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학계 거목 원우현 고려대 명예교수 "신뢰하락 언론에도 책임추궁은 곤란"

2021. 10. 26. 18:0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짜뉴스 양산 정치권 먼저 반성을"


“한국 언론의 자유가 꾸준히 성장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언론중재법 입법시도로 언론의 자유가 근본적으로 위협 받을수 있다. 그런 법을 만들면 안 된다. 자유 언론은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요체이고 실천 방향이다.”

올해 팔순인 원우현 고려대 명예교수는 실내에서 양복을 입은 채 기자를 맞이했다. 원 교수는 한국언론학회장을 역임한 후, 한국언론법학회를 설립해 초대 회장을 지낸 언론법 분야 최고 권위자이다. 그가 기금을 출연해 제정한 ‘철우언론법상’은 매년 언론의 자유를 신장하는 데 기여한 대법원 판례나 헌법재판소 판결문에 시상하고 있다. 벌써 20년째다. 그는 영어로 교육하는 몽골국제대학 부총장으로 부임해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부와 국제언론연구원을 설립하고 직접 강의까지 맡았다.

논란 중인 ‘언론중재및피해구제에관한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의견을 묻자, 원 교수는 “1974년 언론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시절이 생각이 난다”고 했다. 그는 이른바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시절, 신원을 밝히고 두 차례 광고를 낸 경험이 있다.

“당시 광고사태는 권력이 뒤에서 조종한 것으로 드러나 6개월 만에 끝났습니다. 하지만 언론에 대한 징벌적 내용을 담은 중재법은 언론을 실정법에 구속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는 헌법상 기본권 중의 기본권인 언론의 자유가 위축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민주적 기본질서 문제와 직결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언론의 신뢰도가 OECD 최하위 수준이고 언론의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언론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묻는, 이런 법을 만들어 규제하는 것은 안 된다”면서 “오히려 가짜뉴스 허위조작 보도 같은 것들은 정치권에서 더 많이 퍼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치권이 그런 점에 대한 반성 없이 비판의 화살을 언론에 돌리고 개혁을 내세우는 것은 사회정의의 구현에 반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다음은 원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여당이 ‘언론중재및피해구제에관한법률’(언론중재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과 언론의 자유 제한 논란이 있는데.

“언론과 국민을 대립적 관계로 설정한 법이다. 언론과 수용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었다. 언론이 고의나 중과실로 수용자 주권을 침해하는 예외적인 경우를 일반화하여 징벌적 손해 등 독소 조항을 신설했다. 반 헌법적 시도를 하고 있다. 언론이 권력의 감시기능을 활성화 해야 할 선거계절에 언론중제법 논의 자체가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

-개정안이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고 보나.

“그렇다.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나 가짜뉴스 문제는 기존의 언론중재법, 정보통신망법, 민사 형사법 등으로 거의 해결이 가능하다. 굳이 새 법을 만들어 처벌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 야당과 언론단체가 반대하는데도 밀어붙여 절차적 정당성도 결여하고 있다.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헌재에서 위헌 판정을 받게 될 확률이 높다.”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관련 대책이라도 있는 건가.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제4부’로 기능하고 있다. 미국 의회에선 언론을 규제하는 어떠한 법도 만들지 못하도록 헌법에 규정(수정헌법 1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언론 관련 분쟁은 대부분 언론중재 제도를 통해 해결되고 20~30%가 법에 제소한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고위 공직자나 선출직 공무원, 기업인을 징벌적 손해배상제에서 최종 제외시켰다하더라도 결국 언론의 비판 기능을 침묵시키는 역효과가 날 것이다. 권력자와 재력가들이 개인이나 시민단체 등을 통해 대리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 언론을 3심까지 피의자로 몰아갈 수 있는 것이다. 설령 언론이 마지막에 승소하더라도 ‘비판의 입’을 침묵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진단한다.”

-언론 통제의 수단이라고 말하는 건가.

“그렇다. 이 법안이 그대로 통과하면 사건 등을 파헤쳐 실체적 진실을 보도하는데 법적 장애물이 될 것이다. 허위조작 보도 개념이나 고의 중과실의 범위를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 명확성의 원리에 반한다. 언론이 승소하더라도 쟁송의 고통을 당한 경험 때문에 정부를 비판할 때 위축이 될 수밖에 없다. 집권당이 왜 이 시점에 모두가 하지 말라는 법을 밀어붙이는지 모르겠다. 입법권을 남용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언론학자들도 이번 개정안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언론학자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가만있으면 안 된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 생기면 이성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언론학자들의 이론과 언론현장을 조화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진다. 언론학자들이 그런 측면에서 연구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학문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결과를 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외면하거나 권력에 부응하며 생존본능만을 추구한다면 사회 여론의 질타는 물론 학문자체도 쇠퇴할 것이다.”

-약력을 보니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언론학으로 진로를 변경한 계기가 있는지.

“대학 때 사법시험 공부 중에 주간정론 사장이시던 부친이 ‘이주당’ 창당 관여로 집에 사복 입은 수사관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 이렇게 말했다. ‘법대 학생이 공부하는 모양인데 이일로 장애가 클 수도 있겠는데…. 당시 군사정권이라 이런 일이 흔한 터라 내심 걱정이 됐다. 결국 미국 유학을 떠났고 군(軍) 제대 후 평소 관심이 있던 언론 분야의 석 박사 학위를 받았다.”

-언론학 중에서도 언론법을 많이 연구하셨던데.

“12 12사태 이후 신군부 통치 시절, 고려대 정경대 교수협의회 회장에 뽑혔다. 그런데 이 일이 가져올 고초를 그땐 예상하지 못했다. 이른바 ‘서울의 봄’ 이후 학생 보호 차원에서 동행하다 지명수배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학생시위를 선동하고 부추긴 혐의에 더해 서울역 근처에서 발생한 명지대 출신 전경 사망사건에 연루된 혐의까지 받았다. 수사를 받았고 이런 사건들이 제게 언론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의 의미와 가치를 마음 깊이 새기게 만든 것 같다.”

-사랑이 지배하는 언론법을 주장하고 있다.

“이른바 ‘철우(哲宇) 사상’이다. 철우는 ‘철우방원’(哲宇芳元)에서 첫 두 글자로 ‘철리가 지배하는 우주’를 의미한다. ‘철우언론법상’을 제정해 매년 대법원 판례와 논문 저서에 시상하고 있다. 기독인으로서 시민의 권리를 스스로 내세우기 힘든 약자들을 채워 주는 주님의 놀라운 섭리를 하루하루 깨닫게 해주는 사랑의 법이 최우선이라는 뜻에서 이 상을 제정했다.”

-‘우주를 지배하는 철리’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 내지 ‘사랑의 법’이다. 사랑의 지배하는 우주, 예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이 원천이되는 나라다. 사랑이 어떻게 학문적 연구 주제와 연결될 수 있는 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향유,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원우현 교수 =1942년 서울 출생. 서울대 법대 졸업 후 미국 보스턴대 대학원에서 언론학 석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조교수(1973~76)와 고려대(1976~2007) 교수,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로 재직했다.

한국언론학회와 한국언론법학회, 한국사회과학협의회, 한국PR협회 회장,방송위원회 상임 부위원장, 한국하바드옌칭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현대미디어 이론’ ‘The Mass Media Climate in Korea(한국미디어 풍토)’(공저) ‘Strategies in Public Relations(피알 전략 사례연구)“ ‘설득 커뮤니케이션’ ‘유언비어론’ ‘여론선전론’ ‘매스미디어와 문화 발전’ ‘한국미디어 문화비평’ ‘인터넷 커뮤니케이션’(공저) ‘자유언론의 테크놀로지’(역서) 간증집 ‘쿼바디스’ ‘테너 이인범과 순교자’ 등 다수이다.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