 나온다. 삼성전자가 만든 가상 비서 ‘샘’은 일부 소비자가 특정 신체 부위를 강조해 변형한 그림을 인터넷에 올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AI는 사람이 아닌데 왜 인권을 걱정해야 하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AI를 성적 대상 혹은 조롱이나 차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과연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을까. 사람과 거의 차이가 없는 가상 인간과 교류할 때 형성된 습관이 진짜 사람과 교류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로지가 제2의 이루다로 끝나지 않으려면 윤리적인 문제를 방지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김기진 기자 kj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31호 (2021.10.27~2021.11.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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