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덕에 '인생 망치는 길' 들어섰습니다, 행복합니다

박효영 2021. 10. 27.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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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콘서트 관람기] 흥분의 도가니.. 방탄소년단에 푹 빠져버린 세 아이 엄마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박효영 기자]

"자, 선생님도 콘서트 같이 가시려면 가사부터 외우세요."

오래전,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가정교사도 하게 됐다. 어머님께서는 내 저녁식사를 챙겨주기 시작하시더니 급기야는 가족행사나 가족여행에 나를 데리고 다니셨고, 음악회에도 초대해주셨다. 덕분에 조수미 공연도 보고 god나 클론 콘서트에도 가봤다.

처음으로 콘서트 표를 끊고 기쁨을 감출 수 없었던 어머님께서는 우리에게 미션을 주기도 하셨다. 열심히 가사를 외워서 공연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라는 내용이었다. 친절하게 가사까지 프린트 해두셨던 기억이 난다.

딱히 좋아하는 가수도 없었지만 싫어하는 가수도 없었기 때문에 어른 말씀을 잘 듣는 나는 최선을 다해 즐길 준비를 했다. 콘서트가 끝나고 먹먹해진 귀와 쿵쿵 뛰는 가슴을 가라앉힐 때,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벌겋게 달아오른 서로의 뺨과 허스키하게 쉬어버린 서로의 목소리에 웃음만 나왔다.

음악회처럼 조용히 앉아 감상하고 차분히 박수를 보내고 돌아오는 자리가 아니라, 같이 놀고 즐기러 가는 자리. 돈 냈으니 '노래 불러주면 들어줄게'가 아니라, 돈 냈으니까 이제부터 신나게 한 번 놀아보겠다는 자세. 해외가수들이 우리나라의 떼창을 경험하고는 한국에서의 공연을 잊지 못하고, 다시 한국에서 공연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이야기가 어디 그냥 갑자기 나왔겠는가.

그날 나는 흥이 많은 우리 민족의 떼창 문화를 직접 경험해버렸다. 동시에 내 안에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한민족의 흥을 발견해버렸다. 나 역시 끓는 피를 가진 한국 사람이었던 것이다. 떼창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우리는 함께 놀아보겠다는 DNA를 가지고 즐기고 있었던 것 같다. 콘서트장에서는 앞자리에 앉은 팬클럽에서 전달하는 멘트와 동작들을 잘 기억해 두고 따라했다. 반주가 나오면 멤버들 이름도 순서대로 덩달아 크게 외쳤다.

그 순간 관객은 사라지고 무대 아래에서도 무대 위의 가수를 위한 공연을 펼치는 기분이 들었다. '자, 어떤가요? 당신의 팬들이 이 정도랍니다.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하는 팬들의 마음이 이심전심되어 누구하나 빠지지 않고 야광봉을 높이 흔들며 신나게 놀았다.

당시 IMF로 형편이 어려워진 나를 막내 동생처럼 살뜰히 챙겨주셨던 어머님이 고맙고 그립다. 스무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아이와 카톡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이유는 아이의 독보적인 사랑스러움 때문도 있지만 어쩌면 어머님의 안부가 궁금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인생 망치는 앱을 깔다
 

코로나 이후로 국뽕에 차오르는 유튜브 영상을 챙겨보는 취미가 생겼다. 헬조선은 사라지고 지금 이 시대에 이 나라에서 산다는 자부심으로 어깨뽕이 차오르게 만들지만 뉴스에는 잘 나오지 않는 신비한 영상들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국격을 높이며 UN에서 흥으로 가득한 무대를 꾸민 방탄소년단 영상을 연달아 보게 되었다. '이 정도면 이제 김구 선생님도 들으셨겠다'는 댓글 모음 영상에 키득키득 웃어가면서 나는 점점 방탄소년단에 빠져들고 있었다.

알고리즘 덕으로 유튜브는 온통 방탄소년단 관련 소식으로 도배가 되었다. 방탄소년단이 UN에서 입은 슈트가 친환경 업사이클링 의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길문고와 청소년자치배움터에서 생태독서지도를 하는 나는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다. 아이들과 패스트 패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이런 기특하고 반가운 소식을 우리 친구들에게도 어서 널리널리 알리고 싶어졌다.
 
▲ 'TMA' 방탄소년단, 희망 한 가득 방탄소년단이 2일 오후 비대면으로 열린 <2021 더팩트 뮤직 어워즈(TMA)>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 더팩트 뮤직 어워즈
딱 거기서 멈추고 수업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꼬리에 꼬리를 물로 올라오는 소식들에 매료되어 유튜브에만 들어가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마침 방탄을 연모하는 선배 아미로부터 <인더숲2>라는 방탄소년단의 예능프로그램 날짜와 시간을 전달받았다. 그러면서 '생방송을 못 보면 위버스라는 곳에 가면 된다고 했는데, 거기는 인생 망치는 데'라고 덧붙여 말했다. 아침에 들어가면 밤에나 정신이 든다고. 그런데도 잠도 못자고 계속 보게 된다고.

위버스는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하이브의 자회사가 운영하는 팬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지금 나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만으로도 벅찬데 위버스라는 곳은 절대로 발을 디디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위버스를 피해 V라이브를 깔았다. V라이브는 모바일로 연예인들의 실시간 방송을 볼 수 있는 플랫폼이다.

이게 무슨 전개인지 모르겠는데, 유튜브에 자꾸 V라이브가 언급되니까 사람이 어떻게 참고만 살 수가 있겠나? 위버스는 참아볼테니 V라이브는 괜찮겠지 싶었다. 사실 이것도 며칠간 참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그렇게 설치를 하고 잠깐 둘러보는데 알림이 뜬다. 눌러보니 콘서트를 앞둔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실시간 영상이었다.

'이 화면을 멤버들이 지금 찍고 있는 거라고? 세상에 이런 일이! 다시 생각해봐도 흥분되고 믿기지가 않네. 아니 내가 V라이브 설치하기를 기다렸단 듯이 어떻게 이렇게 시작할 수가 있는 겁니까? 이것은 운명인가요? 아아 이제 더는 거부하지 않으렵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착각은 자유이므로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를)

나는 그렇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실시간 영상을 한 손에 붙든 채로 쌀을 떠 와서 조용히 씻고 얌전히 밥통에 넣고 취사 버튼을 살짝 눌렀다. 저녁밥은 괜찮으니까 멤버들 TMI도 더 듣고 싶고 게임이라도 한 판 하고 그러기를 바랐지만, 최애 멤버가 앞으로 나와서 안녕을 고하니 받아들일 수밖에.

결론은 위버스를 깔았다. 무엇보다 온라인 콘서트 티켓을 구입하기 위해 위버스도, 위버스샵도 설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찍이 어머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미리 가사를 외우면서 콘서트를 즐길 준비를 하는 수밖에. 다른 일은 도무지 할 수가 없었다. 이제야 입덕을 마친 아미는 공부할 것이 너무나도 많아서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다.

첫 가족 콘서트 현장

지난 24일, 방탄소년단의 온라인 콘서트 'BTS PERMISSION TO DANCE ON STAGE' 당일은 아침부터 심장이 조금 빨리 뛰었다. 세 아이들에게는 평소보다 너그러울 수 있었다. 아이들도 기대감으로 설레고 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콘서트 현장에서는 관객도 공연을 하기 때문에 마음이 분주했다. 관중석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마음만은 충분히 흥분되었다. 텅 빈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리는 콘서트라도 전국 각지에서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함께한다는 사실이 너무 감격스러웠다.

동시에 공연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생각도 하기 싫지만은 어떤 계획하지 않은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어쩌나 싶어서 나는 때때로 간절히 두 손을 모았다. 저녁 준비까지 마치고 온전히 공연을 즐기고 싶어서 마음만 분주했다. 암만 바빠도 다들 그러하듯이 잠깐 스마트폰을 만질 짬은 있었는데, 그만 뜻밖의 소식에 주저앉고 말았다.
  
 가슴 철렁한 부상 소식
ⓒ 박효영
 
멤버인 뷔가 부상을 당해, 안무 없이 공연을 한다는 소식이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것이다. 어서 상태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유튜브에는 리허설하는 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는데,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공연 한 시간 전에 오픈된 온라인 콘서트장에 입장했더니 유리컵에 물을 따르는 속도로 댓글이 차올랐다. 5학년 둘째는 그 댓글을 읽는 재미에 빠졌고 1학년 막내는 그동안 익혀둔 노래가 뮤직비디오로 나오면 따라 부르고 있었다. 케이팝을 두루 좋아하는 중1 큰딸도 티비에 집중하고 있었다.

"엄마, 무슨 노래하는지 누가 물어보니까 제이홉이 무슨 노래 듣고 싶냐고 반대로 물어보고 있어."

댓글창에 멤버들이 직접 글을 남기거나 재밌는 댓글이 있으면 둘째가 집안 방송을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드디어 본 공연이 시작됐다. 거친 안무로 가득한 오프닝이었다. 6명의 멤버로 무대는 채워지고 뷔는 의자에 앉아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함께 리듬을 타며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에 움직이지 말라고, 제발 무리하지 말라고 중얼거렸다.

"엄마, 우리 태형이(뷔의 본명) 춤추고 싶냬."
"댓글들 재밌게도 단다. 엄마만 심각한가봐."
"엄마, 이거 눌러도 되는거야? 1억 가즈아!"

댓글창 한 쪽에 뜨는 아미밤(방탄소년단 공식 응원봉) 마크를 쉬지 않고 누르는 사이, 클릭 수 1억은 가볍게 넘어가고 공연은 무사히 끝나가고 있었다. 앵콜 대신 BTS를 외치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화면에는 아미밤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다만 내 손에 쥐어줄 아미밤이 없어서 고양이 안마봉을 흔들며 BTS를 외쳤다. 물욕이 없는 사람은 그래도 충분히 황홀했으며 아름다운 밤이었다. 
   
▲ 아미밤 대신 흔들었던 안마봉 그래도 멋있잖아. 작아지지마. 너도 보라해!
ⓒ 박효영
위버스에 멤버인 뷔의 글이 올라왔다. "더 멋있게 돌아올게요. 비싼 티켓 사셨을 텐데 충분하게 못보여드려서 죄송해요." 이번에는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먼저 반응했다. 충분히 행복했다는 내용이 담긴 장문의 댓글을 쏟아내고 말았다.

'덕질은 쌓여가고 그러다 인생 망한다'는 말에 반기를 들고 싶었고 들어야만 했다. 시간을 소비하지만 말고 무언가를 생산하고 싶었고 생산해야만 했다. 그래야 떳떳하고 즐겁게 덕질을 이어갈 수 있을 테니까. 사실 나에게 위버스를 알려준 선배 아미는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덕질을 즐기면서 주어진 인생을 값지게 살며 무언가를 계속해서 생산해내는 훌륭한 사람이다.

두 딸의 사춘기와 함께 찾아온 나의 두 번째 사춘기를 제대로 즐겨보려고 한다. 그렇게 나의 삶이 계속되기를.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첫 곡은 빌보드 최초 한국어 노래로 1위를 한 <Life goes on>으로 해야겠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의 삶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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