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10년째 되는 날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 된 이야기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71)
우리 옛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화소 중에 ‘십년공부’라는 게 있다. 어떤 공부든,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십 년을 기약하고 시작한다. 그리고 그걸 잘 채워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계획한 대로 다 되기만 하면 이야기 감이 되지 못하는지라, 십 년에서 일 년 혹은 며칠이 부족하여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 이야기들이 수두룩하다. 오늘은 그런 이야기 중 두 편을 골라 보았다.
먼저, 십 년 동안 염불 수행을 했던 사람의 이야기이다.
어떤 사람이 어느 날 중에게 십 년 동안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열심히 하면 승천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 날 이후 이 사람은 정말 십 년 동안 염불을 열심히 하였고, 십 년째 되는 날 중과 약속했던 장소로 찾아갔다. 중은 반갑게 맞이하면서, 산속의 작은 연못으로 이 사람을 데리고 가더니 이 물에 빠져야 제대로 승천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사람이 거기 빠지면 그냥 곧장 죽어버릴 것만 같아서 주저하였더니 중은 그러면 안 된다며 자꾸 빠져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게 이 사람이랑 중이 빠져라, 못 한다, 실랑이를 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총각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총각은 십 년 염불을 하고 이 못에 빠지면 승천할 수 있다는 말을 듣더니, 그럼 자기가 한번 해보겠다고 하더니 대뜸 “천타불 만타불, 천타불 만타불” 하고는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 총각은 하늘로 쑥 올라갔고, 이 사람은 십 년 공부 나무아미타불, 헛일을 한 것이 되었다. ([한국구비문학대계] 8-6, 200-202면, 북상면 설화41, 십 년 공부 나무아미타불)
기가 막힌 일이다. 이 사람이 중에게서 승천할 수 있는 방법을 듣게 된 일은 거의 우연이다. 어쩌다 행운을 거머쥐게 된 것인데, 십 년을 한결같이 득도하기 위해 애썼으나 마지막 한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였다. 나라도 갑자기 연못에 빠져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땐 주저할 수밖에 없겠다 싶은데, 뜬금없이 지나가던 총각이 염불도 대충하는 듯하더니 물에 빠져들었고, 승천한 것은 그 총각이었다. 총각이 대뜸 내지른 “천타불 만타불”은 십 년 동안 외워야 했던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한 방에 끝내 버리는 것이었다. 총각의 패기와 용기가 흐릿하던 내 정신에 번갯불을 번쩍 때리는 느낌이다.
그러나 곧 다시 생각하니 그 패기는 간절함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싶다. 영혼 없이 입으로만 외우는 염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진정으로 승천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면 마지막 관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주저 없이 뛰어들 수 있지 않았을까.
노파심에 굳이 또 한 마디 덧붙이면, 승천하는 일이 어찌 간절한 열망이 될 수 있겠는가, 그게 현실적으로 목표할 만한 일이냐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이 분명 있다. 이야기 속의 어떤 형은 현실의 극단적 상징이다. 밑도 끝도 없이 연못에 뛰어들듯 달려들어야 하는 일, 승천하는 일만큼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한, 이루기 어렵다고 여겨지던 꿈, 목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여태까지 내가 무엇이든 그렇게까지 강렬하게 열망했던 일이 있기나 했던가 싶어지는 것이다.
지나가던 총각은 이야기 속에서 분명하게 언급되진 않았지만 지금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전혀 아무 준비 되어 있지 않았던 상태에서 그 기회를 얻게 된 것인데, 그걸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해냈다는 것은 그만큼 강한 열망이 있었고, 어떤 면에서는 언제든 그 일에 도전할 만한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음을 뜻하기도 하겠다.
이번엔 관상을 잘 보던 김정승의 이야기이다.
김정승이 사윗감을 구하러 다니다가 어느 시골 서당에서 눈에 띄는 남자아이가 있어 데리고 왔다. 이 아이는 정승의 막내딸과 혼인을 하고 정승 집에서 공부하게 되었는데, 구 년을 지내고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자 그동안 다녀오지 못한 고향 생각이 간절해졌다. 정승은 일 년만 더 하여 십 년 공부를 채우라고 하였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사위는 고향으로 가버렸다. 고향에서 지내던 사위가 친구의 문상을 갔는데, 그 친구 부인이 사위에게 반하여 못 가게 잡았다. 행여나 친구가 죽자마자 친구 부인을 빼앗았다는 소문이라도 날까 두려웠던 사위가 그걸 뿌리치고 가자, 친구 부인은 돌아서는 남자 뒤에서 “나 보쇼!” 하고 소리치더니 칼을 빼어 들고 스스로 몸을 찔러 죽었다. 사위가 서울에 돌아와 김정승에게 인사를 드리니 김정승은 사위의 얼굴을 보고, “네가 고향에 가더니 죄를 짓고 왔구나” 하였다. 사위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으니까 김정승은 사위에게 이제 글공부는 그만하고 사주를 배워서 그것으로 밥벌이나 하며 살라고 하였다. ([한국구비문학대계] 5-6, 323-326면, 태인면 설화58, 관상을 잘 본 김정승)
대계 채록 제목은 ‘관상을 잘 본 김정승’이지만 김정승 안목도 2%는 부족하였던가 보다. 가능성 있는 재목이라고 보아 데리고 와서 막내딸을 혼인시키고 이 사위 잘 키워 보겠다고 십 년 공부를 시켰지만 사위는 구년 만에 고향으로 가버렸다. 그러고는 자신에게 의지하고자 했던 사람을 매몰차게 뿌리치는 바람에 아까운 목숨을 버리게 하였다. 구연자는 끝에서 “그 여자가 죽으면서 측심이 딱 붙어서 그 사람은 생전을 그르쳐 부러” 하고 전했다. 사위는 나중에 사주쟁이로 이름을 떨칠 만큼 사주를 잘 보긴 하였지만 더는 크게 되지는 못하였고, 재산도 잘 모이지 않아 그저 그렇게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
될성부른 재목도 십년공부를 채워야 했고, 공부를 제대로 한다는 것은 현실에서 비로소 써먹을 만한 지식과 지혜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 사위가 십 년을 채우지 못한 데에서 크게 될 사람의 가능성을 스스로 까먹었고, 그 부족한 자질은 위급한 상황에서 타인에게 필요한 지혜를 슬기롭게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해를 끼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십 년 염불을 꼬박하고도 연못에 빠져야 하는 최종 관문이 또 요구되었듯이, 단지 십 년을 채운다는 게 중요하지 않았고, 그 십 년도 채우지 못하는 자질은 타인의 간절함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무심함으로 드러났다. 김정승의 사위는 큰 인물이 되지 못하고 그저 잔기술로 밥벌이나 근근이 하며 살게 되었는데, 잔기술로 밥벌이라도 하고 살면 그나마 다행이긴 하겠다. 그것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구년 공부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닐 수 있다. 다만, 포부를 크게 가졌다면 반드시 찾아올 깔딱고개를 현명하게 넘어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넘어서는 포부를 요구한다는 것은, 인생살이에 그런 고비 한두 번쯤 꼭 찾아오게 되어 있다는 것을 또한 의미하기도 하는 것 같다.
건국대학교 상허교양대학 초빙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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