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보니 사라진 엄마아빠, 지구를 지키는 아이들
[박순영 기자]
▲ 오페라 '빛아이 어둠아이' 중. 한아이(소프라노 정시영)와 어둠아이(테너 석승권)가 욕조배를 타고 지구를 구하러 출동한다. |
ⓒ 강희갑 |
공연 소개에 '지구를 구하라'는 슬로건과 '빛아이 어둠아이'라는 제목이 호기심을 주었기에 22일 첫 공연을 관람했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빨간색 공을 주렁주렁 단 망토를 입은 '어둠아이(메조소프라노 김채선)'가 실감나게 무섭고도 재밌었으며, 그가 "(환경을 파괴하는) 멍청한 지구인들" 하고 말할 때는 내 스스로 찔리며 지구환경을 지키려면 다함께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첫 장면, 3면 무대 영상에 최첨단 뇌 신경망이나 최첨단 컴퓨터 회로가 분위기를 이끌고 가운데 주인공 '한아이(소프라노 정시영)'는 게임 삼매경 중, 엄마(소프라노 김은미) 아빠(바리톤 김지단)는 뒤에 서서 아이에게 학원 가라 게임 그만하라고 두 팔을 높이 들어올려 손에 닌텐도 스위치를 든 채 로봇처럼 아이를 조정하고 있다. 한 아이는 높은 음으로 소리지르며 실컷 게임이나 하겠다고 "괴물들아, 저 사람들 잡아가 버려!"라고 소리친다. 바이올린, 플룻 등에 피리, 덩더쿵 장구 등이 가미된 네오필리아 오케스트라(정주현 지휘)의 반주의 현대음악적 분위기가 한 아이와 엄마 아빠의 충돌을 왁자지껄하고 그로테스크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한 아이는 밤새 악몽을 꾸다가 깨어 엄마아빠가 사라진 걸 알게 되고, 엄마아빠를 구하러 녹조로 더럽혀진 검은 강을 건너게 된다. 마고할미(메조소프라노 신민정)가 등장하며 "둥개 둥개 둥개야" 하고 노래를 부르니 메조소프라노의 풍성한 저음에 흥겨운 국악장단이 역동감을 주며 모험의 신비감을 준다. 마고할미는 한 아이의 엄마아빠를 잡아간 것은 자신의 두 아들 빛아이 어둠아이 중 어둠아이일 것이라며 한 아이에게 "아이야 욕심을 내지 말거라.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단다" 하고 노래 부르는데, 정감있는 선율에 푸근한 마음이 전해온다.
▲ "완벽한 아이를 만들어야 해!". 어둠아이(메조소프라노 김채선, 앞 중앙)가 "한국 엄마아빠들이 아이 위해서 못하는게 뭐 있어!"라며 채찍을 휘두른다. 뒷쪽 왼쪽부터 빛아이(테너 석승권), 아빠(바리톤 김지단), 엄마(소프라노 김은미). (사진 = 강희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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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강아 흘러라"에서 검은 망토 늘어진 머리, 무서운 빛나는 눈을 지닌 검은아이(메조소프라노 김채선)이 옥타브 도약하는 선율을 노래부르는 데 진짜 무서웠다. 피아노 반복저음에 관악기들이 트릴로 떨고 있고, 동반된 장구 장단과 거문고 소리도 무섭게 들릴 수 있는 거구나!! 메조소프라노 김채선의 연기는 가히 최고였다. 목을 좌우로 꺾으면서 팔을 양옆으로 들어올려 코로나 빨간 바이러스를 퍼트릴 듯이 "쓰레기 긁어모다 지구를 오염 멸망시킬거야" 하는데 정말 사악해보였다.
다음 장면이 포인트다. 해골이 공중에 떠 있고 인체해부도, 심장박동수, 세포수치 그래픽이 영상에 보이며 인질로 잡혀온 엄마 아빠는 "완벽한 아이~ 완벽한 아이~" 부르짖으며 시키는 대로 실험 중이다. 아인슈타인의 뇌, 10개 국어를 하기 위해서는 슈카랑카크카 혀, 여배우의 머리칼, 피아니스트의 손가락, 바퀴벌레의 생명력을 구해와 아이를 만든다니! 작년 가족오페라 <개구쟁이와 마법>을 볼 때도 감탄했지만, 장면에 몰입할 수 있게 연출하고 암시를 두는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연출 장수동)의 공연무대는 참 예술적이다.
국악기와 성악이 어쩜 이렇게 잘 어울릴까. 마라카스 리듬과 음산한 실험실 영상도 한 몫한다. 완벽한 아이란게 없지 않는가. 영상에 아인슈타인과 스티브 잡스가 보이더니 마지막에 빌 게이츠 캐리커처가 얼굴이 뚱뚱해져서 웃고 있다. 아이쿠.
오페라 <빛아이 어둠아이>는 해피엔딩이다. 빛아이와 어둠아이의 대결 그리고 화해, 어둠아이는 그 검은 망토를 벗고 마고할미 세 식구도 모두 하얀 옷으로 "아름다운 나라들 바다와 하늘, 인간의 지혜가 지구를 구하리라"라며 코러스와 다함께 "영원히 사랑해요!"라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인터미션 때 옆 관객 아빠가 "너도 아빠 잡혀가면 욕조 타고 잡으러 올 거야?" 하고 아이에게 묻기도 하고, 할머니 손을 잡은 다른 6살 여자아이는 어둠아이가 무서워서 훌쩍이기도 했다. 기자도 이번 공연에 식구들을 못 데려왔는데 네이버TV 방송이 된다하니 보여줘야겠다.
이렇게 이지홍 작, 신동일 작곡, 정주현 지휘, 장수동 연출의 오페라 <빛아이 어둠아이>는 이 가미된 오케스트라 반주에 명료하게 잘 들리는 우리말 노래가 즐겁게 교훈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특히 이번 오페라에서 소프라노의 활약이 컸고, 고음인데도 우리말 발음 전달이 잘 되어 장면 진행이 잘 되었다. 작곡적으로도 성악가들의 기술면으로도 모두 잘 해결되어서 창작오페라의 하나의 열쇠로도 보인다. 가족을 위한 환경오페라 <빛아이 어둠아이> 참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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