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듣고싶은 설교] 그 분은 우리 약함 알고 있기에..

2021. 10.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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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보잘것없다고 여겼을 때 하나님의 강함이 나타나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본래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강함을 드러냈던 사람입니다. 그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고, 바리새파 사람이며, 가말리엘 문하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아 뼛속 깊이 율법적인 생활을 했던 사람입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서, 그 누구도 자신을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여기며 그것들을 자랑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결코 자신의 약함을 드러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이후, 그는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였는지를 알게 되었고, 비로소 자신의 삶에 주님의 놀랍고도 강한 은혜가 나타나게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약한 자인가를 깨달았을 때, 오히려 강하게 역사하시는 주님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의 강함을 어떻게 체험할 수 있을까요?

첫째, 나의 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먼저 주님의 강함을 체험하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내 힘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약함을 인정할 때 주님의 강하심이 나의 삶에 역사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정말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강함 되신 주님의 은혜로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조금만 일이 잘되고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면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하며 자만에 빠지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이 온전히 드러나도록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고난이 없을 때는 내 힘으로 잘 살아가는 것 같아도, 고난을 만나게 되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게 됩니다.

사실 우리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고, 삶이 광야와 같을 때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후에 곧바로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광야를 만나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고난 속에서 살았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광야 같은 생활이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 모두가 광야를 거쳐 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고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늘로부터 하나님께서 양식을 부어주시고, 하나님의 전적인 인도와 보호하심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을 내어놓을 뿐만 아니라 그 연약함을 인정하고 자랑하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신 육체의 가시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가시’는 몸의 질병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때론 사탄이 공격하는 것과 같은 고통스러운 상황의 문제였을 수도 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면서 당하는 핍박과 고통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이 가졌던 이러한 육체의 가시가 무엇인지 또 그가 느꼈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우리는 다 알거나 이해할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것 때문에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을 깨달았고 그때 하나님의 강한 역사를 경험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육체의 가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바울처럼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는 어떤 문제들일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가시’로 인하여 어려움과 위기를 만나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고 있는 아픔과 육신의 질병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어려움은 우리의 약함을 깨닫게 하는 것들입니다. 때론 형편의 어려움이나 정신적인 고통 같은 것들도 우리를 약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럴 때마다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며 주님의 강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울뿐만이 아니라 많은 믿음의 사람들도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강하심을 깨달았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나서 하나님의 은혜로 다듬어지며,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낸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하나님의 섭리와 보호하심 가운데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면서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처절하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로 그를 부르셨고, “나는 입이 둔하여 말할 수 없는 자”라고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는 모세를 들어 쓰셨습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연약함을 내어놓으며 인정하는 모세를 하나님은 강하게 붙잡아주셨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지도자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약할 때 강하게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만을 의지하여 살아가지 말고 주님의 강하심을 믿고 신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율법의 열심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것들도 자신의 생명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에 의한 것이고, 그로 인해 죄사함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이제 내가 살아가는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배를 드리며 하루하루 숨 쉬면서 살아가는 것이고,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나의 연약함을 가지고 주님 앞에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또, 주님의 강함을 체험하려면 연약함을 인정하며 주님 앞에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주님께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 나아가야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강함 되시는 주님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연약하다, 나는 부족하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라는 사실은 인정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열등감에 빠지거나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로 인하여 고통스러웠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주님 앞에 나아갔습니다.“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 고린도후서 12장 8~9절)

여기서 ‘세 번’ 간구했다는 것은 ‘세 번’이라는 숫자적인 의미보다 그만큼 간절하게 주님께 구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번씩이나 간절히 기도하셨고, 바울도 한 번도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간절히 주님께 간구했다고 고백합니다. 9절의 시작이 감동스럽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이 말씀 속에는 엄청난 축복의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우리가 주님께 간구한다면 주님은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간구를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이 들으시지 않거나 혹은 들으심으로만 끝난다면 우리의 기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이 은혜를 깨닫고 사모합시다. 우리의 연약함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간구하면 주님께서는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가 예배드리면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푸실 뿐만 아니라 교회에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성도 각 개인에게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이렇게 성도 모두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연약함을 가지고 나아가면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에도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자신의 몸을 찌르는 육체의 가시와도 같은 연약한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구한다면 강함 되시는 주님께서 문제를 풀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이러한 은혜를 성도 개개인이 모두 경험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예배당에서나 가정에서나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온전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하며 주님 앞으로 나아갈 때 경험하게 됩니다. 세상 그 누구도 우리의 인생을 진정으로 위로해 주지 못합니다. 세상 그 누구도 우리의 삶에 근본적인 힘이 되어 주지 못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만지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우리 주님은 연약함을 가지고 나아가는 자를 절대로 외면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간구에 대하여 모른척하시거나 밀쳐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께 매달릴 수 있다는 사실은 축복입니다. 우리의 약함을 깨닫게 하는 광야가 축복이 됩니다. 비록 육체의 가시가 우리 인생을 고단하게 하고 아프게 하지만 이 가시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기에 그 가시가 축복이 되고 보물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을 때에는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이 우선순위가 되기 어렵습니다. 그럴 때 주님은 늘 둘째, 셋째로 밀려납니다. 우리는 인생의 첫째 될 것들을 찾아다니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세상에 관심을 쏟고 그곳에 마음을 두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광야를 지나고 있는 사람은 그 광야를 통해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기 때문에 하나님 외에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온전히 주님이 나의 인생에 진정한 소망이고 힘이 되었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귀한 보물은 주님이십니다. 성도님들 중에는 걱정과 근심 가운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정말 아무도 모르는, 인생을 찌르는 나만의 육체의 가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연약함의 문제를 주님이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이 그 연약한 그릇에 은혜를 넘치도록 부어주신다는 사실은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가 약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강함 되시는 주님은 우리의 삶을 은혜로 일으키시고 역전시키십니다. 우리의 삶은 능동태가 아니고 수동태입니다.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사신다는 말씀 때문입니다. 내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살아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 앞에 이 모든 문제를 맡기며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여러분의 삶을 능력으로 일으켜 세우시고, 새로운 은혜를 부어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황덕영 목사
새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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