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상의 코멘터리] 노태우..전환시대 징검다리
민주화와 탈냉전..전환기 맞아
물태우 리더십으로 소명 다해
1. 노태우 전대통령이 26일 별세했습니다.
전립선암으로 시작해 소뇌위축증이란 희귀병으로 20년간 투병했습니다. ‘전 대통령’이란 호칭, ‘별세’라는 표현조차 시비가 붙을 정도로 평가가 엇갈립니다. 공과를 떠나 그에겐 시대적 소명이 있었던 듯합니다.
2. 노태우는..본인 의사와 무관하게..전환시대의 교차점에서 대한민국을 이끌었습니다.
교차점이란..국내적으로 군부독재에서 민주주의로 넘어가는 격변기, 국제적으로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는 탈냉전의 시기가 겹쳤다는 의미입니다. 노태우는 이런 국내외적 전환시대에 징검다리 역할을 맡았습니다.
3. 국내 상황을 보자면..노태우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가장 믿는 절친이었기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노태우가 5공 탄생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1979년 12ㆍ12 당시 자신이 지휘하던 9사단 병력을 서울로 이동시킴으로써..실질적인 무력으로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지켜낸 공입니다. 덕분에 5공 출범후 체육부 내무부 장관, 집권 민정당 대표와 대통령후보까지..수직상승합니다.
4. 물론 전두환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87년 민주화운동의 저항에 부딪쳐 ‘체육관선거’가 ‘직선제’로 바뀌었습니다. 노태우는 대통령이 되지만..1988년 총선결과 여소야대 정국에서 주도권을 잃습니다.
제1야당(평민당) 김대중에게 쩔쩔 맵니다. DJ에게 합당을 제안하지만 거절당합니다. 참지못해 DJ만 빼고‘3당 통합(민자당)’하는 극약을 마십니다. 그 이후엔 사실상 민자당 대권후보인 김영삼에게 휘둘립니다.
5. 군부독재정권에서 민주주의로 전환은 쉽지 않습니다. 미얀마 상황을 보면 정말 끔찍합니다.
노태우는 물태우였기에 이런 어려운 국면에서 완충역할을 해냈습니다. 노태우의 좌우명은 ‘참용기(참고 용서하고 기다리자)’입니다. 5공까지만 해도 절대권력자였던 대통령 자리에 올라서도 인내력을 발휘한다는 건..일종의 용기입니다.
6. 대통령이 된 노태우는..자신의 뿌리를 끊어내는 과정을 참아냈습니다.
5공비리 청산을 위해 전두환을 백담사로 유폐시킵니다. 민족화해위원회라는 조직을 통해 5ㆍ18의 참상이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당시로선 매 순간이 격동이었습니다. 노태우는 물처럼 몸을 낮춰 흘러갔습니다.
7. 국제적 대전환은 노태우에게 숨통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영어를 잘 하는 노태우는 해외순방을 즐겨 ‘북방외교’에 매진했습니다.
당시는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몰락하는 시점이었습니다. 고르바초프 당서기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에 나섰지만 소련은 경제난과 무질서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8. 소련은 돈이 급했습니다. 고르바초프의 탈 공산주의를 환영하던 미국은 한국과의 수교를 적극 중재합니다.
199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노태우는 고르바초프를 만납니다. 수교 대가로 당시 외환보유액의 15%에 해당되는 거금(30억 달러)을 장기차관으로 제공합니다.
9. 소련과의 수교는 중국과의 수교를 앞당깁니다. 중국은 북한과의 혈맹관계를 강조하면서 수교를 늦추었습니다.
북한과의 관계개선도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미국은 주한미군 핵무기를 철수시킵니다. 1991년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화해와 불가침을 선언하는‘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합니다. 남북한은 같이 UN에 가입합니다. 소련이 동시가입을 지지했기에 가능했습니다.
다음해인 1992년 중국과 정식수교합니다.
10. 우여곡절과 시행착오가 많았지만..결과론적으로 노태우가 있었기에 이후 문민정부가 탄생할 수 있었고, 북방외교의 성과로 국제정치경제 흐름에서 뒤쳐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죽음이 사망이든 별세든, 혹은 서거이든 뭐든..그는 전환시대에 맞는 인내력을 갖춘 대통령이었습니다.
〈칼럼니스트〉
2021.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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