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들이 차지한 키부츠..쇠락한 '약속의 땅'

신창호 2021. 10. 27.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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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부츠는 이스라엘의 집단농장이다. 강우량이 적어 제대로 물공급을 받을 수 없는 이스라엘 사막지대의 척박한 땅을 공동노동 공동소유 공동육아 공동식사 직접민주주의 시스템으로 개척해 엄청난 생산성을 낳았다.

세계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유태인들이 2차대전 직후 시리아 옆 팔레스타인지역에 몰려들던 이스라엘 건국 당시 키부츠 운동은 ‘신화’가 됐다.

이들에게 일자리뿐 아니라 의식주를 제공하는 동시에 농업을 중흥해 중동에선 보기 드문 곡창지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키부츠운동은 2000년대로 접어들며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힘든 노동과 집단생활에 염증을 느낀 젋은 세대가 떠나면서, 키부츠의 농업은 3D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태국 등 외국인 노동자들에 의해 겨우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샤이 멜라무드(86)씨는 이스라엘 북부 레바논 국경지대에 위치한 한 키부츠에 여전히 거주하는 키부츠 1세대다. 13살이던 1940년대 가족과 함께 키부츠로 이주해 지금의 농장을 건설한 주역이다.

“아직도 저 넘어 언덕으로 아버지와 말에 함께 타고 달리던 어릴적 기억이 납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25일(현지시간) 멜라무드가 거주하는 크파르 길라디 키부츠 등 이스라엘 외곽지역에 대한 심층 르포기사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멜라무드씨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건국이후 이곳에서 벌어진 여러 일들을 떠올리면서 “건국 초기 이스라엘은 지금의 이스라엘과 정치적 이상도, 인구의 구성도 너무도 달랐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인과 아랍인들이 레바논 요르단 등지로 밀려나갔지만, 이스라엘 정치인들은 다민족이 공존하는 국가 건설을 목표로 했다는 것이다.

현재도 이스라엘은 다민족 국가로 아랍인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하는 아랍계 정당이 공존하는 나라다. 하지만 이 아랍계 정당은 유태인 주도의 이스라엘 정국에서 주변인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외부에는 키부츠가 마치 유태인 특유의 배타성이 극대화된 유태인들만의 공동체로 인식돼 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습니다.”

멜라무드씨는 세계 도처에서 갖 중동으로 건너온 유태인들은 출신배경에 따라 생활습관 사용언어도 달랐지만, 키부츠를 통해 하나의 국가를 만들겠다는 생명력으로 넘쳐났다고 전했다. 키부츠 바깥쪽에 거주하는 아랍인들에게도 비교적 관대했다고 한다.

유럽 각국에 흩어져 살며 차별에 시달리던 유태인들은 유대교를 믿지만 종교적 믿음의 정도는 다양했다. 선민사상에 사로잡힌 정통파 강경 유대교도들보다는 타민족 타종교에 비교적 관대한 세속주의 유태인이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스라엘의 인구구성은 2000년대 이전과 엄청나게 달라졌다. 900만 인구 중에 정통파 유대교도가 무려 100만명으로 13%를 차지한다. 건국 당시 정통파 유대교도는 전체 인구의 1%도 되지 않았다.

인구 구성이 달라지면서 이스라엘 정치 주도세력도 달라졌다. 정통파 유대교도를 대변하는 리쿠드당이 1990년대말부터 집권해 얼마전 치러진 총선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20년 이상 이스라엘을 장악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다민족 국가를 지지하며 수많은 유명 총리를 배출했던 사회당은 시몬 페레스 전 총리의 부패 의혹이후 지리멸렬하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강제 점령이후 강력한 팔레스타인인 분리정책을 앞세우고 있다.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로 이어지는 유태인 거주지역에는 어김없이 국경선을 연상케하는 철조망과 검문소가 배치돼 있다.

이스라엘을 농업강국으로 만들었던 키부츠의 현재 주수입원은 농업이 아니라 관광과 광석 개발이다. 노동력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제공한다. 키부츠 집단거주지들은 부티크호텔로 바뀐지 오래다.

뉴욕타임스는 “공교롭게도 대아랍 강경정책이 대세가 된 2000년대 키부츠는 몰락했다”면서 “베냐민 네타냐후 전 총리로 대표되는 정통파 유태주의가 횡행하면서 이스라엘은 다양성의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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