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우주에서 인간 세상을 보면

2021. 10. 27.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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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며칠 전 우리 기술로 만든 로켓 누리호가 인공위성을 지구 바깥으로 보냈다. 안타깝게도 마지막 순간에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는 데는 실패했으나 발사 장면을 텔레비전 중계로 지켜보면서 감격과 자부를 느꼈다. 간신히 첫발을 뗀 셈이지만 우주를 우리 힘으로 탐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눈을 갖추면 인간은 변화한다.

“지구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우주로부터의 귀환’에서 일본 작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실제로 우주를 다녀온 비행사 100여명을 인터뷰한 후 대다수 우주 비행사의 목소리를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엄밀한 과학적 훈련을 받은 이들이 발견한 것은 놀랍게도 ‘아름다움’이었다. 심연의 어둠 속에서 빛나는 ‘창백한 푸른 점’을 보면서 이들은 지구의 숨 막힐 듯한 아름다움과 생명의 소중함을 느꼈다. 최초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 역시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았을 때의 첫 느낌은 “지구는 푸르다”라고 전했다.

다치바나에 따르면 우주에서 지구를 본 이들은 대부분 ‘과학의 위엄’을 확인하기보다 ‘영적 체험’을 한다. 이들은 “더 넓은 시야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새로운 비전을 획득했다”고 공통으로 고백했다. 인간과 자연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말이다. 아울러 이들은 생명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삭막한 우주 공간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고 ‘생명의 오아시스’인 지구에 대해 강렬한 유대감을 느낀다. “우주의 다른 곳에는 어디에도 생명이 없다. 자신의 생명과 지구의 생명이 가느다란 한 가닥 실로 연결되어 있고, 그것은 언제 끊어져 버릴지 모른다.” 우주를 정복했다는 득의양양한 오만보다는 숙연한 겸손함을 배우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지구를 더럽히는 온갖 인간 행위에 대한 분노를 느낀다. 인종과 종교와 이익을 앞세워 서로를 차별하고 착취하며 전쟁을 일으켜서 죽고 죽이는 인간의 잔혹함에 반대하고, 환경을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함으로써 생명의 대규모 멸종과 인류의 멸망을 가져오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경고한다. “나라가 다르고, 종족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도 모두 같은 지구인이다.” 이들은 우주 속에서 인간의 동등성을 인식한 후 “인간 정신을 더 높은 차원으로 인도”해야 할 소명을 깨닫는다. ‘물질적 인간’에서 ‘정신적 인간’으로 진화한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관조하는 것을 테오레인(theorein)이라고 했다. 영어 시어리(theory·이론)의 어원이 된 말이다. 테오(theo)는 신을 뜻하는 말이므로, 테오레인은 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행위다. 지상의 존재인 인간의 눈에 보이는 풍경과 하늘의 존재인 신의 눈으로 보는 풍경은 완전히 다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서 관조하기에 신은 세상을 제대로, 온전히 볼 수 있다.

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을 지혜라고 한다. 관조는 인간의 눈을 지혜의 눈, 즉 혜안으로 바꾸어 준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조, 즉 진리의 눈으로 자신과 세계를 통찰하는 것을 최고의 지혜로 여기면서 사소한 인간적 시비에 휘말리지 않고 관조의 지혜를 좇아 행동하는 삶이야말로 지극한 행복을 가져온다고 이야기했다. 우주 비행사들은 지구의 삶을 우주에서 내려다봄으로써 어쩌면 잠시나마 신의 눈을 체험한 셈이나 다름없다.

지난 300년 동안 인류는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아왔다. 결과는 기후 재앙이고, 지속 불가능한 세상이다. 달에 갔던 우주인 에드거 미첼은 말했다. “정치인 목덜미를 잡아 38만 킬로미터 밖으로 끌어내어 ‘이걸 좀 봐라, 이 녀석아’ 하고 말하고 싶다.” 스스로 혜안을 갖추고 인간이 멀리에서 볼 수 있게 이끄는 것이 좋은 정치다. 누리호 이후, 우주 탐험 과정에서 한국인 모두가 세상을 관조할 줄 아는 신적 지혜에 이르렀으면 좋겠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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