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죽음을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

2021. 10. 27.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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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승(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우리나라 사람들, 죽겠다는 말을 유난히 많이 한다. 배고파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 부러워 죽겠다. 창피해 죽겠다. 정말 죽을 지경에 놓인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는 엄살이다. 죽겠다는 엄살은 유래가 깊다. 19세기 조선 사람 윤기에 따르면 당시 사람들이 가장 자주 쓰는 말은 ‘가난해 죽겠다’와 ‘아파 죽겠다’였다고 한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건강한 사람이 항상 아프다 말하고 부유한 사람이 항상 가난하다 말하니, 세상에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고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아파서 죽겠다고 하고 가난해서 죽겠다고 하는데, 아파 죽겠다는 사람은 날아가듯 먼 길을 걸어가고, 가난해 죽겠다는 사람은 음식과 옷이 몹시 사치스럽다. 겉과 속이 완전히 달라도 듣는 사람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니, 죽겠다는 한마디 말이 입에서 떠나지 않는다.”

말은 죽겠다지만 사실 죽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윤기는 이런 경험도 소개했다. 흉년이 들어 끼니를 잇기 어려우니 곧 죽겠다는 사람이 있다. 그를 넌지시 떠본다. “좋은 혼처가 생겼는데 자네가 가난하다니 어쩔 수 없군.” 그러면 가난해 죽겠다던 사람이 말을 바꾼다. “내가 가난하기는 해도 가족을 굶길 정도는 아니라네.” 나이가 많고 몸이 아파 죽을 것 같다는 사람이 있다. 그에게 말해본다. “좋은 벼슬자리가 비었는데 자네가 아프다니 어쩔 수 없군.” 그러면 아파 죽겠다던 사람이 말을 뒤집는다. “내가 겉으로는 허약해 보여도 속은 튼튼하다네.” 말하는 사람은 생각 없이 죽음을 내뱉고, 듣는 사람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러니 절박한 사람이 도움을 청해도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래 우리말은 과장이 심하다.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다, 배가 남산만 하다, 얼굴이 반쪽이다, 개미허리다, 큰 것은 더욱 크게 확대하고, 작은 것은 더욱 작게 축소한다. 멀쩡히 있는 걸 아예 없다고 하는 것도 과장이다. ‘한숨도 못 잤다’ 해도 잠시 눈은 붙였고, ‘하루 종일 굶었다’ 해도 먹은 게 아예 없지는 않다. ‘준비 하나도 못 했다’는 준비가 조금 부족하다, ‘한 글자도 모르겠다’는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처럼 우리말에는 수많은 과장 표현이 있다. 이 중 정도가 가장 심하고 자주 쓰는 표현이 다름 아닌 ‘죽겠다’이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은 없다. 그러므로 죽겠다는 말은 최상급 비유다. ‘죽인다’는 말도 자주 쓴다. ‘죽겠다’는 엄살로 치부하고 넘어간다지만 ‘죽인다’는 다르다. 듣는 사람으로서는 심각한 위협이다. 하지만 법원은 죽인다는 말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모양이다. 여간해서는 협박으로 인정하지 않고, 인정해도 벌금이 고작이다. 흉기를 휘두르며 죽인다고 소리쳐도 살인의 의도가 없다고 보기도 한다. 법원은 죽인다는 말을 좀처럼 믿어주지 않는다. 법원을 탓할 일은 아니다. 법원은 우리의 언어 습관을 따를 뿐이다.

절박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생각하면 ‘죽겠다’는 표현은 함부로 쓸 수 없다. 심각한 위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니 ‘죽인다’는 말도 가볍게 넘길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말을 자제하라 한들 오랜 관습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 없다. 오늘도 죽음의 과잉은 계속된다. ‘결사반대’라지만 아무도 죽지 않고, ‘생즉사 사즉생’이라는 선언도 이제는 진부하다. 죽을 각오라고는 찾을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인격살인’이라는 표현도 유행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명예훼손에 불과하다. 이렇게 과장하지 않으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이리라. 하지만 터무니없는 과장은 불신을 초래할 뿐이다. 죽음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사람은 믿을 수 없다. 과장된 표현은 이목을 끌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투박하지만 진실한 표현이다.

장유승(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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