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프러포즈 고민?..내 인생 최고의 이벤트

한재동 2021. 10. 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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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한재동의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50)

마케팅 직무로 10년을 넘게 월급쟁이 생활을 하다 보니 정말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했다. 대부분 고객을 대상으로 진행한 이벤트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벤트는 받는 고객이야 즐겁지만 준비하는 처지에서는 피땀 눈물의 산물이다. 그간 진행한 수많은 이벤트 중에 최고의 것을 꼽아본다면 회사에는 미안하지만 사실 월급 받으며 진행한 이벤트는 아니었다. 바로 프러포즈였다.

요즘의 프러포즈는 사실 서프라이즈보다는 상견례와 결혼식 사이의 의례를 거쳐 가야 하는 의전에 가깝다. 그 누구도 매뉴얼을 만들지 않았지만, 서로의 눈치를 보며 남부끄럽지 않게 한번은 해야 하는 그런 것. 나는 그게 싫었다. 예비 신부의 눈에서 놀람과 감동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그런 것이 되고 싶었다.

업으로 수많은 이벤트를 해봤지만 프러포즈 기획은 어려웠다. [사진 Unsplash]


출장 때문에 들른 일본의 카페에서 방명록을 계속 보관한다길래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결혼하자고 미리 방명록에 적어두고, 세월이 흐른 뒤 프러포즈할 때 선물과 함께 이곳에서 그 페이지를 보여주면 멋질 것 같았다. 사람들 이목을 끌 정도로 유난스럽지 않으면서도 임팩트가 강할 것 같았다. 어차피 일본 사람들이나 오는 카페의 방명록이니 ‘사랑한다, 결혼하자!’라고 큼지막하게 쓰고 나왔다.

프러포즈에 빠지면 안 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반지가 아닐까 싶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 모든 프러포즈 장면에서 신부에게 반지를 끼워준다. 가히 프러포즈의 필수요소라 할 수 있지만, 바로 이 부분이 가장 준비하기 어려웠다. 서로가 ‘이제 슬슬 프러포즈할 때가 되었는데’라고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면 직접 물어보면 될 텐데, 서프라이즈 이벤트로 하다 보니 아내의 반지 사이즈를 알 수가 없었다.

반지는 각인이나 별도의 장식을 하지 않으면 사이즈 교환이 가능하다. 그러나 프러포즈를 멋지게 하고 반지를 끼워주려는데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면 매우 민망한 상황이 될 것이다. 내 인생 최고의 이벤트를 만들고 싶은데 그런 상황을 만들 수는 없었다. 아내의 반지 사이즈를 알아내기 위해 넌지시 돌려서 질문을 해보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아내가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한 프러포즈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사진 Unsplash]


하지만 전화위복이라 했던가, 반지 사이즈를 몰랐던 것이 오히려 더 좋은 아이디어를 불러왔다. 반지를 손가락 사이즈에 맞추면 되는 것 아닌가. 그 당시 유니세프에서는 후원자를 대상으로 약속의 반지라는 굿즈를 주었는데, 옷핀을 콘셉트로 한 반지였다. 옷핀이 손가락을 감싸는 형태로, 손가락 굵기에 따라 휘었다 피면서 사이즈를 변경할 수 있었다.

나와 아내의 명의로 두 명분의 후원을 시작했고, 그 반지들로 프러포즈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참 좋은 아이디어였다. 어려운 사람도 돕고, 사랑도 열매를 맺고, 나의 인생 이벤트도 민망한 상황 없이 성공했다. 프러포즈 반지를 구하려는 사심이 있었지만, 그래도 결과는 모두가 좋은 것 아닌가?

후원을 기념하는 굿즈이다 보니, 내구성은 좀 약했다. 결혼반지처럼 매일 끼고 다니니 부식이 되었다. 내가 손에 땀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좀 아쉬운 부분이다. 처음에는 종로를 돌아다니며 백금 도금을 해보기도 했지만, 금방 다시 손상되었다. 결국 내구성이 강한 금반지를 다시 맞추고 저 반지는 기념으로 간직하기로 했다. 이것 또한 우리만의 재미있는 추억거리가 되었다.

디자인도 이쁘고 의미도 있는 약속의 반지. [사진 유니세프]


사실 방명록에 적어둔 한 줄 고백과 반지만으로 프러포즈하기에는 옹색한 것 같아 하나 더 준비하기로 했다. 이벤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아내가 감동할만한 정성 어린 선물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손편지를 쓸까 했는데, 일생에 한 번인데 그것으로는 부족해 보였다. 아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이 생각나 그녀를 위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프러포즈 Book’을 만들기로 했다. 컴퓨터로 쓰는 게 아니라 두툼한 스케치 노트를 한 권 구해서 손으로 한 글자씩 썼다.

사실 그렇게 큰 노력이 들어갈 줄은 몰랐는데, 일이 커지다 보니 캘리그라피까지 배우게 되었고, 100개의 이야기를 담은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하게 되었다. 구색을 갖추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나중에는 그게 프러포즈의 메인 콘텐트였다. 완성하고 보니 무슨 조선 시대에 손으로 쓴 서책 같았지만, 나중에 아내가 말하길 책을 만들어 준 것이 가장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프러포즈에 고민하는 결혼 후배들이여, 포인트는 역시 ‘정성’인가 봅니다.

직장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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